전통 발효제인 누룩 대신 에일 맥주 효모를 사용한 신개념 막걸리가 등장했다. 그런데,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마크 홀리(Mark Holy). 마크 홀리를 여러번 소리내 읽다보면 ‘막걸리’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다.

마크 홀리 탄생에는 특별한 페르소나(가상인물)가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엔지니어를 꿈꾸던 외국인 마크 홀리가 한국에서 맛본 막걸리에 빠져,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막걸리 ‘마크 홀리’를 내놓았다는 스토리텔링도 남다르다. 마크 홀리 막걸리는 이달초 인터넷 판매를 시작했다.

마크 홀리 막걸리 맛 역시 간단치 않다.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를 쓰지 않는 대신, 김포 비무장지대 청정지역에서 재배한 ‘참드림’쌀을 아낌없이 넣은 덕분에 쌀향에서 비롯된 과일향이 풍성하다. 메론, 요거트, 참외, 바나나 향이 난다는 이들도 있다. 곡물에서 기인하는 천연의 단맛이 일품이다. 살짝 산미도 있어 ‘달콤새콤’하지만, 단맛이 신맛보다는 훨씬 강하다. 단맛에 가려, 신맛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질리지 않는 고급스런 단맛이다. 탄산감은 거의 없고, 바디감(한모금 입에 머금었을 때 느끼는 묵직함)도 과하지 않다. 한강 나루 막걸리, 팔팔막걸리와 비슷한듯 하지만, 단맛이 약간 더 도드라진다. 그래서 평소에 막걸리를 별로 즐기지 않는 소비자들도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막걸리는 처음 맛본다”고 말한다.

홀리워터컴퍼니 김태경 대표가 에일맥주 효모로 만든 막걸리 '마크 홀리'를 소개하고 있다. 마크 홀리는 가상의 인물로, 한국의 막걸리 맛에 반해 막걸리를 만든 미국인이다. /박순욱 기자

마크 홀리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6도. ‘발효 후에 (알코올 도수를 낮추려고) 물을 엄청 넣었겠구나’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마크 홀리를 냉장고에 며칠이나 세워 보관했는데도, 뿌연 탁주 부분(쌀 고형물 때문에 탁해보이는 부분)이 여전히 병 전체의 70~80%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쌀 함유량이 많다는 뜻이다. 일반 막걸리의 두세배 가량 많은 쌀을 사용해서 만든 술이 마크 홀리 막걸리다. 한병 가격 7900원은 결코 ‘착한 가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국내 최고급 쌀을 아낌없이 사용한 점을 감안하면 비싼 술은 아니다.

마크 홀리 양조장은 서울 성수동에 있다. 성수를 영어로 하면 홀리 워터다. 마크 홀리 막걸리를 만드는 회사 이름이 홀리 워터다. 홀리 워터는 수제맥주 기업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자회사다. 김태경 대표가 6년 동안 100여종의 수제맥주를 만든 경험을 쏟아부어 만든 신제품이 막걸리 마크 홀리다. 수제맥주 만들던 대표가 막걸리 양조장을 차린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경기도 이천에 맥주공장을 둔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이달말 제2공장을 준공한다. 제1공장 가동률이 100%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수제맥주 업계에서는 ‘메이저급’에 속한다. 편의점, 대형마트에도 이미 진출한 소위 ‘잘 나가는’ 맥주 회사가 막걸리 양조장은 왜 차렸을까?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대표이자, 자회사인 홀리 워터의 CEO인 김태경 대표를 서울 성수동 홀리워터 양조장에서 만났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1호 맥주펍 성수점 바로 인근에 있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가 탄생한 곳도 성수동이다. 마크 홀리 막걸리는 이달부터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고, 당분간은 인터넷에서만 판매할 방침이다. 김태경 대표는 “온라인 판매를 3~6개월 하면서 생산과 판매를 안정화시킨 다음에 주점,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채널로도 판매망을 다양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메이징브루어리는 수제 맥주업계 메이저기업이다. 그런데 막걸리 양조장을 차린 이유는?

