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골퍼 안신애는 현역 시절 가볍게 백스윙을 시작해 피니시까지 우아하게 이어지는 흐름으로 유명했다. 화사한 맵시에 늘씬한 몸매, 모델이 화보 촬영하는 듯했다. 동시에 운동선수가 외모를 지나치게 꾸민다는 지적도 따라붙었다. 골프에 조금 더 몰입했다면 우승을 더 쌓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얹혀 있었다.
2024년 은퇴한 그가 얼마 전 개그맨 김국진의 유튜브 채널에 등장해 특유의 스윙을 다시 보여주자 반가움과 궁금증이 동시에 일었다.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안신애는 화장품 회사 '메르베이(MERBEI)' 대표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여기 오려고 2시간 동안 옷 고르고 화장했어요. 하하." 그의 '2막'은 생각보다 명확한 철학이 있었다.
"골프는 DNA"… 팬데믹과 가족의 시간이 방향을 바꾸다
안신애는 2009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해 메이저 1승을 포함해 3승을 거뒀고, 뛰어난 패션 감각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2017년부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활동하다가 지난해 9월 은퇴를 선언했다. 일본에서는 스포츠 뉴스뿐 아니라 예능·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도 잇따라 출연했다. 주로 연예인이 나서는 화보 촬영으로 화제를 뿌렸다.
안신애는 프로 골퍼의 꿈을 꿀 만큼 골프를 사랑했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1학년 때 연습장을 드나들며 재능을 발견했다. 뉴질랜드 국가대표와 KLPGA 신인상, 투어 3승까지 매끄러운 이력 뒤에는 늘 체력적 부담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건강해 보였지만, 그는 투어를 소화할 체력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남이 연습장에서 8시간을 보낼 때, 그는 피지컬 훈련과 회복에 시간을 더 투자해야 했다.
결정적 전환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었다. 일본 입국이 막혀 투어에 참가하지 못했고, 같은 시기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했다. "네 골프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싶다." 아버지의 이 말이 그를 다시 퀄리파잉 스쿨로 이끌었고 일본에서 한 시즌을 더 뛰었다. 안신애는 어머니와 딸 둘만 남기고 떠나는 아버지에게 약속했다. "어머니도 잘 보살펴드리고 사업에서도 꼭 성공할게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처음 해봤다고 한다.
결심 하루 만에 사무실 계약
2024년 말, 그는 지인과 카페 한 편에서 메르베이란 화장품 회사명, 제품 콘셉트, 시장 구조, 제조사 리스트, 필요한 초기 자본 등을 써 내려갔다.
"흐지부지되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는 바로 부동산 사무실에 연락해 사무실 다섯 곳을 하루에 돌아보고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이튿날 법인 서류를 준비했고 일주일 뒤 공식 사업자가 됐다. 그 이후 1년은 제품 개발의 전 과정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예산 조율, 성분 선택, 제형 테스트, 패키지 디자인까지 모든 공정을 본인이 직접 챙겼다. 2025년8월, 첫 제품이 시장에 나왔다.
"물처럼 사라지는 에센스 싫었다"… 소비자의 불만이 기준이 되다
안신애는 현역 시절 메이크업의 달인으로 통했다. 그의 말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꾸미는 걸 정말 좋아했다. 예쁘게 입고 나가는 걸 좋아했고,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고, 스스로를 가꾸는 데 시간을 들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타고난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발전하는 걸 좋아하고, 배우는 걸 좋아하고, 마인드도 열린 편이어서 그런 부분이 골프 선수 생활을 할 때도 나를 조금 남다르게 보이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골프를 그만둔 뒤에는 여자로서 삶과 사업가로서 삶, 두 가지를 다 고민하다가 결국 화장품 사업으로 옮겨오게 됐다." 유행하는 화장품 신제품을 거의 모두 써봤고, 해외 대회에 갈 때마다 로컬 브랜드를 탐색했다. 그 과정에서 공통적인 실망을 느꼈다고 한다.
"발라보면 물처럼 스치고 사라진다. 피부 안으로 들어가는지 의심스러웠다." '선수 생활로 손·얼굴·팔 피부가 혹사당한 만큼, 나에게 맞는 효과를 정확히 알고 쓰고 싶다'는 욕구는 자연스럽게 제품 기준으로 이어졌다.
핵심은 '리포솜화'였다고 한다. 성분을 미세 캡슐화해 깊은 층까지 전달하는 기술이다. 공정 기간이 한 달 늘고 원가도 증가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현재 메르베이는 에센스, 세럼, 크림, 선크림, 폼클렌저 등 5종 라인업을 갖췄다. 그는 이 제품을 매일 사용하며 변화를 기록한다. 소비자이자 개발자로서 스스로 검증하는 방식이다.
캐디에게 묻지 않던 선수, 최고경영자(CEO) 되고서는 "배워야 산다"
출시 초기 매출에는 '우정 매출'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사람 사귀는 폭이 넓지는 않지만,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간다. 지인·팬·업계 곳곳에서 응원의 구매가 이어졌다. "3개월 지나면 그다음은 제품력으로 평가받는 단계다."
현역 시절, 그는 캐디에게 퍼팅 라인을 거의 묻지 않는 선수였다. 자신이 보고 판단하는 것에 익숙했다. 하지만 CEO로서는 태도가 달라졌다. 성분표를 해석하고 제조사의설명을 받아 적고, 관련 연구를 찾아 읽고, 소비자 반응을 기록한다. 전문가의 의견은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반영한다. "이 분야에서는 내가 정말 신인이니까."
안신애는 현역 시절 골프 웨어계의 '완판녀'로 유명했다. 여러 브랜드를 거치면서도 옷맵시가 뛰어난 그가 입고 나오는 모델은 며칠 안 돼 동이 났다. 그만큼 소비자의 마음을 꿰뚫는 모델이었다. 안신애는 또 초청 프로암 대회에서 거액의 초청비를 받는다는 미확인 소문이 무성했다. 지금 따져도 최고의 금액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는 사실 월요일 프로암 참가를 거의 하지 않았다. 체력 관리와 연습이 우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값어치' 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고 했다. 그 경험은사업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그는 "유행으로 반짝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다시 찾게 되는 브랜드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회사명 메르베이는 프랑스어 merveille에서 연상한 이름으로, '경이로움'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피부의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해 내면에서부터 건강하게 빛나는 피부를 지향하는 스킨케어 브랜드라는 설명이다.
"골프도, 사업도 장기전"… 안신애의 새로운 라운드
안신애는 스스로의 인생관을 '성취감'이라고 정의한다. 하루하루 목표를 세우고 움직이는 방식은 현역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사업에서는 '장기전'이라는 감각이 더 강하다. "골프는 1홀로 끝나지 않는다. 메르베이도 그렇다." 그에게 메르베이는 은퇴 후 취미가 아니라 새로운 업의 출발점이다. "언젠가 골프 선수 때처럼 '열심히 했고 후회 없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