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가 우유 및 유제품 가격 인상을 막기 위해 낙농업계에 '원유(原乳)가격 인상안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협의가 난항하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는 정권 임기 말 레임덕(임기 종료를 앞둔 대통령·정부 지도력의 공백 상태) 현상으로 문재인 정부의 물가 안정책이 힘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9일 유업계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지난 4일 낙농진흥회에서 열린 '제도개선 소위원회'에 참석해 낙농업계에 원유가격 책정 방식 개선과 원유가격 인상 철회 등을 의안으로 제시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생산자단체 대표자들은 일방적인 의사 진행이라며 반발하고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생산자 단체들이 퇴장하면서 회의는 파행했고, 결국 소득없이 끝났다.
한국낙농육우협회와 전국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는 지난 6일 발표한 공동입장문에서 "농식품부가 낙농전반의 문제를 개선하기보다는 유업체 손실 보전과 물가 관리를 위해 원유 가격 인하만으로 모든 문제를 풀려는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낙농업계는 이달 1일 우유 원재료인 원유 가격을 1ℓ당 926원에서 947원으로 21원(2.3%) 인상했다. 이번 원유 가격 인상은 지난해 7월 21일 열린 '2020 원유가격조정 협상'에서 결정됐다. 이에 따라 우유업체들은 이달부터 인상된 가격에 맞춰 원유를 매입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우유회사들이 지난 1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집유한 원유의 대금을 치르는 이달 17일까지 낙농업계와 협의를 진행해 원유 가격 인상을 최대한 막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오는 13일에 열릴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농식품부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지난해 원유 가격 인상을 결정했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경기가 많이 어려운 만큼 원유가격 인상을 유보하는 방안을 협의해 보자는 것"이라며 "여기에 유업체가 사가는 원유의 가격과 낙농업자의 원유 생산비 간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업계 간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유 가격은 2013년 도입된 원유가격연동제를 따른다. 원유가격연동제는 시장 수급 상황과 무관하게 우유 생산비를 기준으로 낙농업계와 유업체 간 협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한다. 국내 우유 회사는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할당된 원유를 정해진 가격에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한다. 저출산 현상으로 우유소비가 10년만에 최저로 줄었는데도 우유값은 오르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진 이유다.
이 관계자는 "현행 '원유가격 연동제'가 시장 원리에 맞지 않고 우리 낙농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만큼 이를 개선하는 방향을 논의해보자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유업체, 정부, 낙농진흥회 3자가 제안한 안이 있는데, 생산자 단체에서 계속 보이콧(협상 거부)을 해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차기 낙농진흥회 이사회의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일정이 잡히더라도 이사회 성원 부족으로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낙농진흥회장과 농식품부 축산정책국장, 생산자단체 추천 7인, 유가공협회 추천 4인, 학계 전문가 1인, 소비자 대표 1인 등 15인의 이사로 구성된다. 이사회가 진행되려면 전체 이사의 3분의 2 이상이 참석해야 한다. 생산자 단체가 반발해 이사 7명이 회의에 모두 불참하면, 이사회 진행이 어렵다.
유업체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낙농가와의 협상에 실패하면, 우유 및 유제품 가격 안정 정책 방향이 유업체를 향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낙농업자로만 구성된 생산자단체와 달리 기업은 정부의 요청을 외면하기 어렵다.
한 유업체 관계자는 "원유 가격이 작년 결정대로 인상되더라도, 기업들로선 제품 가격 인상을 발표하기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일단 정부의 원유 가격 협상을 지켜보자는 게 내부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른 유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낙농가와 협상을 통해 가격 인상 폭을 어느정도 낮추고, 이를 근거로 기업에도 고통 분담을 말하며 가격을 인상하지 말라고 요구해 오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