“2016년에 맥주사업을 시작했으니, 이제 만 6년됐다. 하지만, 맥주는 아직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지 않아, 사업확장에 걸림돌이 있다. 반대로, 막걸리는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지역특산주 농업회사법인으로 설립했다. 곡물 발효주라는 측면에서 막걸리(쌀이 원료)와 맥주(보리가 원료)는 공통점이 있다. 어메이징(수제맥주)에서 쌓은 역량을 충분히 막걸리 양조에도 발휘할 수 있다고 봤다.”

서울 성수동에 있는 홀리워터컴퍼니 김태경 대표(사진 왼쪽)가 양조장 발효탱크를 둘러보고 있다. /박순욱 기자

-당화, 알코올발효를 한번에 하는 전통 발효제인 누룩을 쓰지 않은 이유는?

“누룩의 특징은 당화와 발효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지만, 같은 누룩을 쓰더라도 당화력, 발효력이 항상 일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마크 홀리 막걸리처럼 물보다 쌀을 더 많이 쓰는 경우는 당화력이 중요한데, 당화력이 일정하지 않으면 매번 품질이 다른 술을 만들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술을 만들기 위해, 당화제(정제효소제), 발효제(맥주 효모)를 분리했다.”

-맥주와 막걸리의 차이점은 뭐라고 보나?

“수제맥주는 스탠다드(기준)가 정해져 있다. 품질이 일정하다. 레시피가 영국, 미국 문헌에 딱 정리가 돼있다. 막걸리는 다르다. 좋은 점이기도 하고, 또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기도 한데, 조금 더 유동성(제조법이나 맛이 일정하지 않는 점)이 있는 것같다. 가양주 형태로 발전해서 그런지, ‘막걸리는 꼭 이래야만 해’ 이런 정형화된 규칙이 없다. 우리는 제품 품질의 일관성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막걸리는 만들 때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는 게 단점이자 매력이다.

또하나 막걸리의 매력은 우리에게 오리지날리티가 있다는 점이다. 수제맥주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미국, 영국을 앞서긴 쉽지 않다. 반면에 한국이 원산지인 막걸리는 우리가 어떤 걸 새로 시도해도 전세계에서 우리가 처음 시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통누룩을 사용하지 않고 효모 발효를 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크 홀리에 사용한 효모는 어떻게 선택했나?

“우리가 사용하는 맥주 효모는 프렌치 세종 효모다. 처음부터 이 효모를 쓰겠다고 정한 것은 아니고, 24개의 다양한 효모를 사용한 실험결과를 토대로, 효모를 최종 선택했다. 에일맥주 효모 15종, 라거맥주 효모 5종, 농촌진흥청 보유 효모 1종, 주류면허지원센터 2종, 그리고 다른 양조장에서 많이 쓰는 라빠르장(제빵용) 효모를 사용해서, 술을 만들었다. 당도, 산도, 알코올, 관능평가(맛, 향 등)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우린 맥주생산 노하우가 있는 만큼, 효모에 더 집중하자고 해서 제빵용이 아닌 맥주 에일 효모인 세종 효모를 선택했다.”

마크 홀리 막걸리에 쓰인 프렌치 세종 맥주 효모. 액상 효모로 국내에서 구할 수 있다. 효모는 당분을 알코올로 바꾸는 기능을 한다. /박순욱 기자

-맥주 효모를 사용한 마크 홀리에는 어떤 향이 있나?

“마크홀리는 쌀 함유량이 많아, 곡물에서 연유한 단맛이 다소 도드라진다. 시음 해보니, 미세하게 스파이시한 향을 찾는 분들도 있었고, 과일, 참외, 요거트, 바나나 이런 향들을 느낀 분들도 있었다. 메론, 요거트향이 난다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누룩이 아닌 맥주 효모를 쓴 의의는 어디에 있나?

