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기술이 발달한 요즘에는 흔치 않은 일이지만, 1970년대, 1980년대만 해도 여름철 막걸리는 상하기 쉬웠다. 당시만 해도 냉장유통이 여의치 않아 여름철 상온에 노출돼 보관 중이던 막걸리는 ‘반쯤 식초’가 될 정도로 잘 시었다. 살균처리를 하지 않은 생막걸리의 경우, 온도가 30도 정도까지 올라가면, 술병 안에 있던 효모들이 왕성하게 활동(병입발효)해 탄산이 차올라, 심할 경우 페트병 뚜껑이 터지기도 했다.
유통 중인 막걸리만 잘 상하는 게 아니었다. 양조장에서 발효 중인 막걸리도 온도관리가 잘 안돼 발효탱크에 들어있던 막걸리 전체가 상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래서, 슬기로운 우리 조상들은 한여름 같은 극서기에는 술을 담그지 않았다. 술이 상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술의 안전위생 문제가 소규모 양조장에만 불거지는 일도 아니었다. 잊을만 하면, ‘대기업에서 만드는 맥주, 소주에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소비자 제보가 잇따르는가 하면, 요즘 출시되는 대부분의 위스키 병에는 위조방지 캡이 달려 있는데, 가짜 위스키 제조를 막기 위해서다.
이 모든 문제가 술의 안전위생에 관련된 사안들이다. 술 고유의 향과 맛 만큼이나, 아니 더 중요한 사안이 술의 안전 문제다. 술의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누가 돈을 지불하고 술을 사서 마시겠는가? 술 마실 때마다 소비자들이 ‘혹시 이 술에 문제는 없겠지?’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면 술 시장이 커질 것은 애시당초 기대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만큼 술의 안전이 주류산업 발전의 선행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주류안전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술 단체가 없었다. 지난 8월 출범한 한국주류안전협회에 거는 기대감이 큰 이유다. 지금껏 주류 관련 단체는 ‘유유상종’ 성격이 짙었다. 매출이 큰 주류업체들끼리 모이고, 민속주협회에는 민속주 제조하는 양조장들만 모여 단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주류 안전 문제는 주종 불문, 모든 주류 제조-유통업체들의 공통적인 관심사항이다. 이번에 발족한 주류안전협회가 문을 활짝 열어, 크든작든, 어떤 술을 만들든 상관없이 모든 주류업체들을 회원사로 받겠다고 한 이유 역시, 술의 위생안전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주류업체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산하 단체로 정식 인가받은 한국주류안전협회 초대 회장을 맡은 화요 문세희 대표를 서울 서초구 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문 회장은 “주류 안전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없이는 주류산업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협회는 회원사를 중심으로 품질관리 교육에 만전을 기해, 주류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
-주류안전협회의 주요 사업은?
“주요 사업은 주류 위생안전관리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앞으로 주류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 기준) 보급과 위해예방관리 보급사업 등을 펼칠 방침이다. 세부적으로는 자가품질검사, 유통기한 설정 등 주류분석기술 보급과 운영을 해나갈 예정이다. 특히, 이물질을 줄이는 등 술 품질관리에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다.”
-8월에 정식 출범했다. 협회 출범 동기는?
“지금껏 주류 정책은 주세법, 식품위생법 등 2가지 법률을 토대로 정부 주도로 이뤄져왔다. 술은 기호식품인 만큼 소비자가 엄연히 있는 만큼, 상품으로서의 주류는 소비자의 기호와 가치를 만족시켜야 하는데, 주류 시장확대를 하려다 보니까 정부 주도로만 될 일이 아니었다. 정부가 앞으로는 생산자, 소비자 의견까지 반영된 주류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공급하고, 또 동시에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하는 주류업계가 해야 할 일들, 또 업계와 정부당국, 관련기관들이 서로 협의해야 할 사안도 상당히 많다. 그래서 앞으로는 누군가, 중간에 연결 역할도 하고 각종 사안을 주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류안전 관련 협회가 필요하겠다고 판단했다.”
