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의 창업자인 고(故) 신춘호 회장의 별세 이후 신동원 농심 부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신 회장은 56년간 농심을 이끌며 국내 1위, 세계 5위 라면 업체로 키웠다. 신 부회장은 부친이 일군 사업을 물려받아 성공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올 1분기 부진한 경영 성적표를 받아 든 신 부회장이 라면값 인상 카드를 꺼낼 지 주목되는 이유다. 신라면이 가격을 인상한 것은 2016년이 마지막이다.

신동원 농심 부회장.

2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농심의 올 1분기(1~3월) 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6344억원, 2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7%, 56% 줄었다. 당기순이익은 291억원으로 41% 감소했다. 농심 관계자는 "전년 대비 기저 효과가 있었고 고정비 및 제반 비용 증가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했다.

농심은 면(15.4%), 스낵(6.6%), 생수 및 음료(2.3%) 등의 국내 매출이 골고루 하락했다. 농심은 지난해 3월부터 콜라겐을 생산한 데 이어 올해 초 비건(채식) 사업을 본격화 했지만 당장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농심의 올해 1분기 콜라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0% 성장했지만, 이는 농심 전체 매출 비중의 1%도 되지 않는다. 농심 측은 "비건 제품은 올해 첫 사업이라 아직 매출이 많진 않지만 여러 유통 채널에 입점하는 중"이라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라면의 주재료인 소맥·팜유 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미국 시카고 선물 거래소에서 소맥 선물 평균 가격은 2019년 메트릭톤(MT・1000kg을 1톤으로 하는 중량 단위)당 181달러(약 20만원)였으나 지난해 202달러(약 23만원), 올해 1분기 238달러(약 27만원)로 증가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팜유 현물 평균 가격은 2019년 메트릭톤당 570달러(약 64만원)에서 지난해 627달러(약 70만원), 올해 1분기 980달러(약 110만원)로 올랐다.

신라면.

농심 측은 "소맥은 기상 변화, 코로나로 인한 유동성 확대와 투기 세력 증가, 각국의 식량 안보 정책에 따른 비축 증가로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팜유 가격도 곡물 작황과 코로나로 인한 세계 경기 추이에 따라 급등락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부회장은 올 초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원재료와 기름 값이 많이 올라 원가 압박이 있지만 (라면) 가격 인상 계획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전체 매출의 79%를 차지하는 라면의 이익 감소는 신 부회장에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올해는 그동안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신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민 음식' 이미지가 강한 라면값을 인상할 경우 소비자들에게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부담감도 큰 상황이다. 부친의 별세 이후 2세 경영을 본격화 한 신 부회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농심이 이번에 라면 값을 올린다면 2016년 이후 4년 6개월여 만이다.

2008년 이후 라면 가격을 동결한 오뚜기(007310)는 올 초 라면 가격 인상 방침을 밝혔다가 곧바로 철회했다. 삼양식품(003230)도 2017년부터 라면 값을 유지하고 있다. 오뚜기와 삼양식품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각각 12%, 46% 감소했다. 이들 업체는 "가격 인상과 관련 현재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AC닐슨에 따르면 농심의 올해 1분기 라면 시장 점유율은 56%다. 라면 업계는 1위인 농심이 라면값을 인상하길 내심 바라는 눈치다. 통상 1위 업체가 제품 값을 올리면 2,3위 업체들이 이를 따라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라면 업계 관계자는 "원가는 치솟는데 라면 가격은 수 년째 그대로"라며 "기업도 이익을 내고 고용 창출 등 경영 활동을 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은 눈치를 보지만 언젠가는 올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