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사과향이 매력적이다. 전체적으로 향도 적당하고, 맛도 깔끔하고, 마시기에도 부드러워서 증류주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색다른 느낌의 경험을 선사해줄 것 같다. 88점(100점 만점).”(방송인 정준하-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병이나 상표에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일반적으로 감압증류를 하면 향의 소실이 심한데, 이 제품의 경우 향이 살아있어 그 품격이 느껴진다. 94점.”(김재호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

“전체적인 맛과 향의 밸런스가 좋다. 사과 향이 오래 유지되다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면서 꽃 향과 같은 다른 향이 느껴진다. 향과 맛 등이 마시기에 적당한 느낌이다. 91점”(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박사)

예산사과와인 정제민 대표가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추사백, 추사, 그리고 추사사과와인들. /박순욱 기자

국내 대표적인 전통주 홍보업체인 대동여주도(대표 이지민)가 주관한 한국술 테이스팅에 참가한 전통주 전문가들이 올 초 출시한 ‘추사백 25’ 시음기로 내놓은 내용 일부다.

농업회사법인인 예산사과와인은 사과 와인과 사과증류주 ‘추사’를 생산하는 양조장으로, 올 초에 추사백 40(500ml), 추사백 25(350ml) 2종을 출시했다. 추사백은 사과를 착즙 후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약 8%의 당분을 첨가해 30일 동안 발효한 뒤 감압증류 증류기로 저온 증류한 술이다. 이중 도수가 낮은 추사백 25는 소비자가격이 1만원대로 비교적 저렴한데다, 도수도 낮아 젊은 소비자층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전통주전문점용 200ml 소용량 제품도 추가로 내놓을 정도로 주점 반응도 핫하다.

예산사과와인의 사과증류주로는 이미 ‘추사 40’이 유명하다. 오크통에서 3년 이상 숙성해 색상부터가 호박색이며, 맛과 향 역시 오크향이 강해 위스키에 비해서도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 고급 사과증류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하지만 500ml 한병 가격이 6만원에 달해, 실제 판매는 활발하지 못했다.

가격이 ‘착하지 못한’ 오크통 숙성 추사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온 제품이 이번에 나온 추사백이다. 추사백 40도는 3만원대, 25도는 1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추사백은 증류과정에서 초류를 3% 정도 제거해, 메탄올 같은 숙취 원인 물질이 없어 뒤끝이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상압증류방식으로 내린 추사와 달리, 추사백은 감압증류를 선택, 탄 냄새가 없고 맛이 부드럽고 상큼하다는 것이 양조장의 설명이다.

추사백 출시로 쉴새없이 바쁜 예산사과와인 양조장을 찾았다. 2018년, 2019년 이후 세번째 방문이다. 방문 시기라 6월말이라 사과 열매가 제법 여물었다. 진한 연두빛 사과 크기가 아이 주먹만했다.

예산사과와인 정제민 대표의 설명에 의하자면, 예산사과의 역사는 100년 정도 됐다. 이 지역에서 사과농사를 지은 지가 100년이 됐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사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농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과수원 형태의 사과농사 역사는 길지 않다. 감나무 한그루, 밤나무 한그루가 집집마다 흔했지만, 수백그루의 사과나무를 떼지어 재배한 것은 오래지 않다. 과일 재배를 농업으로 삼은 것은 조선시대만 해도 거의 없었다.

정제민 대표의 설명이다. “일제 강점기 들어서면서 사과를 농업(과수원) 형태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예산지역 사과농사의 출발이 고덕면 바로 이곳이다. 1923년에 일본인이 예산군 최초의 사과재배를 고덕면 대천리에 사과원 형태로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예산에는 현재 1200개 정도의 사과 농장이 있다. 전국 사과 생산량의 5~7%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전국의 30%를 생산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경북이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예산은 충남 내에서는 생산량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충남 내 비중은 여전히 높다.

