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남자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재료를 갖고서도, 방송에서 맛있는 음식을 척척 만들어, 뭇 남성들로부터 부러움과 동시에 질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가 최근 본인의 이름을 내건 막걸리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기자의 첫 반응은 이랬다. 그는 두어달 전 본인의 성을 딴 막걸리 ‘백걸리’를 개발해, 지인들에게 선물로 돌리고 있다. 유명 방송인으로 자리매김한 백 대표는 2000개 남짓한 프랜차이즈 업장을 운영하는 성공한 외식사업가가 아닌가? 그런데 막걸리라니?
조금 더 생각해보니 궁금증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본업인 음식사업이나 방송활동하기도 벅찰텐데, 막걸리는 왜 만들었을까?”, “막걸리를 시작으로 앞으로 전통주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것인가?”, “막걸리를 시장에 내놓으면 전통주 업계에서 반발할 수도 있다는 걸, 예상못했을까?” 등등.
그가 만든 막걸리, ‘백걸리’는 외부 판매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취재 목적’임을 내세워 백걸리를 구해 직접 맛을 봤다. 360ml 유리병 라벨에는 알코올 도수 14도라는 숫자와 함께 ‘얼음을 타서 마시는 막걸리’라고 적혀 있었다. 일반 막걸리 알코올 도수가 6도인 점을 감안하면, 두배 이상 높은 도수다. 발효가 끝난 막걸리 원주는 알코올 도수가 15~16도 정도다. 따라서 백걸리는 거의 물을 타지 않고 원주 상태로 병입한 셈이다.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도수가 결코 아니다. 선물용으로 만든 막걸리 치고는 패키지가 고급스러웠다. 흔한 페트병을 쓰지 않은 점이 특히 그랬다.
백걸리 한 모금에는 곡물 특유의 과일향이 넘쳐났다. 야쿠르트, 바나나향인 것도 같았다. 얼음을 탄 언더락으로 마시니, 향은 다소 가라앉았지만 목넘김은 아주 부드러웠다. ‘아, 막걸리가 이렇게 고급스러울 수도 있구나’ 느껴졌다.
백걸리 술맛을 보니, 이 술을 만든 동기가 더 궁금해졌다. 서울 논현동 더본코리아 본사 사무실에서 백종원 대표를 만났다. “아직 외부 출시 계획이 없어 인터뷰는 곤란하다”는 백 대표를 겨우 설득해 자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백 대표는 전통주 홍보를 하고 싶어, 전통주 양조에 뛰어들었다고 답했다. 전통주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우선 본인이 술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직접 술을 만들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학습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막걸리 양조에 도전했다고 했다.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전통술 얘기를 해서, 전통주를 일반인들에게 더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10여년전 반짝 붐이 일었던 막걸리 인기가 다소 시들해지고 일본을 비롯한 해외수출이 주춤한 현실이 안타까웠다고도 했다.
“외식사업을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적잖은 부침이 있었고, 지금은 꽤 사업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5~6년전부터 방송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음식과 관련된 내용이라 부담도 적고, 무엇보다 시청자 반응이 좋았다. 그러면서 점차 방송에서도 공익적인 내용을 많이 다루려고 했다. 장사 안되는 식당 살리기 프로젝트인 ‘골목식당’이 그 한 예다.
전통술도 공익 차원에서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싶었다. 백종원이 방송에 나와 ‘전통술이 좋다’고 하면, 사람들이 전통술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음식과 달리, 술에 관한 내 지식은 얕고 실제 술을 만든 경험도 일천했다. 술을 오랫동안 즐겨 마셨고 관심은 많았지만, 방송에서 자세히 언급하려면 귀동냥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여겨, 술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백 대표는 서울 사당동에 ‘백술도가’ 양조장을 차렸다. 백걸리를 생산하는 곳이다. 이전에 호프집을 하던 공간을 개조했다고 한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현대화된 양조설비도 들여놓았다. 쌀 씻는 공정에서부터, 발효 중인 술을 수시로 저어주는 것, 술을 거르는 공정까지 거의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기계가 다해준다. 소규모 양조장 면허도 받았다.
