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의 3세 경영 승계 작업이 빨라지고 있다. 1960년생으로 올해 나이 62세인 이재현 CJ 회장은 다른 재계 총수에 비하면 젊은 편이지만 건강상 문제로 경영 승계의 고삐를 죄는 상황이다.

경영 승계의 키는 이재현 회장의 자녀인 이경후 CJENM 부사장과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대주주로 있는 CJ올리브영(이하 올리브영)이다.

두 남매는 지난해말 올리브영 프리IPO(기업공개)로 보유 지분 중 일부를 매각해 거액의 현금을 확보했다. 이선호 부장은 올리브영 주식 60만주를 매각해 1018억원, 이경후 부사장은 23만주를 매각해 391억원의 현금을 챙겼다.

그래픽=정다운

두 남매는 올리브영 주식을 매각해 얻은 현금으로 CJ지주 신형 우선주(CJ4우)를 대량 매입했다. 지난 1분기 동안 이선호 부장은 CJ4우 7만8588주를, 이경후 부사장은 CJ4우 5만2209주를 매입했다.

신형우선주는 당장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되는 주식 형태다. 의결권이 없어 보통주보다 주식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지만, 기업 오너 입장에선 보통주 매입이나 증여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재계에선 올리브영의 본 IPO까지 성사되면 CJ 3세 남매가 작년말보다 더 큰 규모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이선호 부장의 올리브영 잔여 주식은 120만주, 이경후 부사장의 잔여 주식은 46만주다. 작년 말에 매각한 주식의 2배 이상을 갖고 있는 셈이다.

본 IPO가 성사된다면 두 남매는 올리브영 지분을 매각해 CJ 지주사 지분을 추가 확보하거나, 이 회장이 갖고 있는 CJ 지분을 물려받았을 때 증여세 재원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올리브영 잔여 지분을 CJ와 주식 스왑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다.

◇ 이재현 회장, 지주사 지배력 확고…안정적인 지배구조 구축

CJ그룹의 사업은 크게 △식품·바이오 △물류·유통 △엔터테인먼트 등 3개 영역으로 분류된다. 주력사업은 식품으로 주요 계열사로는 CJ제일제당(097950)과 급식 및 식자재유통기업인 CJ프레시웨이(051500), CJ푸드빌, CJ씨푸드(011150) 등이 있다.

물류는 CJ대한통운(000120)과 CJENM 오쇼핑부문, CJ올리브네트웍스 등이, 엔터테인먼트는 CJENM E&M 부문을 중심으로 CJ CGV와 스튜디오드래곤(253450) 등이 키플레이어 역할을 한다.

CJ그룹은 오너 일가가 지주사인 (주)CJ를 통해 각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주)CJ는 이재현 회장이 42.1%의 지분(보통주 기준)을 갖고 있고, 이선호 부장이 2.8%, 이경후 부사장이 1.2%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자기주식 7.3%까지 포함하면 동일인 측이 보유한 지분은 54.3%에 이른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은 (주)CJ가 44.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CJ제일제당은 CJ대한통운의 지분을 40.2% 갖고 있다. (주)CJ는 이 외에도 CJ푸드빌 96%, CJ올리브네트웍스 100%, CJ올리브영 51.2%, CJENM 40.1%, CJ CGV 38.4%, CJ프레시웨이 47.1%의 지분을 보유하며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다.

이 외 국내외 법인은 각 사업 부문의 핵심 회사가 보유하고 있다. CJ그룹은 2018년 CJ제일제당의 100% 종속회사인 영우냉동식품과 (주)CJ의 100% 종속회사인 케이엑스홀딩스를 삼각합병하는 방식으로 지배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그 결과, CJ제일제당과 케이엑스홀딩스가 CJ대한통운을 공동지배하던 방식에서 ‘CJ→CJ제일제당→CJ대한통운'으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했다. 같은 해엔 또 CJ대한통운이 CJ건설을 흡수합병했다.

그래픽=손민균

◇'선택과 집중’ 돋보이는 사업 개편…미래 먹거리 위해 네이버와 맞손

회사 경쟁력과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M&A도 적극 진행했다.