예산사과와인 정제민 대표는 장인이 수확하는 은성농장 사과를 사용해, 사과와인을 만들고 있다. /박순욱 기자

이곳 예산사과와인 사과 과수원은 은성농원이라 불린다. 예산사과와인 정제민 대표의 장인이 소유, 재배하는 사과밭이다. 과수원 면적을 조금씩 넓혀 현재는 1만평 정도의 사과밭에서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 사과품종은 흔히 ‘부사’라고 부르는 후지 품종이다. 그러나, 후지사과라도 해도, 한가지 후지품종만 있는게 아니다. 은성농원이 주로 심어놓은 후지는 이탈리아 티롤지방이나 스위스지역이 주산지인 피덱스 후지 품종이라고 한다. 후지 품종 중에서 유럽에서 개량시킨 품종이 피덱스 후지 품종이다. 이들 유럽산 후지사과 나무가 전체 농원의 70%를 차지한다.

사과 품종만 유럽산이 아니다. 이곳 사과밭 스타일도 유럽식이다. 과거 일본식 사과밭 스타일은 사과밭 면적이 적고, 사과 나무 가지가 옆으로 많이 퍼져 있다. 한 그루가 차지하는 면적은 상대적으로 넓다. 반면에 유럽 스타일 밭의 나무는 기계가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줄간 간격(열이 다른 나무 간격)은 넓은데 주간(같은 열의 나무와 나무사이)은 좁다. 이렇게 해야 기계화가 쉽고, 노동력이 절감되고, 일정하게 햇빛이 비쳐 일조량이 많다고 한다. 유럽 스타일의 사과밭 생산량이 일본 스타일보다 훨씬 많다.

예산사과와인을 찾은 외국인들이 사과따기 체험을 즐기고 있다. /예산사과와인

이곳 사과밭의 특징은 한마디로 유럽의 사과품종과 유럽 스타일의 사과밭 조성이다. 노동력은 절감하고 품질과 수확량은 크게 늘었다고 한다. ‘한국화한 유럽 스타일의 사과농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정제민 대표의 설명이다.

정 대표가 처음 안내한 곳은 증류주용 발효실이다. 1톤 용량의 발효탱크 10개가 줄지어 서 있다. 추사와 추사백 증류주 원료는 예산지역 후지사과(부사)를 쓴다. 이곳 은성농원에서 직접 수확한 사과로 만드는 제품은 추사애플와인이다. 증류는 감압의 경우 4시간 정도, 상압은 5~6시간 걸린다. 상압증류 증류주 ‘추사’는 향이 강해 오크통에서 적어도 3년 이상 숙성을 거친다. 그래야 맛과 향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올해 초에 출시한 ‘추사백’은, 추사와 달리 감압증류한다. 상압증류와 다르게 향이 거칠지 않아 숙성을 길게 할 필요는 없지만 3~6개월 정도 스테인리스탱크에서 숙성한다. 오크통에서 숙성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술 색깔은 일반 소주와 마찬가지로 투명하다. 추사백의 백은 ‘희다’는 뜻이다.

추사 숙성실로 발길을 옮겼다. 수십개 오크통의 미세한 구멍들에서 나오는 향은 은은하면서도 독했다. 오크통 안의 술 알코올 도수가 50도가 넘기 때문이다. 정제민 대표가 오크통 하나의 뚜껑을 열어, 몇년째 잠자고 있던 술을 약간 꺼집어냈다. 와인 잔에 따라준 술 맛을 보았다. 강한 알코올 느낌이 났지만, 단맛도 강하게 느껴졌다. 정 대표의 설명이다. “오크통에서 막 꺼낸 추사 알코올 도수는 40이 아닌 50도 정도다. 사과 증류주를 3~4년 오크통 숙성한 뒤에, 40도로 알코올 도수를 맞춘 뒤 6개월 정도 스테인리스탱크에서 후숙성을 하고나서 병입한다. 도수를 맞추기 위해 물을 약간 타기 때문에 바로 병입하지 않고 술의 안정화를 위해 6개월 후숙성과정을 거친다.”