-술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외갓집이 양조장을 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술에 접한 덕분에 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외삼촌 집에 놀러갈 때면 양조장을 거쳐서 안채로 들어가게 되는데, 왠지 술 익은 냄새가 어릴 때부터 좋았다. 누룩 냄새, 탁주 냄새 같은 술 냄새에 대한 정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 다닐 때부터 막걸리 양조장을 하고 싶어했다. 막걸리도 많이 마셨다. 사업에 대한 꿈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낚시를 즐겼는데, 그때마다 낚시터 인근의 시골 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를 사다 마셨다. 막걸리와 열무 김치를 함께 먹는 걸 아주 좋아했다.”
-막걸리 양조장을 직접 해보고 싶었나?
“외식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면서부터는 막걸리양조장을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직접 운영하는 식당에서)막걸리를 팔아보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첫 사업으로 쌈밥집을 했다. 30년전 이야기다. 쌈밥집에서 막걸리를 팔았다. 어떻게 막걸리를 팔았느냐 하면, 그냥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 파는 거 말고, 좀 독특하게 팔았다. 냉면의 차가운 육수를 만드는 슬러시 기계를 이용, 얼음 막걸리를 만들어 팔았다. 냉면 육수를 살얼음 형태로 만들듯이, 막걸리를 살짝 얼려서 손님 테이블에 내놓았다. 그렇게 해봤는데, 결국 실패했다. 슬러시 기계에 넣어 막걸리를 돌리니까, 막걸리가 빨리 상했다.”
-막걸리 특성을 잘 몰랐던 탓인가?
“내 고향이 충남 예산인데, 예산 근처의 막걸리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받아다가, 서울 논현동 쌈밥집에서 팔았다. 냉면 슬러시 기계는 사이즈가 컸다. 그러니, 얼음 막걸리 만드는 양이 그만큼 많았다. 그런데, 쌈밥집에서 막걸리는 잘 팔리지 않았다. 2~3일 지나니까 얼음 막걸리에서 약간 시큼한 맛이 났다. 살짝 시어진 것이다. 그래서 양조장에서 전화해서 ‘술이 약간 시었는데, 버려야 하나?’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대답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뉴 슈가를 좀 타면 된다’는 대답이었다. 뉴 슈가라는 게 지금으로 치면 아스파탐 비슷한 거였다. 감미료였다. 그래서 좀 자세히 막걸리 업계를 들여다보니까 막걸리 양조장들 상당수가 전통 제조방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걸 알게됐다. 막걸리를 만들면서 감미료를 조금씩 넣는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그전만 해도 나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정말 뉴 슈가를 넣으니까, 약간 시큼했던 막걸리 맛이 괜찮아지는게 아닌가. 하지만 며칠 지나면 또 시큼해져서 결국 팔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 결국 나의 첫 막걸리 판매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막걸리는 다른 술보다 빨리 상한다는 게 큰 단점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막걸리 세계화(수출)는 어렵다고 본다. 한 10년전에 막걸리가 유명해지지 않았나? 일본에서 불기 시작한 막걸리 붐이 다시 우리나라 전체로 퍼졌다. 그래서 ‘이제 막걸리 사업이 되겠다’고 생각도 했는데, 얼마 안가서 막걸리 붐은 흐지부지돼버렸다. 그때 ‘막걸리가 왜 안팔릴까? 왜 반짝 인기에 그쳤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막걸리 수출에는 당시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들었다. 첫째는 유통상의 문제, 막걸리가 끓어오른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막걸리 병 안에 탄산이 많이 생겨 심할 경우, 막걸리 병 뚜껑이 터지기도 하는 현상)는 점이다. 도수가 낮다 보니 상온에서 재발효가 돼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점을 줄이기 위해)냉장유통을 하기에는 막걸리 가격이 너무 쌌다. 막걸리 병 단가가 워낙 낮다 보니 한 컨테이너 물량을 보내도 전체 금액이 얼마 안됐다. 그러니, 냉장유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서 한국 막걸리 인기가 점차 시들해졌다. 탄산이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막걸리(효모가 병 속에 일부 살아 있는 막걸리)가 아닌 살균 막걸리(병 속의 효모를 살균처리해 없앤 막걸리로, 신선한 맛은 생막걸리보다 떨어진다)를 주로 일본에 수출했기 때문이다. 막걸리 특유의 매력이 없어진 것이다. 우리 술을 해외에 알릴 좋은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해 안타까웠다.”
