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에서 남양유업 이전에 '오너 리스크'가 터진 유통기업들의 선례가 재조명받고 있다. 지배구조의 문제가 기업의 존폐까지 좌우한 남양유업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다.

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남양유업처럼 오너 리스크로 홍역을 앓은 기업들은 대부분 식품·외식업종에 몰려 있다. 작은 식당이나 소규모 식품제조업체로 시작해 프랜차이즈 등을 통해 중소·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 쉽고, 창업주가 절대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부문은 최근 화두인 ESG경영(환경·지역사회 기여·지배구조 등 비재무적인 요소도 중시하는 경영)에서 국내 기업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꼽히기도 한다.

오너 리스크를 겪은 유통기업들. /그래픽=이민경

고(故) 홍두영 창업주가 1964년 설립한 남양유업(003920)은 지난달 2세인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 대에서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매각됐다. 지난 2013년 대리점 강매 사건과 창업주 외손녀 마약 사건, 올해 4월 '불가리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윤리 경영과 지배구조 문제에서 소비자의 눈 밖에 난 결과다.

남양유업과 유사한 사례로는 건강식품 제조사인 천호식품이 꼽힌다. 창업주 일가의 언행에 이어 제품의 과장광고가 문제가 돼 불매 운동이 일고, 이후 회사가 사모펀드에 넘어간 점까지 닮았다. 올 1분기 말 기준 최대주주는 각각 42.7%, 15.4% 지분을 보유한 사모펀드 카무르파트너스의 에이콘제1호와 밸리치더블케이다.

1984년 천호식품을 설립한 김영식 전 회장은 지난 201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016년 김 전 회장이 정치적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데 이어 주력 제품인 홍삼 액기스의 가짜 원료 문제가 터진 여파다. 당시 천호식품도 경영권 승계 과정을 밟고 있었다. 장남인 김지안 당시 천호식품 대표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2015년 사모펀드인 카무르파트너스의 투자를 유치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천호식품은 악화된 소비자 여론에 김 회장을 포함한 온 가족이 201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이후 보유 지분을 모두 매각하게 됐다. 경영권을 온전히 쥐게 된 카무르파트너스 등은 지난 2018년 회사명을 천호엔케어로 변경하고 기업 쇄신 작업을 진행 중이다.

경영권이 매각된 이후 천호엔케어의 실적은 오히려 개선됐다. 지난 2020년 매출이 2019년보다 증가한 것은 물론,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배 이상으로 늘었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업계 1위였던 교촌치킨도 오너 리스크를 겪은 대표적인 기업이다. 교촌치킨은 권원강 전 교촌에프앤비(339770) 회장이 지난 1991년 창업한 치킨 가게가 모태인 회사다. 권 전 회장의 6촌인 권순철 상무의 사내 폭행 사건이 2018년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오너 리스크가 불거졌다. 폭행 문제로 퇴사했던 권 전 상무를 불과 이듬해 회사로 복직시킨 사실이 화를 키웠다.

결국 창업주인 권 전 회장이 2019년 퇴임한 이후에야 그의 숙원 사업이던 증권시장 상장을 이룰 수 있었고, 교촌치킨의 실적도 다시 상승세를 탔다. 주춤하던 가맹점 수도 다시 늘기 시작했다.

현재 교촌에프앤비는 롯데그룹 출신인 소진세 회장과 SK그룹에서 경력을 쌓은 조은기 총괄사장 체제로 운영된다. 다만 권 전 회장의 지분율이 73.1%로, 여전히 주주총회에서 절대적인 입김을 행사할 수 있다.

오너 리스크를 겪은 유통기업의 창업자들. /그래픽=이민경

오너 리스크로 위기를 맞은 이후 쇄신에 실패해 내리 하향세인 기업들도 있다. 미스터피자 브랜드를 보유한 MP그룹이다. 1990년 설립된 미스터피자는 피자업계 '빅3'에서 밀려난 것은 물론, 상장폐지 직전까지 몰린 끝에 매각됐다.

창업주인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의 2016년 경비원 폭행 사건과 2017년 가맹점 대상 갑질이 논란이 되면서 불매 운동을 맞았다. 정 전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된 2017년부터 MP그룹은 영업손실과 순손실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거래소가 2018년 MP그룹의 상장폐지를 결정하자 정 전 회장 등 오너 일가는 뒤늦게 경영권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말 전국 311곳이던 미스터피자 매장 수는 가장 최근 집계인 2019년 말 기준 260곳으로 줄었다. 결국 미스터피자는 인수합병(M&A)시장에 매물로 등장했고, 지난해 치킨 프랜차이즈인 페리카나 컨소시엄에 인수됐다.

창업주의 범법 행위로 불매 운동을 맞은 호식이두마리치킨도 대표적인 오너 리스크 기업에 해당한다. 지난 2017년 최호식 전 회장이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건이 드러나면서 소비자가 등을 돌렸다. 최 전 회장은 항소와 상고를 불사했지만, 지난해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해 종지부를 찍었다.

호식이두마리치킨 역시 가맹점이 줄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말 전국 884곳이던 가맹점 수는 2019년 말 기준 797곳으로, 10% 가까이 감소했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은 "오너 리스크는 식품 외 업종 기업에도 있을 수 있지만, 기업 대 기업으로 거래하는 B2B 기업보다 일반 소비자를 상대하는 B2C 기업에서 발생했을 때 타격이 더 클 수 있다"면서 "유통기업들은 소비자의 주목도가 높아 오너 리스크가 더 쉽게 드러나고 불매운동의 타깃이 되기도 쉽기 때문에 지배구조 문제에 더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