예산사과와인 정제민 대표가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사과증류주를 꺼내고 있다. /박순욱 기자

그렇다면, 오크통에서 막 꺼낸 ‘물 타지 않은’ 50도 추사와 도수를 낮춘 40도 추사의 향과 맛 차이는 얼마나 될까? 정 대표에게 물어봤다. “오크통에서 바로 꺼낸 술이 색도 더 진하고, 향도 강하고, 단맛도 있다. 바디감도 있다. 전반적으로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있다. 하지만 50~60도 술을 바로(도수를 낮추지 않고) 음용했을 경우에, 너무 독한 술이 들어갔을 경우 건강상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식도나 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때문에 ‘타협’하는 것이다. 40도 정도로. 술은 알코올이 높을수록 단맛도 있고, 맛있다. 그런데, 너무 독하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으니까, 도수를 40도 정도로 낮추는 것이다.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오크통에서 막 꺼낸 위스키는 50도가 넘지만 결국 물을 좀 타서 40도 정도로 낮춘다.

요즘에는 52도나 독한 도수의 술을 출시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특히 중국의 마오타이 같은 백주 회사들이 50도 이상의 높은 도수의 술을 내놓는다. 하지만 50도 넘는 술을 스트레이트로 많이 마시면 건강에 상당히 안좋을 수도 있다. 너무 독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롯데주류와 협업해 ‘추사47’를 한정판으로 내놓은 적이 있다. 오크통 하나를 아예 물타지 않고 여과만 한 뒤에 병입했다.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그래서 매년 오크통 하나 정도는 물타지 않고 한정물량으로 출시하고 있다.”

예산사과와인 양조장은 2년 전 방문 때보다 새 건물이 2개나 더 들어서 있었다. 400평 규모의 대형 창고, 새로 시작한 추사백 라인(발효와 숙성, 그리고 병입라인)이 들어서 있는 건물 2동은 신축건물이다.

최근 양조장과 창고 공간을 크게 넓혀가고 있는 정제민 대표는 “가능한 경우가 흔하지는 않겠지만, 양조장이 성장하려면 양적 성장이 받혀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0년 정도 술 제조업을 해보니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않고선 가격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더라. 시설과 공간이 더 확충되지 않으니까 양적인 생산을 못하고, 품질 균일화도 잘못하고, 반짝 판매가 뜨는 경우도,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안정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공급을 늘려나가야 한다. 제품의 품질 균일화는 시설 확충과 양적 생산이 기본이 돼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대부분의 양조장들이 영세하다보니 시설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조설비 외에 창고 같은 부대시설 공간이 최소한 생산시설 만큼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예산사과와인 양조장은 크게 4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0년에 지은 카페 동은 사과와인 발효, 숙성실, 카페 레스토랑, 교육체험장, 전시판매실, 게스트하우스 등이 들어서 있다. 30명이 한꺼번에 숙박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단체 손님만 이용이 가능하다.

예산사과와인이 신축한 자재창고. 2~3층 높이에 부지 규모가 400평에 이른다. /박순욱 기자

사과 과수원 위쪽에도 초기부터 지어진 건물이 하나 있다. 사과 보관 창고시설, 과수원 방문객 체험장이 있다. 그리고 카페동 아래쪽에 올 1월에 새로 지은 자재창고는 완성된 술과 각종 자재를 보관한다. 추사백 발효와 숙성고, 상압, 감압증류 설비를 갖춘 생산설비가 들어선 곳도 신축 건물이다. 생산시설, 창고시설 모두를 합하면 1000평 정도. 전국의 양조장 중 규모 면에서는 열손가락 안에 든다.

추사백이 잘나가니까, 예산사과와인은 증류주만 생산하는 양조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발효주가 3종류가 있다. 사과와인 2종, ‘블루베리와인’이 있다. 사과와인 2종은 사과품종이 다르다. 하나는 후지를 원료(식용 금가루 들어있는 제품)로 한 ‘추사애플와인’, 또 하나는 레드러버(스위스 원산지 사과로, 속이 빨간 사과) 품종을 쓴 ‘추사로제’다. 발효과실주 3종은 모두 스위트와인이다. ‘아이스와인 스타일’로 만든 것이다.

이번에 자세한 설명을 들어서 알게됐는데, 아이스와인과 아이스와인 스타일로 만든 와인은 다르다고 한다. 아이스와인으로 유명한 독일과 캐나다에서는 아이스와인과 아이스와인 스타일로 만든 와인을 구분하고 있다. 아이스와인은 겨울철 자연상태에서 언 포도를 따서 양조한 와인을 말하는 것이고, 인위적으로 포도를 얼리거나, 인위적으로 가당해, 당도를 높인 와인은 아이스와인 스타일 와인이라고 한다. 호주나 남아공 경우는 기후를 감안하면, 오리지널 아이스와인을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포도를 따서 얼리거나, 가당을 해서 아이스와인 스타일 와인을 만든다.