-판매가 부진한 지역 농산물을 방송을 통해 많이 팔기도 했다.
“방송을 본격적으로 하면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왔다. 골목 식당도 그렇지만, 난 그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 뿐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동네 식당을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니까, 나 스스로가 변하게 되더라. ‘음식 사업가인 내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정말, 더 사람들이 내게 호의를 갖게 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되지?’ 이런 고민을 하게됐다.
그래서,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주변에 실제 보탬이 되는 방송활동을 주로 했다. 좀 더 공익적인 방송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방송을 통해 내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그중에 하나가 지역 농산물 판로 개척이었다. 내가 음식도 좋아하고, 지역 농산물을 좋아하니, 지역 특산물을 많이 홍보하고 싶었다. 농촌과 도시의 불균형 발전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싶어,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전통술 알리기도 공익 차원에서 접근한 것인가?
“그렇다. 음식하는 사람들은 중국, 일본, 홍콩 등지를 벤치마킹하러 많이 다닌다. 그 나라의 술도 알아야 하니까, 현지 술도 많이 마시게 된다.
외국술이 부러웠다. 일본에는 사케뿐 아니라 소주 종류가 엄청나다.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한 소주를 마시는데, 왜 우리는 희석식소주 한 종류만 늘 마시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에는 가양주문화가 번성해서 막걸리 같은 발효주뿐 아니라, 지역 특유의 소주 종류도 엄청났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가양주문화가 단절되는 바람에 우리 술의 다양성이 사라졌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됐다. ‘우리도 술 종류가 일본만큼 많았는데, 이런 술문화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끊어졌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술을 찾아서 마셔보자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우리 술을 배워보자고 생각했다. 막걸리를 좋아했던 시절에는, 지역 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만 줄곧 마셨는데, 이제는 ‘전통주가 뭐가 있지’하는 생각에 다양한 전통주를 찾아 마시는 단계까지 왔다.
공익적인 방송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이제 전통주 업계를 위해서도 무언가 도움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방송에서 음식 얘기를 하면서 지역농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음식이란 게 농산물이 주된 재료이니까. 실제로 지역농산물 판로를 개척하는 일을 방송을 통해 많이 하기도 했다.”
-본업인 음식처럼 전통술도 방송에서 적극 언급하기로 했나?
“그런데, 전통주는 좀 차원이 다르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전통주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이 들더라도, 어설픈 지식을 바탕으로 전통주를 방송에서 얘기하게 되면 잘못하면 도움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겠다 여겼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음식에 대한 정보를 잘못 전달하면, 가령, 음식의 기원이나 역사를 잘못 얘기하면, 독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을 방송에서 다룰 때도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별도로 공부를 더 했다. 그래도, 음식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관심이 있었고, 나름 연구도 많이 했기 때문에 방송에서 음식을 언급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술에 대해서는 섣불리 얘기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너무 어려운 분야이고, 음식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내가 잘 모르는 분야가 술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술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전통주 빚는 지역 양조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전통주 업계에 유명한 전문가분들을 찾아뵙고 얘기를 듣기도 많이 했다.”
-방송에서 전통술을 다룬 사례는?
“골목식당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박유덕 사장을 만났다. 박 사장은 골목식당 대전편에 출연한 분인데, 내가 이런저런 컨설팅을 해서 ‘골목 막걸리’를 새로 개발하게 됐고 지금은 시장 반응이 꽤 좋다. 젊은 사장인데도 불구하고, 술에 관한 한은 이론적인, 과학적인 접근을 해온 사람이다. 가령, 술을 빚을 때, 전통문헌에 쌀을 100번 씻어야 한다면, 박 사장은 ‘쌀을 왜 100번 씻어야 하는가? 사람 손이 아닌 기계로 할 수는 없는가?’ 이런 고민을 수도없이 하는 사람이다.
박유덕 사장을 만나면서 이런저런 도움을 내가 주기도 했지만, 반대로 내가 막걸리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는 기회도 됐다. ‘전통주를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전통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내게 주기도 했다.
암튼 방송에서 전통주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고 싶은데, 그럴려면 내가 직접 전통술 만들기를 많이 해봐야겠다고 판단했다. 귀동냥 정도 듣고 방송에서 전통주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막걸리 빚기는 언제부터 했나?