2018년 CJ제일제당은 CJ헬스케어 보유지분 전량을 한국콜마에 1조3000억여원에 매각했다. 이렇게 확보한 재원은 이듬해 2월 CJ제일제당이 미국의 냉동식품 전문 업체인 슈완스컴퍼니를 인수하는데 들어갔다.

CJ제일제당은 슈완스 인수로 냉동식품 기술 노하우와 함께 미국 유통 채널과의 거래선을 확보했다. 슈완스 인수 전 CJ제일제당의 식품 매출 해외 비중은 14% 수준에 불과했으나, 작년엔 46%대로 신장했다. 특히 슈완스를 포함한 CJ제일제당의 미국 식품 매출은 2018년 3649억원에서 지난해 3조3286억원으로 10배 성장했다.

2019년 12월엔 통신사업자인 CJ헬로를 LG유플러스(032640)에 8000억원에 매각했다. 작년 2월엔 CJ제일제당이 서울 강서구에 있는 3만평 규모의 ‘바이오연구소’ 유휴부지를 인창개발-현대건설 컨소시엄에 1조500억원에 매각하기도 했다.

작년 7월엔 CJ푸드빌이 적자폭 만회를 위해 투썸플레이스 잔여 지분을 매각했다. CJ푸드빌은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뚜레쥬르’도 매각을 추진했으나, 국내 베이커리 시장 회복세를 보고 매각 계획을 철회했다.

CJ그룹은 물류와 콘텐츠 사업을 미래 핵심 먹거리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작년 10월 네이버와 6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맞교환하며 손을 잡았다. CJ의 콘텐츠 계열사인 CJENM과 스튜디오드래곤은 각각 네이버와 15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맞바꿨고, 물류 계열사인 CJ대한통운은 3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교환했다.

양사는 향후 각자 보유한 지식재산(IP)을 결합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이다. 네이버 웹툰 콘텐츠의 드라마화를 CJENM이 맡고, 이를 CJ의 온라인 동영상사업자(OTT)인 티빙과 네이버의 글로벌 서비스인 ‘브이라이브' 등을 통해 유통하는 방안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물류 부문에서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입점 업체의 물류를 CJ대한통운이 맡는 형태의 협력이 예상된다. 네이버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 18.6%(2020년 기준)를 점유하고 있는 1위 업체다. CJ대한통운으로선 네이버를 통해 안정적인 배송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뿐더러, 기술 협력을 통해 향후 물류 배송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된다.

이재현 회장이 ‘그레이트 CJ’ 비전 달성을 위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CJ그룹 제공

◇ CJ 소비자와 밀접…오너가에 대한 부정적 시각 벗는 게 숙제

전문가들은 CJ그룹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오너 일가에 대한 대중의 시각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재현 회장은 2013년 7월 비자금 조성, 조세포탈,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당시 이 회장은 구속 집행정지 신청을 내고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2015년 12월 서울고등법원은 이 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벌금 252억원을 선고했다. 이 회장 측은 선고 3일 후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가 2016년 7월 상고를 자진 취하했다. 이 회장은 상고 취하로 형이 확정됐으나, 2016년 8월 8·15 특별 사면을 받아 감옥에서 나왔다.

그는 2017년 5월 17일 경기 수원 CJ블로썸파크에서 열린 ‘온리원 컨퍼런스'에 참석하며 경영 일선 복귀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지병으로 인해 경영활동을 공격적으로 하고 있진 못하다. 2019년 대마 밀반입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뒤, 자숙하던 이선호 부장의 복귀를 서두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이선호 부장의 업무 복귀에 대해 국민들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CJ의 핵심 사업이 B2C(기업 대 소비자) 인 것을 감안하면, 향후 오너리스크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고 재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CJ는 식품부터 엔터테인먼트까지 소비자와 매우 가까운 상품을 공급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라면서 “오너 일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기업과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특히 집행유예 만료 전에 업무에 복귀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반성을 덜했다는 식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기업 승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욱 커지지 않도록 오너 일가가 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CJ는 ESG 경영 요소 중 환경과 사회적 역할은 잘 하지만 지배구조에서는 약점이 있는 상황”이라며 “오너일가와 경영진이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 경영을 위한 단계적 로드맵 등 회사의 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