한국 역시 아이스와인을 만들 수 있는 기후조건은 아니다. 가당하는 국산 스위트와인은 아이스와인 스타일 와인인 것이다. 정 대표는 “예산사과와인의 사과발효주는 아이스와인 스타일 와인으로서, 제조공정은 아이스와인 만드는 것과 똑같은데 원료의 처리방법이 다른데, 가당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며 “가당은 13% 한다”고 말했다.

카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정제민 대표와 본격적인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우선 요즘 전통주점에서 인기인 추사백을 내놓게 된 배경을 물었다. “추사백은 가성비에 촛점을 맞춘 술이다. 2010년에 설립했으니, 와이너리를 시작한지 만 10년이 됐다. 최근에는 많이 바뀌긴 했는데, 그동안에 와이너리를 방문, 술을 사가는 사람들을 보면, 선물용으로 사는 게 대부분이었다. 자기가 마시려고 사는게 아니라, 남 주려고 산다는 얘기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우선 사과와인만 보더라도 시장여건이 좋지 않다. 외국의 가성비 높은 와인들이 이미 국내에 많이 들어와 있다. 싸고 다양한 술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사과와인을 비롯한 국산 과실주들은 비싸고, 다양성도 없다.

증류주도 마찬가지다. 오크통 숙성한 추사(40)의 경우 500ml 한병에 6만원이다. 비싼 가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의 증류주 시장을 보면, 희석식소주 시장이 압도적으로 크다. 2018년 통계로 성인 1인당 연간 소주 86병을 마셨다고 한다. 3조원이 넘는 시장이다. 그런데 그런 술의 원료를 살펴보면, 기가 막히다. 국산 원료가 아니다. 외국에서 수입해 주정을 만들어 물을 많이 탄 술이다. 100% 수입산 원료이니, 우리 농민과는 상관이 없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앞으로 희석식소주의 시장이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있고, 바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걸(희석식소주) 대체할 만한 술을 만들어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추사백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가격과 품질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가성비 문제다. 가성비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소주를 대신할 수 있는 가성비 있는 증류주를 만들어보자. 이런 생각을 몇년전부터 해왔다.

그럼 증류방식은? 오랜 숙성을 해야 하는 상압증류는 피했다. 감압증류를 선택한 것이다. 추사 40는 가당을 하지 않고 만드니까, 원료 사용량에 비해 생산되는 술이 너무 적다. 반면에, 추사백은 가당을 좀 해서 알코올 도수를 높였다. 알코올 수율을 높이기 위해 가당을 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알코올을 추출할 수 있는 양을 늘린 것이다. 증류 후에 감미료를 넣지 않는 것은 추사와 마찬가지다.”

예산사과와인 증류설비 라인. 왼쪽이 추사백을 증류하는 감압증류기, 오른쪽은 추사를 만드는 상압증류기다. /박순욱 기자

위스키 색깔의 ‘추사’, 그리고 소주처럼 맑고 투명한 ‘추사백’의 차이는 7~8%의 가당을 발효 전에 했느냐(추사백) 안했느냐(추사)에 있다. 그리고 상압식(추사)이냐, 감압증류식(추사백)인가의 차이도 있다. 물론 가격 차이도 크다. 대중적인 소비를 이끌어내려면 가격이 어느 정도 착해야 한다. 그래야 주점에서도 사람들이 마실 수 있다.”

가격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추사백은 감압증류와 가당을 택했다. 대부분의 프리미엄 증류주는 가당을 하지 않는다. 전통주 업계, 특히 증류주 업계에서는 가당을 하는 것을 감미료를 넣는 것과 거의 같은 것으로 보며, 금기시하고 있다. 추사백은 대중에게 한발 더 다가서기 위해 이런 금기를 깬 것이다. 아무리 좋은 술을 만들면 뭐하나? 비싸서 소비자들이 사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이런 생각에서다.