-주류안전협회 출범 요구는 누가 먼저?
“우선 산업계에서 주류 위생안전 문제에 관한 요구들이 많았다. 정부기관인 식약처는 규제기관인데, 업계가 정부의 규제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합리적으로 서로 얘기를 할 수 있고, 관련 정보를 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통로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주류안전에 관한 한, 산업계와 정부기관 사이의 통로가 없었다. 업계, 소비자, 정부기관 등 주류 위생안전에 관한 당사자들간에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이번에 마련된 것이라 보면 된다.”
-술 관련 단체는 이전에도 많지 않았나?
“주류안전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협회는 없었다. 가령, 국세청 산하에 있는 주류산업협회는 주정회사, 맥주, 소주회사 등 규모가 큰 업체 중심이다. 회원사가 제한적이다. 매출이 일정 이상 돼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전체 주류기업 중 회원 수가 1%도 안된다. 하지만, 전국에 소규모 양조장이 얼마나 많은가? 1000개도 더 될 것이다. 그러니, 주류산업협회가 전체 주류업계를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이번에 출범한 주류안전협회는 문턱이 전혀 없다. 회원 가입 조건이 따로 없다. 소규모 양조장은 물론 규모가 크고 작은 주류유통회사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돼 있다.”
-주류안전협회의 핵심 사항은?
“주류안전 문제는 기본적으로, 품질관리가 우선돼야 한다. 품질관리가 되지 않으면 위생안전관리도 안된다. 그래서 주류안전협회는 주류업체들의 주류 제조기법, 기술, 품질관리, 정책개발까지 포괄적인 영역을 사업화할 것이다. 단순히 술의 안전문제뿐 아니라, 품질관리, 주류산업 발전을 위한 인력양성도 담당할 예정이다.
-품질관리가 협회의 현안인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품질관리다. 최근 들어 신규 양조장들이 매년 100개 이상씩 늘어나는 추세다. 전통주 업체를 중심으로, 대부분 지역특산주 양조장들이다. 정부가 이들 업체들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공공기관이 할 역할이 있고, 나머지 역할은 관련 협회가 해야 한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법률에 의거해, 업계를 통제하는 것이지만, 개별 업체의 품질관리까지 정부가 해줄 수는 없다. 주세법, 식품위생법 등 관련 법률에 위반하는 경우가 있을 경우, 정부가 행정적인 제재를 가할 수는 있지만, 기업들의 애로사항, 가령, 주질관리 등 현장에서의 문제점 같은 것을 정부가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 역할을 협회가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품질관리란?
“품질관리란 한마디로 원료 구매부터 제품이 완성돼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공정 전체를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원료관리, 공정관리, 유통과정에서 품질이 변할 경우의 대처방안, 또, 설비관리 등 포괄적인 것들이 다 품질관리 범주에 포함된다. 원료부터 포장까지 제품생산의 처음과 끝까지 모든 공정에 대한 기술지원, 교육, 현장에서의 애로사항들이 적지 않은데, 영세 주류업체들은 물어볼 곳이 없다. 정부가 일일이 해결해줄 수 없다. 앞으로는 협회가 주도적으로 영세업체들에 대한 품질관리를 도울 방침이다.”
-막 출범한 주류안전협회가 영세 주류기업의 품질관리를 지원할 맨파워를 갖추고 있나?
“당장 협회 내에 이런 업무를 담당할 직원은 물론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협회 출범시 임원을 많이 뽑았다. 부회장이 5명, 이사를 19명 선임했다. 업계는 물론, 학계, 관련 기관 종사자들로 구성됐다. 소속 회사에는 연구소도 있고, 분석 장비들도 많이 있다. 그래서 협회 임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당장 협회가 대규모 시설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도, 유관기관의 협조를 얻어 어느 정도의 각종 검사 기능은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앞으로 회원사에 대한 협회의 품질관리 역량을 더 키워나갈 것이다.”
