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술품평회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풍정사계 춘’은 전통주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누룩술’로 잘 알려진 약주다. 국내산 쌀과 물, 그리고 양조장 대표가 직접 만든 전통 누룩으로 빚었다. 제조사인 화양 양조장의 이한상 대표도 “이번 대통령상 수상은 누룩술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풍정사계 춘은 2017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 청와대 만찬주로도 선정됐을 정도로 품질을 진작에 인정받은 술이다.
풍정사계 춘은 옛부터 물맛 좋기로 유명한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의 풍정마을에서 빚는다. 풍정은 ‘단풍나무 우물’이란 뜻이다. ‘풍정사계’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계절별로 맛과 향이 다른 네 가지 술에 춘(약주), 하(과하주), 추(탁주), 동(증류주) 이름을 붙였다. 브랜드 네이밍이 전통주 중에서 가장 잘된 경우라는 칭찬도 많이 받는다. 이번에 대통령상을 받은 풍정사계 춘은 봄술, 약주로 풍정사계 네 가지 술 중 가장 먼저 만든 술이며, 다른 술들의 모태가 되는 술이다.
풍정사계 네 가지 술을 빚는 양조장(술방) 이름은 ‘화양’이다. 1554년 어숙권이 만든 백과사전인 ‘고사촬요’에 나오는 ‘조화양지’의 준말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향기롭고 조화로운 술이 빚어진다는 이한상 화양 대표의 술 철학이 술방 화양에 오롯이 담겨 있다.
풍정사계 술은 춘하추동 구분없이 한마디로 누룩술이다. 누룩이 아낌없이 들어간 술이다. 누룩 비중이 쌀 함유량의 10%에 달한다. 국내 전통술 중 누룩을 가장 많이 쓰는 술 중 하나다.
하지만, 누룩술은 최근의 전통술 트렌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새로 전통술 양조에 뛰어든 신세대 양조인들은 누룩취(누룩에서 나는 역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누룩 함유량을 줄이거나 아예 넣지 않고, 개량누룩인 입국 사용을 늘리고 있다. 입국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누룩으로, 원산지가 일본이다.
양조인들이 누룩을 꺼려하는 이유는, 그들이 만드는 술의 주소비층인 젊은이들이 누룩취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누룩을 덜 넣으면 아무래도 누룩 냄새가 덜 나게 된다. 하지만 전통누룩에 비해 입국은 발효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별도로 효모를 보충해 발효를 활성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전통 누룩 대신 입국 사용을 늘리는 양조 트렌드를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양조인이 풍정사계를 빚는 이한상 대표다. 그는 ‘내 누룩이 없으면 내 술이 없다’고 말한다. 명색이 전통주를 빚는다면, 내가 직접 만드는 누룩으로 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가 전통누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잠시 들어보자.
“누룩은 단순한 발효제가 아니다. 전통술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술 맛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원료인 쌀 덕분이기보다는 다양한 미생물이 들어있는 누룩을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히 있다. 요즘 대부분의 양조장이 누룩 대신 사용하는 입국(개량누룩)은 과학화, 표준화돼 있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한번에 몇t도 만든다. 하지만 전통누룩은 기껏해야 100kg, 200kg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이러니 누룩을 쓰는 술은 대량생산 자체가 안된다. 시중에서 많이 팔리는 막걸리들은 죄다 입국을 사용한다. 효용성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보면, 입국을 쓰지 않고 누룩을 쓰는 것은 고속도로를 차로 이동하지 않고, 가마로 타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전통술에 있어 누룩은 우리 조상의 혼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누룩 없는 술은 전통술이 아니다.”
‘누룩 예찬론자’인 이한상 대표는 정작 본인의 누룩을 갖는데 10년이 걸렸다. 술 공부를 시작한 해는 2006년, 그리고 풍정사계 춘을 세상에 내놓은 게 2015년이다. 에누리 없이 꼬박 10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 주류면허를 반납하기도 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고향인 청주에서 사진관을 10여년 운영하다, 전통술 빚기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간, 그의 누룩 배우기 노력은 수도승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누룩을 빚어, 띄우는 모든 과정을 일일이 기록에 남기고, 또 새 누룩을 만들 때마다 전문가에게 자신이 만든 누룩을 보여줘 호된 지적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는 다음번 누룩을 만들 때 지적받은 부분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이런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고, 수백번의 시행착오 끝에 제대로 된 누룩으로 약주를 빚는데 성공했다.