추사백은 숙성도 짧게 한다. 시간은 돈이다. 추사는 3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하지만, 추사백은 6개월 스테인리스탱크 숙성이 전부다. 정제민 대표는 “감압증류방식으로 술을 내린 추사백은 향이 부드러워 숙성을 길게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추사백 40은 500ml 기준으로 추사 40의 절반인 3만원. 추사백 25도는 350ml 기준 1만2000원. 최근 추사백 25의 경우 200ml 소용량 제품을 주점용으로도 출시했다. 정 대표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주점에서 전통주나 지역특산주를 많이 찾고 있는데, 요즘에는 술을 많이 먹지는 않으니까, 주점용 제품 용량들이 작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추사에 비해 가격이 절반 수준인 추사백은 맛과 향도 추사의 절반밖에 안될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오크통에서 장기 숙성하는 위스키나 브랜디의 향과 맛은 오크통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슨 재료로 술을 만들었느냐보다는 80~90%는 숙성 용기가 향과 맛을 결정한다. 원료 자체가 주는 아로마 향보다는 오랜 오크통 숙성에서 오는 부케 향이 더 결정적이다. 사과 증류주의 경우 원래 사과향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되면서 사과가 갖고 있던 원래의 아로마들은 많이 손실이 된다. 대신에 오크가 갖고 있는 바닐라향, 초콜릿 향 등이 더 강렬하게 날 수밖에 없다.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술들은 오크통의 종류라든지, 어느 지역 오크통인가 하는 문제, 토스팅(검게 그을리는 것) 정도가 중요하다. 오크통을 사용하는 목적은 향과 색 때문이다.

반면에, 추사백 같은 경우는 일반 소주를 대신할 만한 술로 개발한 것이고, 사과로 상큼하고 깔끔하게, 사과향이 좀 은은하게 나는 25도, 40도짜리 사과소주를 내놓으면 어떨까? 해서 개발한 술이 추사백이다. 그래서 추사보다 추사백이 오히려 사과향은 더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추사백 제품은 25도든 40도든 사과향이 상당히 강하게 난다. 반면에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한 추사 40는 사과향을 느끼기가 사실 쉽지 않다. 신중하게 맡아야 겨우 약간 느낄 수 있다. 추사 40도는 미리 말해 주지 않으면 마셔봐도 사과증류주인지 위스키인지 잘 모른다. 반면에 추사백은 사과향이 은은하게 나는 걸,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다. 추사백은 오크통 숙성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과향을 지키기가 쉬운 것이다. 오크통 숙성 자체가 사과향을 지키기보다는 반대로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예산사과와인 정제민 대표가 추사백 발효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추사백이 사과향이 나면서도 맛이 전체적으로 깔끔해서 좋다는 반응이 많다. 가장 단순한 칵테일이 진에다 토닉 워터 섞은 것 아닌가? 요즘 ‘추사토닉’이라고, 추사백에다 토닉워터를 섞어서 마시는 젊은이들이 많다.”

정 대표는 ‘희석식 소주’를 대체하려고 추사백을 내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추사백 가격이 아무리 착하다고 해도, 희석식소주에 비해서는 10배 이상 비싸다. 하지만 정 대표의 표정은 밝아보였다. “희석식소주 독주 시장이 조금씩이나마 균열이 생기고 있고, 추사백에 대한 젊은층 반응이 좋다”는 것이다. ‘화요’, ‘서울의 밤’ 같은 술들이 선도적으로 대중적인 증류주로 자리잡아가고 있어, 앞으로는 쌀소주든 과일증류주든 지역의 농산물로 만든 술들이 소비자들에게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본다고도 했다.

사과 증류주 얘기만 오래한 것 같아 사과발효주로 화제를 돌렸다. 유럽도 그렇지만 사과는 양조용 사과가 따로 있지 않다. 포도의 경우는 다르다. 프랑스를 비롯한 와인 주생산국가에서는 식용 포도가 아닌 양조용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 하지만 한국와인들은 캠벨, 거봉 같은 식용포도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사과는 처지가 다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식용 사과를 착즙해 사과와인을 만들고, 또 이를 증류해 사과증류주를 만든다. 모양과 색이 예쁜 사과는 식용으로 팔고, 상품성이 좀 떨어지는 사과로 술을 만드는 게 현실이다. 유럽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식용으로 팔리지 않는 사과로 사과와인, 사과브랜디를 만든다.

