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의 분위기는 조화 매장을 기준으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서쪽 방향 패션·인테리어 소품 매장은 쇼핑객들이 오가며 활기가 돌았지만, 동쪽 방향 생화 매장에는 드문 인적에 찬 바람만 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 부진으로 꽃 소비가 줄어든 가운데 '꽃값이 금값이 됐다'는 소식에 생화 매장에 발길이 끊긴 것이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향기를 내뿜으며 매력을 발산했지만, 봐주는 이가 없어 애처롭게 느껴졌다.
같은 날 양재동 꽃시장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꽃을 정리하고 있던 L화원의 사장은 '꽃값이 많이 올랐다는데, 괜찮냐?'는 질문에 격정을 쏟아냈다.
"꽃값이 많이 비싸졌는데, 그래도 오늘은 좀 내렸어요. 그런데 매일 뉴스에서 꽃값이 비싸다고 다루는 데 손님이 오겠어요? 꽃 대신 그냥 다른 선물을 주겠지. 오늘은 어떤 손님이 와서 '꽃값이 왜 이렇게 비싸요?'라고 묻더라고요."
졸업식 시즌을 맞아 꽃 가격이 급등하자 꽃 소비가 뚝 떨어졌다. 수요 절벽 영향으로 이날 주요 화훼들의 경매 가격은 닷새 전의 반값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예년 가격과 비교하면 50%가량 비싼 수준이다.
화훼 자영업자들은 꽃값이 안정된 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가격 폭등과 폭락을 막기 위해 화훼 시장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at화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날 오전 헤라 장미 한 단은 평균가격 6664원에 경매에서 낙찰됐다. 이는 닷새 전인 5일 경매 평균가 1만7917원에서 63% 내린 가격이다.
꽃송이가 작아 '미니 장미'로 불리는 치어플 장미는 이날 평균 1만6898원에 낙찰됐다. 닷새 전 5일 경매 평균가 3만4357원 대비 50.8% 싸졌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서 꽃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는 "지난주 꽃값이 천정부지로 올라서 당황스러웠는데, 오늘은 그나마 좀 내리면서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화훼업계에 따르면 새해 들어 주요 꽃들의 경매 낙찰가가 예년 대비 3배 이상 뛰었다. 경매가가 뛰면서 도매가격과 소매가격 모두 폭등했다. 장미 한 단(10송이)이 도매시장에서 5만원 선에 거래되면서 꽃 가게에서는 장미 한 송이를 7000~1만원에 팔아야 마진이 남길 수 있을 정도였다.
서울 목동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B씨는 "연초 수요 증가를 예상해 단골·예약 고객들에게 판매가 인상을 예고했는데, 예상보다 꽃값이 많이 올라 이윤을 거의 포기하고 예약 물량을 소화해야 했다"면서 "꽃다발 선물을 사러 왔다가 가격을 듣고 그냥 나가는 손님도 많았다"고 말했다.
새해 꽃 가격이 급등한 것은 공급 감소와 생산비 증가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꽃 수요 감소를 예상한 화훼농가들이 업종을 전환하면서 꽃 출하량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화훼농가 재배면적은 2012년 6329헥타르(ha)에서 2020년 4299ha로 감소했다. 이상기후로 화훼 작황도 나빠진 상황이다.
화훼업계 관계자는 "무더위와 초장기 장마, 이른 추위 등이 식물 생육에 영향을 미쳐 수확량이 줄었다"고 말했다.
종자값과 유류비, 인건비 등 생산비용도 함께 늘었다. 특히 화훼농가에서 많이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영향으로 귀국 후 재입국하지 못하면서 일손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인건비가 크게 늘어난 이유다.
여기에 일선 학교들이 매년 2월 진행하던 졸업식 일정을 코로나19로 앞당기면서 연초 꽃 수요가 갑자기 늘었다.
소매업자들은 화훼 시장의 무분별한 유통 시스템이 가격 불안정을 가속화하는 요인이라고 꼬집는다.
수산물이나 축산물은 유통 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판매돼 개인 소비자가 도매가로 구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꽃은 개인이 경매나 도매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양재동 꽃시장은 도매시장과 소매점포가 구분 운영하고 있지만 일반 소비자의 도매시장 출입을 막진 않는다.
도매업자가 소매까지 직접 하다보니 소매 판매가에 맞춰 도매가를 인상하고, 소매업자가 오른 도매가를 반영해 소매가를 인상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지난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화훼업계 유통 시스템 개선을 원한다'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글에서 "30년만의 꽃값 폭등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4~5배로 (꽃)가격이 올랐다"면서 "도매시장상인들이 판매하는 도매가가 소매꽃집이 판매하는 가격을 추월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매 꽃집 사업자와 일반인 출입 및 구매가 가능한 우리나라 꽃 도매시장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재동 꽃시장에서 화훼 소매를 하는 자영업자 C씨는 "기업형 화훼업자들이 농가와 직계약을 체결하고, 도매업자들이 직접 소매 판매까지 하면서 화훼 시장이 기형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즌 수요를 노린 매점매석과 도매업자들의 담합 행위에 대해서도 정부의 감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