그 기간이 무려 10년이 걸렸고, 그런 과정을 거쳐 2015년 풍정사계의 간판 술인 ‘춘’ 약주가 탄생했다. “고급스런 화이트와인 같다”는 평가를 받은 춘은 청와대 만찬 행사를 비롯해 정부 주관 주요 행사에 단골 건배주로 선정됐다. 인터넷 판매 역시 수시로 품절돼 지금은 한달에 두번 토요일에만 판매를 하고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
이런 풍정사계의 인기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청와대 만찬주 선정 약발일까? 우선, 풍정사계 춘에는 누룩이 많이 들어간 술 맛에 배여 있는 누룩취가 없다. 그뿐 아니라, 오래 숙성시킨 화이트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은 풍미를 갖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한상 대표는 “풍정사계에 들어가는 누룩에는 녹두가 10% 정도 들어있어 술이 연한 황금빛을 띤다”고 말했다.
풍정사계에 들어가는 누룩은 밀 90%, 녹두 10%로 만든다. 이를 ‘향온곡’이라 말한다. 양조장 이름을 따온 옛문헌 고사촬요에도 나오는 향온곡을 근래 들어 직접 만들어 술 빚기에 처음 성공한 양조인이 이한상 대표다. 그러자, 여러군데서 ‘향온곡이 뭐냐? 어떻게 만드느냐?’며 향온곡 붐이 일기도 했다.
이한상 대표로부터 향온곡에 대한 설명을 더 들어보자. 그는 누룩을 얘기하면서 풍정사계 밑술은 백설기 떡, 덧술은 고두밥으로 하는 이유도 같이 설명하고 있다.
“향온곡은 밀과 녹두를 9대 1의 비율로 빚는다. 녹두가 들어간 향온곡으로 빚는 풍정사계 술(춘)은 다른 약주에 비해 더 황금빛을 띤다. 아주 예민한 사람은 향온곡으로 만든 술(풍정사계 춘)을 맛보고 녹두를 느끼는 사람들도 더러 있더라. 내가 만든 약주는 다른 사람이 만드는 약주에 비해 좀더 황금색을 띤다. 잘 만든 화이트와인 색상과 비슷하다. 환한 골드빛이 도는 색상이라고 할 수 있다.
술 맛도 좀 부드럽다. 향이 강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맛이 좀 감미로운 것 같다. 술의 향과 맛을 결정하는 것은 누룩만이라고 할 수 없고, 복합적이다. 쌀에서 연유하는 향과 맛도 당연히 있다. 이양주 술 풍정사계를 만들 때 밑술을 고두밥을 찌지 않고 백설기 떡으로 하는 것도 술 맛에 영향을 준다. 덧술은 찹쌀로 고두밥을 찐다. 고두밥으로 하면 맛이 좀 강하고, 죽으로 하면 단맛이 도드라진다. 떡은 그 중간 정도다.
달지 않고, 부드러운 술을 만들기 위해 백설기를 밑술로 한다. 고두밥으로 만든 술이 남성적이라면 백설기로 빚은 술은 여성적이다. 그래도 죽으로 만든 술보다는 덜 여성적이다. 남성적인 맛과 여성적인 맛의 중간 맛, 복합적인 맛을 내려고 한다. 약간 쌉싸름한 맛도 난다.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살짝 찌르는 맛이 있다. 끝맛이 살짝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넘어간다. 전체적으로는 부드럽다고 할 수 있지만 끝에 가서 톡 쏘는 강한 맛도 있다.”
풍정사계 춘의 또다른 장점은 냉장보관만 해두면 두어달 정도는 맛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저온숙성(후발효)을 통해 완전발효를 하기 때문에, 술을 병에 담은 후에는 발효가 일어나지 않아 탄산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풍정사계 춘은 1차 발효를 30도 정도의 온도에서 사흘간 진행한다. 이걸 ‘주발효’라고 한다. 그리고 저온(17~18도) 숙성이라는 2차 발효(후발효라고도 함)를 두달 정도 함으로써, 완전발효를 한다. 또, 후발효 후에 찌꺼기를 거르는 여과를 거치기 때문에 효모의 먹이도 전혀 남아 있지 않다. 효모가 먹이인 당분을 먹고 알코올과 탄산을 토해내는 것이 발효다. 먹이가 없으니, 발효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풍정사계 술은 여과하고 나서 곧바로 병입하지 않고, 2~3개월 더 숙성을 한다. 저온에서 장기숙성을 하기 때문에 병입하고 난 이후에 맛의 변화가 거의 없다. 이 대표는 “내가 소주 한잔이 정량일 정도로 술을 못마시는데, 우리 술은 두잔, 세잔 마셔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장기 저온 숙성을 하게 되면 숙취 성분들이 거의 다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저온 숙성’ 덕분에 숙취가 없다는 얘기다.