정제민 대표는 캐나다 유학 시절, 포도와인을 만들면서 양조를 처음 배웠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는 국산 포도와인 대신 사과로 발효주, 증류주를 만들고 있다. 한국은 기후조건상 양조용 포도 생산이 여의치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만든 사과와인이 양조용 포도로 만든 외국와인에 비해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정 대표는 그에 대한 정확한 답변 대신, “내가 만드는 예산사과와인은 이미 세계적인 와인”이라고 말했다. 이곳 은성농원에서 직접 생산한 사과로 만든 사과와인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유일한 만큼,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외국인 비율이 높다. 특히, 한국에 거주하는 주한미군 가족 방문이 많다. 코로나 와중이지만, 요즘에도 꾸준히 온다. 그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우리 사과과인이 한국 농산물로 만든 거니까 좋아하는게 아니겠나? 굳이 프랑스의 시드러(사과탄산와인)와 비교해서 맛과 향이 어떻고 그런 차원이 아니라고 본다. 그냥 이곳 사과농장에서 생산한 사과로 만든 와인이니까 좋아하는 것이다. 품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술 아니겠나? 일단 이런 희귀성이 있으니까 찾아와서까지 사가는 것이다.

예산사과와인 와이너리는 외국인 방문객이 내국인을 앞설 정도로 많다. /예산사과와인

요즘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만드는 사과와인은 세상에 하나뿐인 술이다. 우리가 농사짓고, 그 농부가 직접 술 만들고. 스페인과 프랑스의 시드러가 뭘로 만들었든 굳이 그것과 비교해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이걸 넘어설 수 있고, 이길 수 있고, 그런 개념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와인은 그냥 한국와인인 것이다. 예산사과와인은 예산사과와인인 것이다.”

예산사과와인의 경우, 금이 들어간 추사애플와인은 전량 직접 은성농원에서 수확한 사과로만 만들고, 블루베리와인은 예산지역 과일을 사서 사용하다, 올해부터는 블루베리도 직접 길러 술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레드러버(추사 로제)도 예산 지역 사과를 사용한 것이다. 정 대표는 “가장 지역적인 술이 가장 세계적인(세계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술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역을 토대한 한 술이 세계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것은 증류주도 마찬가지다. 증류주를 보면, 우리 나라는 각 지역별로 사과, 복숭아, 배, 포도 등 맛이 좋고 향이 괜찮은 과일들이 많다. 그걸 굳이 오크통에 숙성할 필요없이, 증류해서 소주 형태나, 보드카, 진을 만드는 양조장들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문경 가면 문경사과로 만든 증류주, 예산 오면 예산사과 증류주, 나주에는 나주 배 증류주를 맛보는 식이다. 독일 같은 경우는 ‘쉬납스’라고 지역의 서양 배, 또는 사과, 복숭아 등을 섞은 소주 형태의 증류주가 있다. 오크통에 숙성하지 않고 유통된다. 그 지역에서 자란 농산물로 만든 술은, 그 자체로 의미있고, 사랑받는 것은 세계에서도 이미 흔한 일이라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예산사과와인은 체험을 겸한 농장형 와이너리의 효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또한 외국생활을 해본 정 대표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외국(캐나다)생활하면서 직접 목격한 것은 외국의 와이너리들은 ‘술공장이 아니라 관광지’라는 사실이었다. 레스토랑도 하고, 와이너리 투어도 하고 또, 잼 같은 가공식품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을 방문객들이 하도록 하더라.

그런데, 우리의 경우를 보자.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술의 상업적 생산은 주막 외에는 없었다. 따로 양조장이 없었다. 주막이 술 만들고 음식과 함께 팔고, 숙박업도 하고. 레스토랑, 와이너리, 호텔도 겸했다. 안타깝게도 그 명맥은 다 끊어졌다. 남은 게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예산에 300년 된 주막 형태의 양조장이 지금도 있다고 그러면 얼마나 값어치 있는 관광자원이겠는가?

