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소비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국내 중·고가 브랜드가 직격탄을 맞았다. 초저가 아니면 명품으로 소비가 쏠리면서 그동안 패션 대기업 성장을 떠받쳐온 중·고가 브랜드 수요는 급감하고 있다. 해외 진출과 온라인 강화 등 생존 전략이 잇따르는 가운데, 해외 명품 유통, 스포츠·뷰티 등 사업 다각화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3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한섬(020000)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전년 대비 18.4% 감소한 518억원으로 집계됐다. 한섬의 연간 영업이익은 2023년부터 3년 연속 감소세다. 2022년(1683억원)과 비교하면 지난해 영업이익은 약 70% 급감한 수준이다.
패션 소비 위축과 함께 중·고가 브랜드 수요 회복이 지연된 결과다. 한섬을 비롯한 패션 대기업은 중·고가 브랜드 중심 사업 구조 전반을 재점검하고 전략 수정에 나선 모습이다. 재고 부담이 커지면서 올해 국내 생산 물량을 줄인 업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섬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시스템, 타임 등 대표 중·고가 브랜드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기존 브랜드를 고급화해 패션 본고장으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 등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해 시스템의 고급 라인 '시스템 파리'를 론칭하고 현지 매장을 열었고, 타임은 '타임 파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유통 채널 확장을 위해 온라인 전략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구호, 준지, 빈폴 등 브랜드의 해외 공략과 더불어 자사 온라인 플랫폼 SSF샵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편집숍 비이커(Beaker), 10 꼬르소 꼬모 서울 등도 온라인 매출 비중 확대에 힘을 싣고 있다.
중·고가 브랜드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해외 명품 브랜드를 발굴·유통하는 전략도 병행 중이다. 국내 패션 소비가 초고가 명품과 가성비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된 영향이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메종키츠네, 아미, 르메르 등 신명품 브랜드 흥행에 이어 산드로, 마쥬 등의 국내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패션 외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도 주요 대응 전략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 부문은 스포츠·아웃도어 중심으로 해외 공략을 강화하고 있고, F&F(383220)는 디스커버리의 해외 진출과 함께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인수 가능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은 패션 의존도를 낮추고 뷰티 사업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키우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비디비치, 어뮤즈, 연작 등 브랜드를 앞세워 해외 사업을 확장하는 한편, 신규 브랜드 인수 가능성도 거론됐다. 전체 매출에서 화장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30% 후반대로, 회사의 핵심 성장 축으로 부상했다는 평가다.
다만 실적 측면에서는 부담이 여전하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전년 대비 68% 감소한 8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됐지만 감소 폭은 여전히 크다. 회사는 지난해 2분기 영업손실 23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선 데 이어 3분기에도 20억원 적자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