이한상 대표의 술 모태는 ‘할머니 술’이다. 이 대표가 만든 풍정사계 춘에는 할머니가 만든 술 맛이 느껴진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어릴 적에는 할머니가 집안 대소사에 늘 술을 빚었다고 한다. 그리고 술을 빚기 전 할머니는 직접 누룩도 만드셨다.
“누룩을 처음 접한 것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술 빚기 전에 만든 누룩이었다. 밀을 맷돌에 갈아서 누룩을 만드셨다. 반죽을 한 밀누룩은 둥근 체를 이용해, 동그랗게 형태를 잡으셨다. 볏짚으로 만든 그릇(둥그미) 안에 반죽한 누룩을 세겹 정도 짚에 싸서 넣어두셨다. 그리고는 몇날며칠을 홑이불로 덮어놓았다. 그렇게 두었다가 술 담글 때마다 누룩을 빻아서 사용했다. 할머니는 술 만들 때면 둥그미에서 누룩을 꺼내 말리는 등 누룩 법제를 하시는 걸 어린시절 나는 신기하게 봤다.
법제한 누룩은 고두밥에 치대서 밑술을 만들었다. 이렇게 가양주 빚는 걸 어릴 적부터 봐왔다. 그리고 할머니는 다 빚은 술을 손자인 내게도 맛보여줬다. 물론 한모금 마신 게 다였다. 내가 처음 맛본 술은 할머니가 만든 술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5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 지금 내 술에도 할머니가 만든 술맛이 난다. 내가 만든 술 약주, 춘을 맛보면서 ‘이건 할머니가 만든 술맛이 난다’고 느낀다.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인상적으로 맛본 술은 경주 교동법주였다. 교동법주 역시 할머니의 술을 떠올리게 만든 술이다. 내가 술을 빚게끔 만든 ‘마중물’ 역할을 한 술이 교동법주다. 내 술의 원형은 할머니가 빚은 술이다. 할머니의 술과 내 술을 이어준 술이 교동법주다.
그러나, 처음 술을 배울 때는 할머니의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전통술을 배워 만들어보자’는 정도의 생각뿐이었다. 풍정사계 춘을 완성할 즈음에야 ‘아 내가 만드는 술의 모델이 할머니의 술이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술을 배울 때부터 할머니의 술을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하고 있었던 것같다.”
이한상 대표와 누룩 얘기를 한참 하다 보니, 누룩틀 개발 스토리도 듣게 됐다. 메주 쑤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룩은 손이나 발로 디뎌야 형태를 잡을 수 있다. 사람의 손발이 닿아야 하니 힘이 들 수밖에 없어 누룩을 대량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누룩틀이다. 유압기를 이용, 기계의 힘으로 눌러 누룩 형태를 쉽게 만드는 장비다. 누룩틀은 이 대표 혼자 만든 것은 아니고, 그와 함께 누룩 공부를 하는 모임에서 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이한상 대표는 “누룩틀 덕분에 요즘엔 일년치 누룩을 3~4일이면 형태를 만들 수 있다’며 “발로 디뎌 누룩 형태를 만들 때는 거의 한달이 걸리던 고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기계의 힘을 이용하는 누룩틀을 쓰면, 누룩 만들기가 훨씬 쉬워졌을텐데, 이 대표는 누룩 생산량을 왜 크게 늘리지 않았을까? 누룩량이 많아지면 그만큼 술 생산량도 비례해서 늘어날 수 있을텐데?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그는 “아직 누룩술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많지 않아, 누룩 생산량을 늘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수요가 늘어야 공급을 늘릴 여지가 있다는 것은 당연지사. 대량생산이 가능하다고 해서 수요와 상관없이 공급만 늘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여기에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품질을 낮출 수는 없다는 이 대표의 ‘황소 고집’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은 공간의 제약이 있고, 누룩술 수요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지금 양조장 운영을 가족이 도맡고 있다. 우선 우리 부부가 대부분을 하고 자식들도 일부 돕고 있다. 가족경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 동원해 누룩 더 많이 만들 수 있다. 그에 비례해 매출이 늘어난다면 얼마든지 사람 써서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사람 늘려 생산을 늘릴 정도로 제품 수요가 많지 않다. 누룩 두배, 세배 만들 수 있고, 술도 두배, 세배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술이 한정적이다. 수요가 한정적인데 공급만 크게 늘리면 뭐하나? 재고만 쌓일 뿐이다.