예산사과와인은 매년 가을에 사과와인 축제를 열고 있다. /예산사과와인

그런데 유학 후 한국에 와서 보니, 대부분의 양조장들은 ‘술공장’이더라. 공산품으로서의 술을 만드는 공장. 농업과의 연관, 문화적 기반 이런 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는 술은 공산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화상품에 가깝다. 그래야 된다. 절대적으로 전통주가 가야 될 길은 지역의 원료를 사용해, 지역의 문화를 만들거나 담아내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이 생긴다. 스토리와 히스트리가 동시에 만들어져야 한다. 외국의 식품산업과 술산업은 다 원료와 지역 중심이다. 뭘로 만들었느냐? 어느 지역 술인가를 가장 중요시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롯데 거냐? 진로 거냐? 이런 제조회사 중심,거기다 또 연예인 누구를 모델로 썼나에 관심을 둔다. 여기엔 술을 생산되는 지역도 없고, 그 술의 원료도 관심 밖이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이런 추세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변화되는 상황은 사람들이 SNS을 통해서 상품에 대한 소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옛날처럼 방송광고를 보고 결정하지 않는다. SNS를 하는 사람은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안다. 젊은 사람들부터 지금 전통주 바람이 불고 있고, 지역특산주 소비를 하고 있는 이유가 사람들이 스토리가 있는 술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롯데 꺼나 진로 꺼보다는. 그 기업 이름을 보고 소비하지 않고 술에 담긴 스토리에 관심을 둔다.”

정 대표의 말처럼 이제 크든 작든 양조장들은 대를 이어서 운영할 생각을 해야 한다. 이미 100년 역사를 가진 양조장들이 지역에 여럿 있다. 경기도 양평의 지평주조(지평막걸리), 논산의 양촌양조, 전남 해남의 해창주조장 등등. 술빚는 역사가 쌓이지 않으면, 스토리도, 히스토리도 생기지 않는다. 지역 원료 쓰는 건 당연하고. 또 원료 선택이나 제조방법 역시 스토리를 위해 계속 축적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전통주 양조장들의 미래가 달려 있다. 다행스럽게도 소비자들이 먼저 그런 술을 찾고 있다. 이른바 ‘개성있는 소비’를 하는 젊은층들이 점점 늘고 있다.

예산사과와인 정제민 대표가 2019년 우리술품평회 대상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예산사과와인

이런 이유로 2010년에 정 대표는 농장형 와이너리를 만들었다. 거의 국내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외국의 와이너리들은 일부 예외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외부에 개방한다. 생산시설들을 다 보여준다. 양조장 주변도 아름답게 꾸민다. 그냥 제품만 시장에 내놓는 게 아니라,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환경도 소비자들한테 오픈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역 와이너리 투어는 그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설립 초기부터 양조장을 6차 산업으로 이해하고, 또 그렇게 운영하고 있는 정제민 대표의 부연 설명이다.

“6차 산업을 굳이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이제는 1차 농업만 하더라도 제품 생산만 생각하면 안된다. 비닐 굴러다니고, 농약병 뒹구는 그런 농장에서 아무리 맛있는 걸, 생산한다 한들 소비자들이 인정해주겠느냐는 것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직접 보고싶어 한다. 현장에서 가서 사진찍어 자랑하고 싶어한다.

이제는 양조장을 찾은 소비자들이 앉아서 술맛이라도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같다. 10년전에 처음 카페를 차렸을 때는 그런 공간이 손꼽을 정도로 드물었는데, 지금은 전국에 많이 확산됐다. 예산사과과인이 체험형 농장형태의 양조장을 선도적으로 만들어, 다른 양조장들의 롤모델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 의도적으로 다른 양조장들에게 자극을 주기도 했다. 제품 홍보, 판매를 위해 체험, 시음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정 대표는 와이너리를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이미 그의 딸과 아들은 와이너리를 운영할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다. 첫째인 딸은 식품산업학을 전공했고, 둘째인 아들은 캐나다에서 양조학과를 다니고 있다. “대를 이어서 역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내 대에서 반짝하고 끝나버리는게 아니라. 외국의 와이너리들은 대부분 패밀리 비즈니스다. 몇백년을 이어오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도 예산사과와인을, 대를 잇는 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