“한마디로 다양성이다. 효모의 종류가 많은 만큼, 다양한 효모를 막걸리 빚는데 사용함으로써, 마크 홀리 막걸리의 다양성은 무궁무진해진다. 우리가 처음에는 세종 효모로 시작했지만, 여기에 효모만 바꾸면 계속 베리에이션이 가능하다. 마크홀리는 음용성이 좋은 술이기 때문에, 효모만 특색이 있는 종류로 바꾸어줘도, 쌀과 효소제 비율을 바꾸지 않고도, 충분히 다양성 구현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술 회사인 우리의 미션은 소맥문화(소주와 맥주를 타서 폭탄주로 마시는)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먹고 싶지 않은 술을, 먹고 싶지 않은 장소에서, 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마시는 게 우리의 회식문화가 아닌가? 이제는 내가 마시고 싶은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들과, 또 마시고 싶은 장소에서 마시는 게 새로운 음주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런 MZ세대의 가장 큰 트렌드의 중간에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셈이다. 맥주 효모를 사용한 마크 홀리 막걸리의 탄생 배경이 그렇다.”

홀리워터컴퍼니 직원 김현수씨가 발효가 끝난 막걸리에 대한 품질 평가를 위해 술 일부를 따르고 있다. /박순욱 기자

-가상의 미국인, 마크 홀리가 만들었다는 스토리텔링을 만든 이유가 있나?

“이 스토리는 니콜라 부르바키(Nicolas Bourbaki)라는 수학자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1930년대 프랑스에서 활동한 수학자로, 훌륭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 수학자 집단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가상의 인물을 막걸리 브랜드로 내세우자고 했다. 이름을 정할 땐, 이곳 지명인 성수동을 고려했다. 성수를 영어로 하면 ‘홀리 워터’다. 6년전 어메이징 브루어리를 이곳 성수동에서 시작할 때도 회사명을 ‘홀리 워터 컴퍼니’로 지을까도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 막걸리 회사 이름을 홀리워터컴퍼니로 짓고, 거기서 가상의 인물을 따다가 막걸리와 유사하게, 음차를 해와서 ‘마크 홀리’로 브랜드를 정했다. ‘마크 홀리가 만들고, 홀리워터 컴퍼니가 생산하는 막걸리’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었다. 일종의 말장난을 한 셈이다.

마크 홀리는 나를 포함한 전체 직원 4명의 프로필, 경험담을 녹여서 스토리로 더 만들어 나갈 작정이다. 가상 인물 마크 홀리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을 나왔는데, 대표인 내가 실제로 나온 대학이다. 또, 마크 홀리가 1988년생인데, 직원인 황재원 팀장이 88년생이다. 앞으로도 우리 4명이 막걸리를 만들어가면서, 한국의 막걸리 산업이나, 술 규제, 경험담을 녹여서 마크 홀리의 스토리로 만들어나갈 것이다.

병 라벨에는 마크 홀리 캐릭터 만화를 그렸다. 외국인이 만드는 우리술 막걸리는 어떤 맛일까? 맥주를 만들던 사람들이 막걸리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점들을 한번에 보여주기 위해 막걸리 제조자를 외국인으로 설정했다.”

-기존 맥주 브루어리와 시너지효과는?

“맥주와 막걸리 생산에 있어, 연구개발 교류는 가능할 듯싶다. 앞으로 쌀이 들어간 맥주 개발도 준비 중에 있다. 맥주 만들어온 노하우가 막걸리 개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이천 2공장도 이달말에 준공하는데, 연구실에서 맥주와 막걸리를 같이 연구개발할 것이다. 아직 맥주는 온라인 판매가 안되지만, 앞으로 막걸리처럼 맥주도 온라인 판매가 되면 판매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성수동 브루펍에서도 막걸리를 판매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