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화장품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한 국내 뷰티 기업들이 향수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점찍고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외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데다, 향을 핸드크림·바디·헤어·공간 제품 등으로 확장할 수 있어 사업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존 해외 소비자와 유통망을 활용해 시장 진입 비용을 줄이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기 쉽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달바글로벌(483650)은 오는 31일 프리미엄 향수 브랜드 '쿠오카(kuoka)'를 운영하는 쿠오카스킨에 96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상환전환우선주(RCPS) 354만7176주를 현금으로 취득해 지분 33.61%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쿠오카는 2019년 설립된 향수·보디케어 브랜드로, 파인다이닝과 식재료에서 영감을 얻은 조향을 특징으로 한다. 일본·홍콩·대만의 프리미엄 편집숍에 입점했으며, 북미 니치 향수 유통업체 럭키센트(Luckyscent) 입점도 앞두고 있다. 매출은 2023년 10억원에서 지난해 65억원으로 2년 만에 6.5배 늘었고, 올해는 100억원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달바글로벌은 RCPS 발행일로부터 3년 뒤 기존 주주와 창업자 등이 보유한 잔여 지분을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도 확보했다. 자사가 보유한 해외 유통·마케팅 역량을 활용해 향수 시장에 빠르게 진입하고 새로운 성장 축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향수 시장을 겨냥한 국내 뷰티 기업들의 움직임은 최근 더욱 빨라지고 있다. 에이피알(278470)은 지난해부터 약 1년간 향수·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포맨트(FORMENT)'를 재정비했다. 지난 5월에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배우 박지훈을 브랜드 모델로 발탁하며 마케팅을 강화했다.
헤어케어 제품에서 인기를 얻은 향을 향수로 확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브랜드 '쿤달(KUNDAL)'을 운영하는 더스킨팩토리는 지난해 말 고체 향수를 출시하고 진에어와 이스타항공 등 저비용항공사 기내 면세점으로 판매망을 넓혔다. 헤어케어 브랜드 '어노브(UNOVE)'도 지난해 향수 라인업을 출시해 일본과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향수에 주목하는 것은 국내외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H&I글로벌리서치는 국내 향수 시장이 최근 3~4년간 매년 5% 이상 성장해 지난해 7475억원 규모에 이른 것으로 추산했다. 오는 2035년에는 1조3771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 증가세도 가파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향수 수출액은 2021년 1109만6000달러(약 160억원)에서 지난해 5682만5000달러(약 820억원)로 4년 만에 약 5배로 늘었다. 스킨케어와 색조 화장품으로 형성된 K뷰티에 대한 관심이 향수와 헤어·바디 제품 등 인접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향을 핵심 사업으로 삼은 국내 전문 브랜드 가운데서는 이미 수백억원대 연매출을 내는 업체도 등장했다. 젠틀몬스터 운영사 아이아이컴바인드가 전개하는 '탬버린즈(TAMBURINS)'의 지난해 매출은 1525억원으로 집계됐다. 탬버린즈는 국내 19개, 일본·중국·태국 등 해외 1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핸드크림과 핸드워시, 향수 등을 판매하는 논픽션(NONFICTION)의 지난해 매출은 535억원, 멀티퍼퓸과 디퓨저로 알려진 그랑핸드(GRANHAND)의 매출은 315억원으로 각각 전년보다 11.7%, 15% 늘었다. 향수를 중심으로 핸드·보디·홈프래그런스까지 제품군을 넓힌 전략이 외형 성장으로 이어졌다.
해외 유통업계도 향수를 K뷰티의 차기 성장 분야로 주목하고 있다. 영국 드러그스토어 브랜드 부츠(Boots)는 올해 초 발표한 뷰티 트렌드 보고서에서 "지난해 영국 부츠에서 K뷰티 제품이 11초에 1개씩 판매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며 "올해 K뷰티는 향수와 헤어케어 등 새로운 분야로 확장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향수는 하나의 인기 향을 핸드크림과 보디·헤어·공간 제품으로 확장할 수 있어 제품 확장성이 크고, 기존 해외 유통망을 활용하면 시장 진입 비용도 줄일 수 있다"며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