풍정사계는 병당 가격이 3만원 안팎인 고가의 술이라, 내가 마시려고 사는 경우보다는 선물하기 위해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기 어렵다.
세상과 타협하려면 착한 가격대의 술을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자니, 지금보다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재료를 쓸 수밖에 없고. 발효, 숙성 기간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할 역할은 ‘누룩술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다. 누룩술을 많이 팔기까지 하면 더 좋겠지만, 그러려면 내 욕심만큼 좋은 술을 만들기 어렵다. 대중에 영합해 저렴한 술을 만든다면 그 술에서는 ‘할머니의 술 맛’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적게 팔리더라도 ‘할머니의 술 맛’이 나는 개성 있는 술, 누룩 술을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나중은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한참 지난 먼훗날에는 누룩술이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될지?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내가 만든 술이 그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
그래서 생산도, 매출도 욕심부릴 생각이 없다. 할머니의 술맛이 남아있는 술을 내가 오래 만들다 보면, 어떤 다른 사람이 누룩술을 상업화, 대형화할 수도 있을 거라고 본다. 처음 술을 만들 때부터 한 생각이다. 상업성과 전통성이 양립돼야 한다고, 어느 한쪽이 튀지 않고. 가령, 백세주처럼 개량누룩을 사용해,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식의 술사업은 마음이 가지 않았다. 나는 전통누룩을 사용, 향기로운 술을 만들고 싶었다. 판매가 잘 되는 것은 그다음 고민이다.”
그래서 이 대표는 누룩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개량누룩을 쓰는 후배 양조인들이 못마땅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사실, 가양주 문화가 흔했던 옛날에는 누룩과 술 빚기는 대개 여자의 일이었다. 남자들의 일이 아니었다. 이 대표가 기억하는 술 역시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가 빚은 것이었다. 누룩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요즘엔 어떤가? 상업양조에 뛰어든 사람들 중 대부분이 남자다. 그런데, 이들 남자들이 “누룩은 어렵다”고 고개를 젓는다. 이한상 대표는 “여자분들도 쉽게 만들던 누룩을 남자들이 어려워서 못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힘든 일은 하기 싫다’는 핑계가 아닐까도 생각한다”고 했다.
전통주는 무엇이고, 전통은 또 뭔가? 우리가 전통주를 만든다면서 과거 전통주에 쓰였던 재료나 제조 방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손쉬운 방법대로 술을 만든다면 이걸 전통주라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일본에서 건너온 입국을 발효제로 쓰고, 고두밥도 찌기 번거로우니, 밥을 찔 필요도 없는 팽화미(뻥튀기한 쌀로, 고두밥을 지을 필요없이 곧바로 물에 섞어 술을 만들 수 있다)로 술을 빚는다 치자. 이 대표는 ‘이건 우리 술이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재료나 술 제조방법이 외국 것이라면 그건, 외국술이지 우리 술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말한다. “가령, 김치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전통적으로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빨간김치를 담그지만, 일본은 백김치를 만든다. 우리가 김치종주국으로서, 글로벌시장에서 ‘김치’라는 단어를 고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듯이, 우리 술이 진정으로 존재하려면 누룩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룩이 없어지는 순간, 우리 술이 사라진다. 전통주 양조인이라면 누구나 누룩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누룩에는 우리 혼이 들어가 있다. 우리의 정신을 비롯해 문화적인 것이 다 누룩에 들어가 있다. 다만, 누룩을 좀 더 편하게, 쉽게 만들고 과학화시켜 품질을 균일하게 만드는 노력은 얼마든지 해야 한다. 하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누룩을 만들지 않고 대체품(입국)으로 술을 빚는다는 것은 우리 혼을 없애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그는 누룩을 만들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두가지 중요한 조언을 했다. 누룩 제조 과정을 일일이 기록하고, 전문가에게 자신이 만든 누룩을 보여주고, 지도를 받으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누룩 만들기가 독학은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누룩을 만들 때는, 매일매일 누룩 일지를 썼다. 기록을 세세히 다했다. 누룩을 한장, 두장, 몇번을 디뎠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누룩을 한번 디뎠을 때에, 누룩을 뜨는 과정 전부를 본인이 느꼈는가가 더 중요하다.