-현재 회원사 현황은?
“65개 회원이 등록돼 있고,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화요, 보해, 서울탁주, 조은술, 술샘, 더한주류 등이 회원사다. 정회원은 제조업체, 유통업체들이고, 예비창업자, 주류에 관심 있는 개인들도 일반회원으로 받고 있다. 현재 대부분은 정회원들이다. 회원사 중 전통주 양조장 비중이 80~90%에 달한다. 소주, 맥주 회사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문호는 이들에게도 열려 있다. 1300개에 달하는 전국 주류업체 전체가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주류 업계가 힘을 합해 벌일 현안은?
“품질관리 차원에서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영세업체들은 자체적으로 품질 분석기능이 거의 없는 상태다. 그러다보니, 정밀설비 없이 맛을 직접 보고 제품 품질을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에 출시하기 전에 품질 분석을 제대로 해야 한다. 분석을 통해 제품 특성을 사전에 파악해, 제품 특징, 캐릭터를 잡아주는 것은 판매나, 마케팅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협회는 인력 풀이 구축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 컨설팅사업도 진행할 것이다. 또, 영세 업체들의 기술적 애로사항들도 해결하려고 한다. 원료부터 포장까지 품질관리 전 영역에 대한 컨설팅을 할 예정이다.”
-안전문제와 직결된 주류 해섭(HACCP) 실태는 어떤가?
“현재 연간 매출이 100억원 이상인 주류기업은 의무적으로 해섭을 인증받도록 돼 있다. 매출이 100억 되지 않는 기업은 ‘소규모 해섭’이라고 다소 완화된 해섭 인증을 정부(식약처)가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소규모 해섭을 인증받은 양조장들은 드물다.
그러나, 소규모 해섭 인증 업체는 늘어날 것으로 본다. 해섭을 하는 업체가 늘어날수록 주류 위생안전 전반의 환경이 좋아지기 때문에, 식약처도 소규모 해섭을 계속 유도하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 협회가 주도적으로 해섭 인증 문제를 담당할 방침이다.”
-해섭을 받으면 혜택이 있나?
“해섭을 받은 업체에 대한 인센티브는 현재로서는 정부의 정기적인 점검절차를 다소 완화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업계 스스로가 위생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해섭 인증 기업은 늘어날 것이다. 요즘 소비자들이 얼마나 똑똑한가? 위생안전에 문제가 있는 주류업체 제품이 사랑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해섭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품질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걸 업체들이 잘 알고 있다.”
-생산자 입장에서 주류안전의 중요성은 뭐라고 할 수 있나?
“액체인 술은 이물질이 나오면 안된다. 또, 맛을 봤을 때 이취(고약한 냄새)가 나면 안된다. 2차적으로 품질관리 측면에서는 각 제품의 일정한 주질관리가 중요하다. 특히 전통주들은 맛이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또한 품질관리가 제대로 안됐기 때문이다. 품질관리가 되지 않으면 위생안전관리가 될 수 없다. 품질관리가 위생안전관리의 선행조건이다.”
-다양한 교육과정(인력양성)도 있다고 들었다?
“술 제조쪽도 있고, 유통에 관한 교육도 하고 있다. 온라인 시장이 점점 커지는 추세인 만큼 온라인마케터 육성 같은 교육도 있다. 막걸리, 증류주, 맥주, 과실주 양조 과정 등 전통주 중심의 제조 교육과정이 가장 많다.”
-회원사들은 대부분 이미 술 제조업을 하고 있는데, 협회 교육 중 양조 관련 교육이 가장 많은 이유는?
“교육대상이 기존 제조업체 종업원도 있지만, 예비창업자도 많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는 기초교육을 하고, 제조업체 직원들에게는 심화교육 과정을 할 것이다. 술이 갖고 있는 향기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아로마 교육과정이라든지, 기기분석 과정 등이 심화과정에 해당된다.”