“술 공부를 작정하고 나서 2~3년 전부터 집에서 직접 막걸리를 담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알코올 도수 14도인 백걸리는 막걸리가 아니다. 물을 타지 않은 원주다.(일반 막걸리는 발효가 끝난 원주에 두세 배 많은 물을 타서 알코올 도수를 6도 내외로 뚝 떨어뜨려 만든다)
그런데 집에서 막걸리를 만들다 보니까, 굉장히 재미있었다. 발효 중인 술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저어 보고. 또, 내가 원래 손이 크고 성미가 급한 편이다. 술 한통을 빚어, 그 술 발효가 끝나기도 전에, 또 한통의 술을 새로 빚는 식으로 술 만드는 양이 엄청 불어났다. 집 안에 술독이 하나둘씩 늘어나니까, 아내가 질색을 하더라. 그러면서 아내도 완성된 술을 맛보고는 굉장히 좋아했다.
술을 배우겠다고 시작한 막걸리 빚기에, 점점 재미가 더해졌다. 맛도 당연히 좋았다. 그때문에 살도 좀 쪘다. 그런데, 무언가 맛있는 걸 만들면 그걸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담은 술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됐다.”
-술을 팔지 않고 그냥 선물로 준 것이 왜 문제가 되나?
“술을 담아서 나눠주는 것 자체도 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주변에서 하는 얘기가 ‘집에서 담은 술을, 집으로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마시고, 또 남은 술을 싸주는 것은 문제되지 않지만, 술을 병입해서 선물로 돌리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런데 감당이 안될 정도로 술을 많이 만들어놓았으니, ‘조용히 집에서 소비’하는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이 많은 술을, 언제까지 집으로 사람들을 불러 다 마실 거냐? 생각하니 답이 없었다.
그래서 해결방법을 찾다보니 양조장 허가 받기가 그리 까다롭지 않다는 걸 알게됐다. ‘차라리 양조장 허가를 내세요’ 주변에서 이렇게 권했다. 그래서 정말 처음에는 양조장을 작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런데, 항상 내 머리에는 두가지 생각이 공존한다. 무언가 배우고 싶은 생각과, 또 이를 사업화하고 싶은 생각, 그것도 대량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양조장에 자동설비를 잔뜩 들여놓았다. 쌀을 손으로 씻는 것도 번거롭고, 발효 중인 술을 일일이 주걱으로 젓는 것도 귀찮았다. 발효가 끝난 술을 손으로 짜는 것도 사실, 보기가 좋지는 않았다. 이 모든 공정을 기계가 알아서 자동으로 하도록 하다보니, 양조장에 들여놓을 장비도 많고, 한번에 생산하는 술 양도 꽤 많았다.
양조장에 이러저러한 현대설비를 들여놓는데는 박유덕 사장이 큰 도움이 됐다. 나보다 앞서 양조장을 차렸고, 그것도 전통주의 현대화에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형식상 양조장 허가만 낼 생각이었다. 내가 만든 술을 팔지는 않고,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결국 각종 양조설비를 갖춘 번듯한 양조장을 차리게 돼버렸다. 박유덕 사장은 백술도가 양조장을 기계화하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다.”
-박유덕 사장에게는 방송에서 어떤 조언을 했나?
“골목식당 방송 프로그램에서 박유덕 사장을 만나, 이런저런 조언을 할 때 전통주 업계로부터 욕을 먹기도 했다. 박 사장은 젊은 나이에도, 전통 누룩을 써서, 전통 방법으로 막걸리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런데, 장사가 워낙 안돼서 나에게 도움요청을 한 것이다.
그때 내가 준 솔루션(해결책)은 ‘전통방식대로 술을 만들기에는 아직 이르다. 지금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이 어떤 스타일의 막걸리를 마시는지 알아보고, 그 비슷한 술을 먼저 만들라’는 거였다. 그래서 지역의 저렴한 막걸리를 여럿 갖다놓고 테이스팅도 여러번 같이 했다. 그때 맛본 대부분의 지역 막걸리들은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를 넣었고, 가격은 저렴한 술들이었다. 이런 달짝지근한 술들이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이런 술부터 시작하자고 권한 것이다.
