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패션 제조 및 수출 전문 기업 영원그룹이 계열사 자료 누락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지배구조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노스페이스 등 브랜드의 인기로 성장세를 이어가던 시기인 만큼, 성래은 부회장 중심의 2세 경영 체제 안정성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성기학 영원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성 회장은 2021~2023년 공시 대상 기업 집단(대기업 집단) 지정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면서 소속 회사 총 82개사(중복 제외)를 누락해 대기업 규제를 적용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누락 기간과 규모 모두 공정위가 자료 허위 제출을 적발한 사건 중 역대 최대 수준이다. 영원그룹의 자산은 대기업 집단 지정 기준인 5조원을 넘었지만, 누락 제출로 지정을 피했다.
영원그룹은 대기업 지정에 따른 공시 등 규제를 피하면서 경영 승계 과정이 외부에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성 회장은 2023년 둘째 딸인 성래은 부회장에게 YMSA의 지분을 50% 이상 증여했는데, YMSA는 지주사인 영원무역홀딩스(009970)의 지분 29.09%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사실상 그룹을 지배하는 회사로, 해당 지분 이전이 승계 작업의 핵심이었다.
그동안 영원그룹은 노스페이스를 비롯해 룰루레몬, 파타고니아 등 글로벌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를 주요 고객사로 확보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지속했다. OEM(주문자상표부착)·ODM(제조업자개발생산) 수주 확대, 해외 생산 기지 효율화가 맞물리며 실적과 기업 규모가 모두 커졌고, 성래은 부회장 중심의 2세 경영 체제는 자연스럽게 안착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번 검찰 고발로 성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2세 경영 체제의 독립성과 지배구조 안정성에 대한 재평가가 불가피해졌다. 성래은 부회장 중심으로 승계는 마무리가 됐지만, 여전히 창업주인 성 회장이 주요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안이 성래은 부회장 체제의 실질적인 홀로서기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회사 실적은 반등하는 추세다. 한동안 고가 자전거 브랜드 스캇의 부진이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주력 OEM 사업 호조가 개선세로 이어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영원무역(111770)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 전망치는 각각 4조68억원, 4805억원으로 전년 대비 13.9%, 52.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업계 안팎에선 사법 리스크가 당장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대외 신뢰도가 타격을 받으면 중장기 경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글로벌 브랜드는 협력사 선정 과정에서 지배구조 투명성, 준법 경영 여부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어, 향후 거래 관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영원그룹은 이번 사안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성래은 부회장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패션업계 정책 토론회 참석 후 취재진과 만나 "성실히 조사에 임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영원무역홀딩스 관계자는 "실무 착오였고 고의적 은폐나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재발 방지를 위한 내부 프로세스 개선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