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 모습. 앞으론 식품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이 기재되는 법안이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연합뉴스

식품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시하는 이른바 ‘소비기한법(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이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향후 이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되면 2023년 1월 1일부터는 식품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이 표시되는데요.

소비기한법은 유통기한보다 더 긴 소비기한을 표시해 식품 폐기량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죠. 유통기한은 통상적으로 제품을 생산해서 유통매장 등에서 판매할 수 있는 시한을 말합니다.

반면 소비기한은 해당 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 한계점을 지칭하죠. 제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짧게는 3~4일(우유)에서 길게는 2달(두부류), 1년 이상(장류, 병조림·통조림류) 기간이 늘어나는데요.

국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그동안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식품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유통기한보다 기간이 더 긴 소비기한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1985년 ‘유통기한 표시제'를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유통기한을 사용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소비기한’이 글로벌 스탠다드(세계 표준)로 자리잡고 있어서죠.

이 법안은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데 먹어도 될까?’라는 소비자들의 의문을 해소한다는 점에서 소비자 편익을 늘려준다는 평가를 받죠.

식품업체 입장에서도 기존 유통기한보다 재고품을 장기 유통·판매할 수 있게 돼 재고 부담이 줄어듭니다. 특히 외국에서 재료를 수입해 제품을 만드는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밀가루 등 원재료를 이전보다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어 재료비 부담을 더는 효과도 볼 수 있죠.

일각에선 소비자들이 구입한 식품을 더 천천히 소비하고, 폐기도 덜하게 되는 만큼 판매율은 이전보다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우유가 대표적인데요.

이 때문에 낙농업계에선 우유 제품에 소비기한이 적용되면 우유 소비가 더 줄어들 것을 우려해, 해당 제도 적용을 늦춰달라고 목소리를 내왔죠. 국회는 이같은 낙농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유제품에 소비기한을 적용하는 것은 일반 식품보다 8년 더 유예기간을 부여해 2031년부터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우려도 있습니다. 소비기한이 긴 음식이 변질돼 문제가 생기게 되면 책임 소재가 불분명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우려한 식품업계에선 소비기한 도입을 환영하면서도, 제품 보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소비기한 내이지만 고객이나 물류·유통업체가 잘못 관리해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의 책임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식품기업 한 관계자는 “보관 기간이 늘어난 만큼 식품 변질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있다”면서 “이러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구분짓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국회에선 제도 도입 초기 혼선을 막기 위해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병기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죠.

더불어민주당의 최혜영 의원은 지난달 17일 열린 국회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소비기한 도입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면서 “소비기한을 도입하려면 소비기한과 유통기한을 모두 기재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식약처는 유통기한·소비기한 병기 시 식품회사들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이는 물가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는데요.

대신 식약처는 소비기한 도입으로 식품 안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소비기한 책정을 보수적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김진석 식약처 차장은 “식약처에선 일반적으로 소비기한의 마진(유통기한 대비 늘어나는 기간)을 30%로 보고 있다”면서 “우리가 생산업체에 넉넉한 마진을 주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많은데, 소비기한이 극단적으로 표시되지 않도록 행정지도를 할 방침”이라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유통기업들이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식품의 신선도를 보장하는 재고관리 계획을 선제적으로 세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기한이 도입되면 식품 신선도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면서 “ 장기 보관이 예상되는 제품에 대해선 정확한 보관방법을 소비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