‘박 사장 같은 좋은 생각(전통누룩을 사용해 정직하게 술을 빚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살아 남아야 돼.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어느 정도 시장과 타협할 줄도 알아야 돼’ 이런 얘기를 방송에서 해줬다. ‘전통술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당연히 좋지만, 우선은 현대인이 좋아할 만한 술을 만들어 사업을 점차 키워나가는게 좋겠다’고 조언한 것이다. ‘일단은 개량화된 것, 필요하면 감미료도 좀 들어간 술을 먼저 내놓고, 어느 정도 사업에 탄력이 붙으면 그때 가서 정말 만들고 싶었던 술을 만들면 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방송을 본 전통주 하는 분들이 지탄을 했다. ‘(백종원 대표는)전통주를 살리겠다는 사람을 찾아가, 개량화된 누룩인 입국(일본식 공장화된 누룩)을 전통누룩 대신 권하고, 왜 시장과 타협하라고 하느냐’는 지적이었다.
당시 내 생각은 이랬다. 전통술을 만들겠다는 박유덕 사장의 포부는 높이 평가하지만, 당장은 사업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니까, 어느 정도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시장 친화적인 술을 만들라고 조언한 건데, 마치 전통술에 반대되는 조언을 한 것처럼 양조장 분들이 오해를 하신 것이다.
결국은 박 사장이 내 조언대로 골목막걸리를 만들었고, 시장 반응도 좋다. 그때 방송을 떠나서 개인적으로도 지원을 많이 해줬고, 그래서 굉장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는 내가 양조장을 하게 됐고, ‘이번에는 박 사장이 나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양조장 기계화를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백걸리’라는 공동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백술도가에 박 사장이 참여하고 있나?
“그렇다. 양조장 운영에도 관여하고 있다. 술 만드는 기술은 박 사장이 나보다 뛰어나지만, 술 먹어본 경험은 내가 훨씬 많다. 술이 잘 팔리려면 어떤 맛을 내야 하는지는 내가 한수 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골목막걸리 개발할 때도 내가 많이 관여했고, 또 백걸리 만들 때는 반대로 박 사장이 많이 도왔다.”
-백걸리 도수는 왜 14도로 했나?
“알코올 도수를 낮추려고 물 타기가 싫었다. 집에서 술을 만들 때도 물 타지 않고 원주 상태로 마셨다. ‘독한 막걸리 마시고, 취하면 되지, 왜 물을 타나?’ 싶었다. 옛날 전통문헌에도 전통 막걸리는 지금으로 치면 알코올 도수가 10~12도 정도 되는 걸로 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도수가 많이 내려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얼마나 정확한 얘기인지는 몰라도, 굳이 도수를 낮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수가 낮으면 낮을수록 유통에도 문제가 있다. 알코올도수 6도 정도로는 장기간 유통이 어렵다. 하지만 도수가 높은 술은 변질 우려가 크게 줄어든다. 그렇다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 맛도 좋고, 유통도 용이하다면 전통주 시장 개척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만약 지금 내가 백걸리를 시장에 내놓는다면 ‘백종원이가 자기 이름 내걸어 막걸리까지 판다’고 비난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14도의 백걸리를 마셔본 사람들 중 ‘어, 이 술 맛이 괜찮네’라는 사람이 점차 많아진다면, ‘도수 높은 막걸리’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질 것으로 본다. 백걸리처럼 도수 높은 프리미엄 막걸리의 저변 확대는 전통주 양조에 새로 뛰어드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얼음 타서 마시는 막걸리는 낯설다.
“워낙 도수가 높다 보니, 백걸리의 마케팅 포인트를 ‘물을 타거나 얼음을 넣어서 마실 것’으로 잡고 라벨에도 그렇게 표기했다. ‘언더락으로 즐기는 막걸리’를 강조한 것이다. 10년 전 업계가 실패했던 해외시장 공략에도 알코올 도수가 높은 점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도수가 높으면 컨테이너당 수출 부가가치가 높고, 유통과정에서 끓어오름(탄산이 과하게 생기는 현상)도 많이 방지할 수 있다. 지금 백걸리의 정식 유통기한은 두달인데, 석달도 전혀 문제 없다. 계속 테스트하고 있는데 냉장보관이라면 8개월도 문제 없는 것으로 나온다. 사실, 백걸리는 사서 바로 마시는 것보다는 냉장고에 어느 정도 숙성해두었다가 마시는게 오히려 훨씬 목넘김이 부드럽다.”
