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탄소 배출 감축과 미세 플라스틱 문제 해결은 식품 업계에도 커다란 과제가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배달 서비스와 가정간편식(HMR) 및 밀키트 수요가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폐기물도 함께 늘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플라스틱 폐기물은 전년 대비 20%가량 늘었다고 한다. 배달 음식을 담는 용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종이 폐기물도 전년 대비 25% 증가했다. 언택트 소비로 택배 물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폐기물 저감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식품기업들은 친환경 포장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생수병의 재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비닐 라벨을 제거하는 ‘무라벨 생수’ 제조 ▲생분해성 소재를 사용한 바이오페트 포장재 적용 ▲일회용 빨대와 수저 제거 ▲트레이(포장재용 틀) 축소·제거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친환경성을 강조하는 신기술이 정말 환경에 이로운지 확인이 어렵다는 점이다. 오히려 친환경성 제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자원을 많이 소비하거나, 폐기물 발생량이 늘어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2021 대한민국 식품대상에서 포장·디자인 부문 심사를 맡은 윤찬석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 부장은 “괜찮은 포장이라고 보이지만,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는 포장재, 즉 ‘그린워싱’이 많다”고 말했다. 그린워싱(Green Washing)은 친환경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친환경이지 않은 활동을 의미한다. 친환경으로 속였다는 점에서 ‘위장환경주의’라고도 부른다.
윤 부장은 “친환경 포장은 비용이 오르고 가공 방법도 복잡해진다는 점에서 기업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탄소 감축이 사회적 의무와 법적 의무가 돼 친환경 포장은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린워싱에 대해선 향후 ESG 평가에서도 철저하게 검증하게 될 것”이라며 “EU에서는 다양한 법제를 마련해 거짓 친환경을 가려내고 기업 평가를 정확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환경법을 통해 그린워싱 마케팅을 걸러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전문가들도 밀키트 상품 포장재의 ‘비환경성’을 지적했다. 포장·디자인 부문의 또 다른 심사위원인 신동민 그레이 대표는 “코로나19로 배달 음식과 밀키트가 다양해지면서 잼 등을 담는 일회용 용기가 상당히 많아졌다”면서 “간편성을 위한 일회용 용기는 지속가능성과는 정반대에 있다”고 말했다.
히노컨설팅펌의 황경아 이사는 “밀키트 상품을 뜯어보면 재료별로 하나하나 포장돼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면서 “재료가 섞이는 것을 막아 보기 좋게 하려는 것이겠지만 조리 과정을 번거롭게 하고, 폐기물 문제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는 포장재가 정말 친환경적인가에 대해서도 들여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 부장은 “플라스틱을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박스 등 종이 포장재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포장재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종이와 비닐 어느 쪽이 더 친환경적인지에 대하선 아직 이견이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종이 포장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무가 사라지고, 제지 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비닐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포장재가 식품 안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검증하고, 이를 규범화하는 입법 과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윤 부장은 “플라스틱에 담긴 HMR 상품을 전자레인지로 조리하는 과정에서 환경호르몬 등이 발생해 소비자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며 “포장재와 식품 안전성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전자레인지 등으로 조리를 하다보면 고열이 발생하고, 비닐포장재나 플라스틱 용기에 든 식품으로 ‘이행(Migration) 반응’이 일어난다”면서 “포장재에서 발생한 유해 성분이 식품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가차원에선 포장재 안전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다”면서 “국민 건강과 수출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포장재 안전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