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을 통한 전통주 판매가 확대되면서 일부 전통주에 대한 자격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반 소주나 외국 술처럼 보이는 술도 현행법상 전통주로 취급돼 온라인에서 유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누가 봐도 전통주지만 생산자가 누구냐에 따라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통주 기준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5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지하 1층 원소주 팝업스토어에 진열된 원소주. /조선DB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원소주’와 ‘백걸리’입니다. 가수 박재범이 만든 원소주는 ‘힙(hip·유행에 밝다는 뜻)’을 지향하는 증류식 소주입니다. 디자인도 세련됐습니다. 이에 비해 요리 연구가 백종원이 만든 백걸리는 본연의 깊은 맛을 살린 순수 생막걸리로 출시됐습니다.

설명만 봐선 백걸리가 더 전통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온라인 판매가 가능한 전통주는 원소주입니다. 원소주는 지난달 31일 본격적인 온라인 판매로 전환, 18일 현재까지 13일(영업일 기준) 연속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백걸리는 양조장 ‘백술도가’와 전국 ‘막이오름’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먼저 전통주에 대한 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행 주세법에서 전통주는 크게 무형문화재 보유자나 식품명인이 제조한 ‘민속주’와 농업경영체·생산자단체가 그 일대 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조한 ‘지역 특산주’로 분류됩니다.

해당 기준은 2009년 8월 정부가 ‘우리 술 품질 고급화’, ‘전통주 복원’, ‘대표 브랜드 육성’을 통한 세계화를 목표로 제정했습니다. 다만 1995년 세제 혜택을 위해 제정했던 ‘농민주’ 제도의 기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전통주는 기존 세제 감면 혜택에 온라인 판매가 더해진 게 차이입니다.

원소주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지역 특산주라는 전통주 지위를 노렸습니다. 원소주를 제조하는 원스피리츠를 농업회사법인으로 설립했고, 충북 충주에 양조장을 꾸렸습니다. 이후 인근인 강원도 원주의 쌀을 주원료로 썼습니다. 지역 특산주 기준에 부합한 것입니다.

백걸리는 겉으론 지역 특산주가 맞습니다. 충남 예산에서 난 쌀을 사용하고, 밑술에 1차 발효와 2차 발효를 더하는 전통 삼양주 제조법도 사용합니다. 하지만 양조장이 서울에 있고, 백걸리를 만들고 판매하는 곳이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더본코리아라는 점에서 전통주가 되지 못했습니다.

더본코리아 생막걸리 '백걸리'. /더본코리아 제공

1995년 정한 기준을 바로 차용하면서 인해 웃지 못할 일도 생기고 있습니다. 영국 술 ‘진(Gin)’이나, 사과로 만드는 와인인 ‘애플사이더’도 국내 원재료를 이용한 농업법인이라면 전통주로 분류됩니다. 덕분에 최근에는 벌꿀로 만드는 ‘미드’도 일부 온라인에서 전통주라는 이름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반면 광주요그룹의 증류주 ‘화요’나 서울장수막걸리의 ‘장수막걸리’ 등은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없습니다. 우리 쌀로 만들지만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다 누가 어디서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준을 함께 충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중 막걸리여도 온라인 판매 허용이 달라지는 일도 있습니다. 예컨대 배상면주가에서 제조한 ‘느린마을 막걸리’는 온라인 판매가 가능합니다. 배상면주가가 제조·판매원인 ‘배상면주가 포천LB’와 ‘배상면주가 고창LB’를 각각 농민이 법인장인 농업회사법인으로 설립했기 때문입니다.

주류업계에서는 현재의 기준으로는 정부가 당초 노린 우리 술의 세계화를 이룰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한 지역에서 생산된 쌀만으로는 주류를 대량 생산할 수 없어 수출 물량을 제조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원소주는 1인당 6병의 구매 제한을 두고 하루 2000병만을 판매하고 있다”면서 “수출할 수 있는 물량은 언제 만들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수제 맥주업계도 불만이 많습니다. 맥주의 원재료인 맥아나 홉 등은 아예 국내에서 생산 자체가 안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북 군산에서 일부 맥아 생산에 나섰지만, 아직 맥주를 만들 정도의 수준은 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에선 국산 원재료 일부 사용에 대한 허용이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요구를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수제맥주협회 한 관계자는 “우리 쌀을 이용한 맥주, 밤을 첨가한 맥주 등 우리 농산물을 활용한 맥주가 계속 나오고 있다”면서 “일부 농산물 사용에 대한 일부 기준 완화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전통주 온라인 판매 화면. /네이버쇼핑 캡처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도 기준 변경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주무부처인 국세청은 지난달 말 주류 온라인 판매 관련 업계 간담회를 비공개로 열기도 했습니다. 주류 업계 관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현행 전통주 기준의 문제를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속도 조절은 필요해 보입니다. 온라인 주류 판매는 청소년들의 주류 구매 접근성이 올라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오픈마켓 등에서 생년월일 등 간단한 인증만으로 전통주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주류 거래가 허용된 미국, 중국 등에선 온라인 주류 거래 시 인터넷 통합 신원 조회 및 회원제에 기반 주문만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주류 판매가 허용된 배달 시장만 해도 배달 기사가 직접 신분증을 확인해야 수령이 가능합니다.

편의점 마트 식당 어디서든 주류를 구매할 수 있는 우리나라 특성상 주류의 접근성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미 수도권 기준 반경 700m 내에 주류를 구매할 수 있는 편의점이 평균 8개씩 있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기준을 제정해 부작용은 줄이고, 정부가 당초 목표한 우리 술의 세계화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