또 하나는 내가 만드는 누룩을 평가해주고, 지도해줄 사람을 고르는 게 좋다. 나같은 경우는 한국전통주연구소의 박록담 소장님을 누룩 멘토로 선택했다. 그래서 새로운 누룩을 만들었을 때는 꼭 그 누룩을 가져와서 보여드리고, 평가를 받고, 평가받은 내용을 다음 누룩 만들 때에 반영을 하고, 다시 시도를 하고. 그 과정을 오랫동안 반복을 했다. 나 혼자,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누룩을 만든 게 아니다. 시행착오를 여러번 거칠 때 조금이나마 나아진다. 꼼꼼하게, 성실하게 누룩 만드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또 그걸 전문가에게 보여주고, 또 지적사항을 다음 누룩 만들 때 반영시켜왔다.
기록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누룩을 뜨는 과정을 몸으로 느끼려면 기록이 가장 완벽한 것 같다. 예를 들면, 첫날 만든 누룩 표면 온도를 잰다. 날짜가 바뀌면서 계속 온도를 측정하면, 누룩 표면 온도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자세히 알 수 있다. 다음날 누룩의 습도를 뺏기지 않으려고 보온재로 감싸놓았을 것 아닌가. 보온재를 처음 벗길 때의 느낌, 보온재를 그다음날 벗길 때의 느낌, 세번, 네번 벗길 때 조금씩 다른 느낌을 전부 기록하는 식이다.
매번 벗길 때마다 손 느낌이 다르고, 냄새가 다르고, 습도도 다 다르다. 그걸 하나하나 다 기록하다 보면, 이번에 누룩을 띄울 때와 다음에 띄울 때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다 기록을 해놓아야 한다. 이게 누룩을 제대로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이다. 한번을 빚더라도, 자기가 그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만지고,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아 이렇게 만들면 되겠구나’ 이런 느낌이 온다. 여행 갈 때 아무런 계획없이 가는 것과 어디 가서 무얼 하겠다는 계획을 꼼꼼하게 세운 뒤에 가는 여행이 같을 수 없지 않겠나?그 느낌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화양 양조장이 근래 공을 들이는 술은 증류주다. 원래 풍정사계 춘을 증류한 술이 겨울술인 ‘풍정사계 동’인데, 이와 별도로 새로운 증류주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을 채비를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증류설비도 3년전에 새로 들여왔으며 화양 양조장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제2양조장, 증류주 전문 양조장도 차렸다.
이 대표의 안내로 제2양조장을 찾았다. 2층으로 된 깔끔한 현대식 양조장이었다. 규모는 화양 본 양조장보다 훨씬 컸다. 1층은 사무실과 발효실, 2층은 시음체험장, 숙성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숙성실엔 10여개 옹기에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옹기마다 1년 6개월 정도 숙성시킨 술이 가득했다. 풍정사계 동 증류주는 1년 정도 숙성하는데, 새 증류주는 6개월 정도 더 숙성시킨 셈이다. 이 대표는 “올 가을에는 새로 만든 증류주를 출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민 하나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새 증류주 이름을 아직 정하지 못한 것. 새 증류주는 새 증류설비 영향도 있고 해서 기존 풍정사계 동보다는 맛과 향이 다소 가볍다고 한다. 풍정사계 동은 상대적으로 더 묵직한 술이다. 실제 전통 소주에 더 가까운 술은 풍정사계 동이고, 새 증류주는 보다 현대적인 스타일의 증류주라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맛이 다르고, 무게감이 다르니 같은 이름을 쓸 수 없어 새 이름을 쓸 작정”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연간 매출을 물어봤다. 하지만 이 대표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둘러 이렇게 말했다.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한 20억원 하지 않나?고도 한다. 그런 얘기 들으면 그냥 웃는다. 연간 20억 매출을 올리려면 지금처럼 허접하게 하면 안된다. 직원들도 더 뽑아야 한다. 가족 말고 직원이 서너 명은 있어야 한다.”
현재 화양 양조장은 가족경영 체제다. 이한상 대표와 부인 이혜영씨가 양조장 운영을 주로 하고 있다. 20대 아들과 딸도 술 양조를 돕고 있으며, 서류작업은 자녀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