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의 패션이 부각되면서 로고 없는 명품을 뜻하는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브랜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도 과거처럼 로고를 과시하거나 유행을 쫓는 디자인 대신 소재, 장인 정신, 절제된 디자인으로 가치를 드러내는 브랜드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지난 13일 유럽 출장 일정을 마치고 서울 강서구 김포비즈니스공항(SGBAC)을 통해 귀국했다. 이날 이 회장의 공항 패션이 온라인에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정장 위에 흰색 패딩 조끼(베스트)를 걸치고 있었는데,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 제품으로 확인됐다. 가격은 약 560만원대다.

해외 일정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스1

이 회장이 입은 조끼는 이전에도 한 차례 화제가 됐다. 지난해 9월 한 유튜버가 공개한 일본 교토 여행 영상에서 이 회장이 같은 제품을 착용한 모습이 포착됐다. 당시 이 회장은 교토의 한 라멘집을 찾아 혼자 식사하는 모습으로 네티즌들 주목을 받았는데 해당 조끼도 덩달아 입소문을 탔다. 현재는 품절 상태로 알려졌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 조용한 럭셔리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꼽힌다. 화려한 로고 노출 대신 클래식한 디자인과 고급 소재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최상급 캐시미어 제품을 중심으로 높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기본 아이템 중심의 절제된 디자인으로 해외에선 '억만장자의 유니클로'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2016년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40만원 상당의 브루넬로 쿠치넬리 회색 면 티셔츠가 여러 장 걸려 있는 자신의 옷장을 공개했다. 저커버그뿐 아니라 고(故)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등도 즐겨 입는 브랜드다.

지난해 10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킨 회동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앞서 지난해 정의선 회장도 같은 브랜드 제품을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이 회장과 치킨 회동에서 브루넬로 쿠치넬리 구스다운 조끼를 입고 등장했다. 가격대는 약 500만원대로 로고 노출 없이 차분한 색상과 디자인이 특징이다.

몇 년 새 글로벌 명품 시장에선 브루넬로 쿠치넬리를 비롯한 조용한 럭셔리 브랜드가 부상하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고 과시적 소비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면서, 브랜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취향과 품질을 중시하는 소비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올드머니 룩(old money look) 유행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올드머니는 집안 대대로 재산을 물려받은 부유층을 가리키는 용어다. 오랜 세월 부유한 삶을 누려온 상류층 옷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로, 고급 소재를 기반으로 무채색 계열에 화려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외에도 로로 피아나, 더 로우, 제임스 펄스 등이 조용한 럭셔리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로로피아나는 프랑스 명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에 소속된 이탈리아 브랜드로 비쿠냐, 캐시미어 등 고급 원단의 대명사로 통한다. 더 로우와 제임스 펄스는 미국 럭셔리 캐주얼 브랜드로 고급 소재와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이부진(왼쪽) 호텔신라 사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입학식이 끝난 뒤 홍라희(오른쪽)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이 이 사장의 아들 임모 군을 안아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재계 총수 가운데서는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사장도 오래전부터 조용한 럭셔리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이 사장이 공식 행사나 외부 일정에서 착용한 제품은 공개될 때마다 화제가 된다. 옷이나 가방 모두 명품 브랜드지만 로고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색상, 실루엣, 디자인도 화려하지 않다.

이 사장은 최근 아들 임군의 서울대학교 입학식과 고등학교 졸업식에서도 차분한 스타일의 패션으로 눈길을 끌었다. 각각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 랑방의 재킷과 코트를 착용했는데 회색, 검은색의 세련된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가방은 에르메스 대표 모델인 버킨백, 프랑스 브랜드 폴렌느의 누메로 앙 토트백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