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 브랜드들이 최근 로고와 슬로건, 대표 제품군, 패키징을 아우르는 대규모 리브랜딩에 잇달아 나서고 있다. 신제품 출시나 개별 라인 보강을 넘어 브랜드 정체성 전반을 재정비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케이(K)뷰티 브랜드들의 해외 시장 공략이 본격화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외국 소비자에게 고유의 이미지와 브랜드 서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8일 뷰티 업계에 따르면 2012년 론칭한 브랜드 마녀공장은 이달 초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했다. 브랜드 표기는 직관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ma:nyo'에서 콜론을 뺀 'manyo'로 바꿨고, 슬로건도 'As you wish, skin wizard(원하는 대로, 피부를 위한 마법사)'에서 'Everyday magic for your skin(당신의 피부를 위한 매일의 마법)'으로 변경했다.
이와 함께 마녀공장은 기존 성분과 처방의 안전성을 강조한 '클린 뷰티(clean beauty)' 이미지를 넘어, 피부 균형 회복과 능동적인 컨디션 개선을 중시하는 '액티브 뷰티(active beauty)'로 브랜드 지향점을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2000년 론칭한 아모레퍼시픽(090430)의 미쟝센도 출시 25주년을 맞아 지난해 말 첫 리브랜딩을 단행했다. 로고 디자인을 바꾸고 새 슬로건 'SHINE YOUR SCENE(당신만의 장면을 빛내라)'을 도입하며 '글로벌 헤어패션 브랜드'로 정체성을 정립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1세대 뷰티 브랜드 비디비치도 지난해 출시 20주년을 맞아 브랜드 전반을 손질했다. 브랜드 이름을 제외하고 로고와 콘셉트, 주력 제품, 패키지, 유통 전략 등을 전면 개편했다. 비디비치는 피부 본질에 집중하는 '스킨 코어 뷰티(Skin Core Beauty)' 브랜드로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의류에 주로 사용되는 직물 소재 직조라벨을 포장 용기에 적용했다.
대표 제품 리뉴얼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는 지난해 대표 스테디셀러인 에센셜 라인을 리뉴얼 출시했다. 자음수 EX, 자음유액 EX, 탄력크림 EX 등 핵심 제품의 성분과 효능을 강화해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설화수가 강조해 온 웰에이징(well-aging·건강하고 우아하게 나이 드는 것) 이미지를 재차 부각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헤라도 올해 초 베스트셀러 제품인 '센슈얼 누드 밤'을 리뉴얼 출시했고, 지난해에는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도 새롭게 선보였다. 색조와 베이스 부문에서 브랜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신규 소비자 유입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처럼 화장품 업계에서 브랜드 리뉴얼이 활발해지는 배경으로는 해외 시장 확대와 경쟁 심화가 꼽힌다. K뷰티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 높아지고 여러 브랜드가 빠르게 부상하면서, 단순히 '한국 화장품'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진 탓이다.
특히 오랜 업력을 지닌 기존 브랜드들 사이에서는 젊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소비자와 빠르게 소통하는 인디 브랜드의 강점을 반영하려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브랜드 고유의 자산은 유지하되, 로고와 슬로건, 패키지, 대표 제품군 전반을 보다 직관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재정비해 시장 변화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리브랜딩 이후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도 함께 강화되는 추세다. 마녀공장은 브랜드 서포터즈 '마녀뮤즈(manyo Muse)' 1기를 운영하며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을 확대했고, 비디비치는 르세라핌 카즈하를 글로벌 앰버서더로 발탁해 리뉴얼된 브랜드 이미지 확산에 나섰다. 미쟝센 역시 에스파와 인플루언서들이 참여하는 틱톡 챌린지를 통해 해외 소비자 접점을 넓혔다.
이처럼 업계 전반에 리브랜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방향 설정에 따라서는 기존 브랜드 자산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니스프리는 2023년 기존 '제주 자연주의' 이미지를 확장해 가상의 섬 'THE NEW ISLE(새로운 섬)'을 내세우는 대대적인 리브랜딩에 나섰다.
이는 젊은 고객층 확대와 글로벌 시장 공략을 겨냥한 시도였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자연주의와 제주 원료를 앞세워 구축해 온 기존 브랜드 정체성이 오히려 희석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실제 이니스프리 매출은 2022년 2997억원에서 2023년 2738억원, 2024년 2246억원, 2025년 2098억원으로 감소세를 이어갔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가 자리 잡으려면 단순한 제품력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는지도 중요하다"며 "기존 소비자들이 기억하는 핵심 자산까지 지워버리면 오히려 차별성이 약해질 수 있는 만큼 신중한 리브랜딩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