-더본코리아 체인 식당에서는 판매하나?
“현재는 어디에서도 판매하지 않고, 출시 시점을 고민 중이다. 아직은 선물로 지인들에게 나눠줄 뿐이다. 수천병을 그렇게 나눠줬다.”
-외부 판매 계획은 없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본다. 계속 술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맛을 본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도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이미 말했지만, 백걸리는 판매를 목적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전통주를 방송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어, 만든 것이다. 내가 술을 만든 경험이 쌓여야 전통주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준비가 된다면, 시장 여건이 허락한다면 외부 판매도 할 것이다.”
-음식 연구가로서, 전통주 업계를 어떻게 보나?
“좋은 전통주는 이미 굉장히 많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게 안타깝다. 나도 음식 공부하러 해외를 여러번 나가봤는데, 영국의 위스키, 멕시코의 데킬라, 일본의 사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국술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우리 전통술의 세계화 수준은 아직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안으로 들여다보면 해외에서 호평받을 전통술이 정말 많은데, 아직 그 진가가 해외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국내에서도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 술들이 드물 정도로 홍보가 덜돼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암울한 현실이 오히려 기회라고 여긴다. 앞으로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국내와 해외에서 우리 술이 제대로 평가받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특히 해외에 우리 전통술을 알리는데 기여를 하고 싶다.”
-백걸리는 세번 담금한 삼양주다. 삼양주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발효 과정에서 세번 술을 담그는 삼양주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점이 백걸리를 삼양주로 만들게 됐다. 삼양주는 밑술 한번, 그리고 두번의 덧술로 발효가 마무리된다. 그런데 삼양주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삼양주가 뭐지? 백걸리는 왜 삼양주로 만들었지?’ 궁금해하지 않겠나? 소비자들이 전통술에 한발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백걸리가 담고 있는 향과 맛은?
“특별히 언급하고 싶지 않다. 방송을 통해 이름이 많이 알려진 나같은 사람이 ‘내가 만든 술에는 바나나 향, 야쿠르트 향이 난다’고 얘기하면 사람들이 이 술을 마실 때,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얼음을 타서 마시라고 권하는데, 얼음을 타지 않았을 때와 얼음이나 물을 타서 마실 때 느끼는 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 사서 바로 마시는 경우, 냉장고에 일주일 혹은 이주일 두었다가 마시는 등 맛과 향에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셀 수가 없다. 나는 술을 만들었을 뿐, 이 술을 어떻게 느끼는지는 소비자들의 전적인 자유다.”
이쯤에서 백걸리에 대한 전문가의 시음평가를 잠시 소개한다. 경기도농업기술원 이대형 박사의 시음기다.
♦색: 진한 노란색을 띄고 있으면서 어두운 회색도 많이 보인다. 농도가 걸쭉하고, 제성은 곱지 않고 거칠다.
♦향: 초반에 곡물의 향과 누룩향이 느껴지고, 단향이 느껴진다. 중간 이후에 알코올 향과 매운 향이 있다.
♦맛: 단맛과 함께 새콤함이 있다. 제성이 곱지 않아 혀에 남는 거친감이 있고, 텁텁함도 있다. 단맛은 적은 편이다.
♦후미: 마지막까지 누룩과 알코올의 쓴맛, 단맛, 신맛이 느껴진다.
-백걸리는 단맛이 적고 오히려 쓴맛이 이어진다. 단맛을 의도적으로 낮춘 건가?
“물을 적게 타는 백걸리는 당연히 일반 막걸리보다는 쌀 함유량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단맛은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다. 술이란, 모름지기 음식과 같이 먹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술은 단맛이 적은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백걸리는 가급적 단맛을 줄였다. 쓴맛이 나는 것은 발효기간을 의도적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제성이 곱지 않아 혀에 담는 거친감, 탄닌같은 텁텁함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게 한 이유가 있나?
“와인 얘기를 먼저 하고 싶다. 좋은 레드와인은 적당한 무게감과, 기분 좋은 탄닌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말벡 품종을 좋아한다. 카베르네 쇼비뇽도 좋아하는데, 다소 바디감이 묵직한 와인을 좋아한다.