-주류안전과 주류산업 발전과의 인과 관계는?
“주류 안전이 선행되지 않고는 주류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아주 가끔씩이지만, 대형 맥주회사들조차 이물질 혹은 이취 사고가 나기도 한다. 그러면 소비자 클레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다. 회사로서는 엄청난 이미지 손실로 이어진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매출감소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위생안전이 담보되지 않고서는 업계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위생안전,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제품은 시장에서 생존할 수가 없다. 또, 막걸리 회사들은 미생물사고가 날 가능성이 늘 있다. 막걸리는 발효과정을 비롯한 제조과정에서 잘못된 미생물이 들어가 술 자체를 오염시킬 우려가 항상 있다.
더 큰 문제는 술이 상했는데도, 원인이 뭔지 제조업체가 모를 수가 있다. 이런 사고가 잇따를 경우, 막걸리 산업 자체가 존폐의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그래서 막걸리가 산패되지 않도록 협회 차원에서 교육을 많이 해야 한다. 현재는 이런 교육들이 굉장히 부족한 상태다. 어느 기관에서도 이런 교육을 하지 않고 있는 걸로 안다. 각종 교육기관들도 전통주 제조에 치우쳐 있고, 품질관리, 위생안전에 관한 교육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지금은 전통주 시장이 점점 커지는 추세에 있을 만큼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어느 순간 한 업체에서 품질이나 위생안전에 큰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면 전통주 시장 전체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전통주 시장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품질관리, 위생안전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화요의 경우, 주류안전과 관련 활동은?
“화요는 2년 전에 해섭 인증을 마쳤다. 작년에는 ‘스마트 해섭’까지 인증 절차를 받았다. 화요는 2000년대 중반, 공장을 지을 초창기 때부터 해섭은 아니지만, 위생안전에 유의했기 때문에 차후에 매출 100억을 넘었을 때 해섭 인증 받기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스마트 해섭은 또 뭔가?
“해섭의 윗 단계인 스마트 해섭은 위해요소들이 다 기록이 남고, 모든 정보가 전송되도록 돼 있다. 기존 해섭이 수기에 의존한 반면, 스마트 해섭은 ICT기술이 접목된 해섭이라고 보면 된다. 스마트 해섭은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화요는 전통주 1위 업체인 만큼 자발적으로 인증받았다. 주류업계 전체로 보더라도, 화요가 가장 먼저 스마트 해섭 인증을 받았다.”
-화요 올해 예상 실적은?
“작년 매출은 240억원, 올해는 350억원을 예상한다. 수출은 코로나 때문에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가 요즘 들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매출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업소 매출은 다소 줄었지만, ‘홈술 트렌드’ 확산으로 가정용 판매가 크게 늘었다. 대형마트, 편의점 매출 신장이 도드라졌다.
집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는, 마시는 사람의 기호에 맞는 술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여럿이 마실 경우에는 남들이 선택하는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집에서 마실 경우에는 일반 식당에서 주로 마시는 희석식소주보다는 고급 술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화요 같은 프리미엄 술들의 판매가 많이 늘었다. 술집에서 마시는 경우는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면, 집에서 마시는 술은 술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일 경우가 많다. 홈술 확대로, 음주문화가 개성있는 소비, 다소 고급스러워졌다.
술 시장 자체가 조금씩 프리미엄 시장으로 옮겨가는 추세에 있는 것이 화요 매출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음주 연령이 20대로 낮아지고, 여성들의 음주참여도 많아져 고급술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이제 출범한 주류안전협회와, 기존의 술 관련 협회와의 관계 설정은?
“식약처 산하의 술 협회는 이번에 출범한 주류안전협회가 유일하다. 국세청 산하에는 주류산업협회가 있고, 농식품부 산하에는 민속주협회, 막걸리협회 등 10여개 단체가 있다. 앞으로 이들 협회와도 접촉해 주류산업 발전을 위한 공동노력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