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상반기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명품거리에 지상 6층, 총면적 3200㎡(969평)짜리 건물 한 채가 통째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 매장으로 바뀐다. 국내 백화점에 28개 매장을 두고도 백화점 밖 단독 매장은 한 번도 내지 않았던 브랜드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선 티파니가 지상 7층(3656㎡·1107평), 롤렉스가 911㎡(276평) 규모의 단독 매장을 준비 중이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서울에 앞다퉈 초대형 매장을 짓고 있다. 백화점 안에서도 매장을 복층으로 넓히는 경쟁이 붙었다. 탄탄한 국내 수요에 역대 최대 수준의 외국인 관광객, K컬처 영향력이 맞물리면서 서울이 도쿄를 대체하는 아시아 '럭셔리 쇼케이스'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보테가베네타는 지난 6월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를 총괄할 디렉터 채용에 나서는 등 단독 매장 개장 준비를 본격화했다. 일본 도쿄 플래그십 등을 고려하면 단순 판매 매장을 넘어 브랜드의 전 제품군과 장인정신을 집약한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매장 외관이나 인테리어는 서울의 지역적 특색을 녹일 것으로 보인다.
◇ 가로변도 백화점도 '더 크게'
명품 매장의 대형화는 청담동 명품거리 상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주요 백화점 안에서도 매장을 넓히거나 복층·복합 공간을 조성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매출 기여도와 집객력이 높은 명품 브랜드를 끌어들이려는 백화점의 유치 전략과도 맞물린 결과다.
루이비통은 지난해 12월 신세계백화점 본점 '더 리저브'에서 패션, 워치·주얼리, 뷰티, 레스토랑, 카페 등을 한데 모은 세계 최대 규모 매장을 선보였다. 지난 5월 한국을 찾은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은 방한 첫 일정으로 해당 매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달 초에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이 신세계 본점 매장을 리뉴얼해 문을 열었다. 기존 매장을 복층으로 확장 이전해 국내 백화점 디올 매장 가운데 최대 규모로 조성했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은 피아제, 몽블랑, 롤렉스 매장을 순차적으로 확대 리뉴얼한다. 에르메스와 고야드도 지난해 갤러리아 명품관 매장을 기존보다 넓혀 이전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서, 아시아 시장의 쇼케이스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주요 명품 브랜드들은 도쿄 긴자, 오모테산도 등 일본을 중심으로 대형 플래그십을 짓고 카페·레스토랑, 전시 공간 등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선보였다.
◇ 몰리는 외국인 관광객에 K팝 팬덤까지
최근 방한 외국인이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어난 가운데 원화 약세까지 이어지면서 한국은 글로벌 명품 소비의 주요 거점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환율 효과로 국내 제품 가격 메리트가 커지면서 외국인들의 명품 소비는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의 외국인 매출은 약 1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롯데백화점의 외국인 해외 명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0% 증가했다.
원화 약세는 국내 투자를 늘리는 명품 브랜드에도 유리한 조건이다. 해외 본사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투자 비용이 낮아져 대형 매장이나 플래그십 확대에 나설 유인이 커졌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같은 예산으로도 투자 규모를 키울 수 있는 만큼, 지금이 한국에 투자하기 좋은 시기라는 판단이 있다"고 말했다.
K컬처의 영향력이 커진 점도 명품 브랜드가 서울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K팝 아이돌이 글로벌 명품 브랜드 앰버서더로 활약하면서 해외 팬들의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을 찾은 팬들의 관심이 실제 매장 방문과 제품 구매로 이어지면서 서울 매장의 마케팅 가치가 부각되는 추세다.
여기에 국내의 꾸준한 명품 수요도 브랜드들의 투자 확대를 뒷받침한다. 올해 상반기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의 명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5%, 35.6%, 35.2% 증가했다. 전체 백화점 매출에서 명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3사 모두 40%를 웃돈다.
글로벌 명품 본사들도 한국 시장의 성장세를 주목하고 있다. 몽클레르는 올해 상반기 실적 발표에서 그룹 전체 사업 매출의 약 10%가 한국에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보테가베네타, 에르메스 등도 한국 판매 호조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명품 시장 규모는 2016년 13조3283억원에서 지난해 21조1071억원으로 10년 새 약 8조원 확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