막걸리도 얼마든지 묵직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성을 다소 거칠게 해서 탄닌같은 텁텁함을 느끼도록 했다. 하지만, 냉장고에 2~3주 정도 숙성을 하면 목넘김은 부드러워지는 반면, 텁텁함은 줄어든다. 와인은 숙성을 오래하더라도, 특유의 탄닌감이 없어지지 않고 특유의 맛이 더 단단해지는데, 막걸리는 숙성을 어느 정도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다.”
-얼음을 넣어 마실 것을 추천했는데, 그럴 경우 목넘김이 부드럽기는 하지만, 곡물향들이 사라지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 지적은 전문가들이나 하는 얘기다. 나는 전문가들을 염두에 두고 백걸리를 만든 게 아니다. 저렴한 6도짜리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막걸리의 신세계’를 느껴보시라고 백걸리를 만들었다. 6도 막걸리 마시는 분이 갑자기 14도 막걸리 마시기는 부담스럽지 않겠나? 그래서 얼음이나 물을 좀 타서 마실 것을 권한 것이다.”
-향후 다른 주종의 술을 만들 계획은?
“증류식 소주에 관심이 많다. 지역 농산물 판매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해서 다양한 소주를 만들고 싶다. 일본이나 중국에는 좋은 소주가 많다. 우리나라에도 마찬가지다. 가령, 전남 해남은 고구마가 유명한데, 고구마 소주가 딱이다.
밀감 과육을 넣은 발효주를 증류한 소주 ‘미상’을 만드는 시트러스라는 회사가 제주도에 있다. 25도 알코올 도수의 소주인데, 개발 과정에 조언을 해준 사실이 있다. 나중에 이런 다양한 원료를 활용한 소주를 개발, 해외시장을 두드려보고 싶다.”
-2030 젊은층을 위한 전통술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전통술을 좋아하는 젊은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30 소비자들은 물론 누구나 전통술에 관한 모든 콘텐츠를 한 곳에서 볼 수 있고, 전통술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커뮤니티형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전국 양조장에서 만드는 다양한 전통술을 소개하는 공간도 마련한다.”
-전통주 양조장 대표들에게 한말씀? 음식에 잘 매칭되는 술 개발을 위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하나?
“음식과 잘 어울리는 술들은 이미 충분히 많다. 그래서 새로운 술 개발보다는 오히려 이미 만든 술을 잘 알리려는 노력을 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선택과 집중을 해달라는 것이다.”
-전통술 관련해, 하고 싶은 일은?
“두 가지다. 첫째는 전통주를 많이 알리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전체 소주 시장에 비해 전통술 시장 규모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시장 파이를 키우는데 일조하고 싶다. 그때문에 백걸리를 만들었다. 방송에서도 적극적으로 전통술을 다룰 것이다.
둘째는,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전통술을 많이 팔아보고 싶다. 내가 만든 술이든, 외부에서 만든 술이든 상관없이 잘 팔고 싶다. 해외유통에도 용이하도록 백걸리 도수를 14도로 한 것처럼, 전통술 수출에도 욕심이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오자 소주 ‘화요’가 문득 생각났다. 2007년, 광주요 조태권 회장이 세상에 내놓은 화요는 현재 전통주 업계 전체에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생산 붐을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화요는 출시 초기에는 전통주 업계의 비난도 적지 않게 받았다. ‘화요는 전통적인 상압증류방식이 아닌 일본에서 흔한 감압증류방식(증류설비 내부 기압을 낮춰 낮은 온도에서 술을 끓게 하는 증류방식으로 탄내가 없고, 향이 담백한 반면, 깊은 풍미는 덜하다)으로 술을 내리기 때문에 전통주라고 할 수 없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전통주 업계 전체에 감압증류방식이 2030세대를 겨냥한 새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백걸리도 화요와 비슷한 길을 걸을 가능성이 있다. 백걸리가 만약 외부 판매를 할 경우, ‘음식 사업가가 유명세를 활용해 막걸리시장까지 뛰어들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나중에는 ‘프리미엄 막걸리 시대를 활짝 연 주역’으로 평가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백 대표에게도 당연히 좋은 일이겠지만, 무엇보다 전통주 업계 전체에 희소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