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명동에 있는 코닥 플래그십스토어 전경. /김은영 기자

필름 카메라로 유명한 미국 기업 이스트만 코닥이 또다시 파산 위기에 몰렸습니다. 실적 부진과 함께 1년 내 갚아야 할 부채 4억7000만달러(약 6500억원)를 갚을 능력이 없다는 불신이 커지면서죠. 올해 2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코닥은 "막대한 부채 때문에 회사의 존속 가능성에 상당한 의문이 제기된다"라고 밝혔습니다.

반면, 한국에선 '코닥' 로고가 붙은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 옷은 국내 패션 업체 하이라이트브랜즈가 2020년 출시한 패션 브랜드 '코닥어패럴'의 제품입니다. 미국엔 없는 코닥 의류 매장이 한국엔 120개가 넘습니다. 서울 명동, 성수, 광장시장 매장은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 코스가 됐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디지털 혁명에 적응하지 못해 실패의 대명사가 된 코닥이 뜻밖의 레트로(복고) 패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라며 성수동 코닥어패럴 매장을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코닥 명동 플래그십스토어에서 쇼핑하는 고객들. /김은영 기자

13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코닥은 필름과 아날로그 카메라 제조사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하향길에 접어들었고, 결국 2012년 파산보호 신청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듬해 코닥은 필름 카메라 사업부를 매각한 후 인쇄 기술 지원과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기업으로 회생했습니다. 코로나19 기간인 2020년에는 미국 정부가 복제약 생산을 허가해 줘 제약 사업에도 뛰어듭니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지난해 코닥 매출은 10억달러(약 1조3978억원)에 머물렀습니다. 1990년 매출이 190억달러(약 26조5582억원)였던 사실을 고려하면 격세지감입니다.

본업 쇠퇴에 대한 대안으로 코닥은 제조 및 소매업체들과 상표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완구 업체 마텔, 아이웨어 업체 에실로룩소티카 등 44개 업체와 브랜드 사용 계약을 체결했죠. 지난해 관련 매출은 2000만달러(약 279억원)로 5년 전과 비교해 35% 증가했습니다.

코닥어패럴도 그중 하나입니다. 명동 코닥 매장에는 노랑과 빨강이 섞인 사각 로고가 달린 티셔츠와 모자, 가방을 들어보는 다국적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이 매장의 월 매출은 7억~8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코닥의 국내 상표 라이선스 권리를 가진 하이라이트브랜즈는 코닥을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가 열광하는 '뉴트로(Newtro)' 트렌드와 접목했습니다. 뉴트로는 복고(Retro)를 새롭게(New) 해석하는 감각을 의미하는 합성어입니다. 업계에선 필름 카메라라는 고유한 브랜드 유산을 현대적인 스타일로 재창출해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난 5월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 라이선스 어워즈에서 2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중국 상해 난징동루 쇼핑몰 모자이크 휘에후이에 있는 MLB 매장. /F&F 제공

사실 유명 지식재산(IP)과 패션을 결합하는 건 한국 기업들이 잘하는 분야입니다. F&F(383220)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를 패션 브랜드로 만들어 중국에 진출, 연 매출 1조원대 브랜드로 키웠습니다. 이 회사는 미국 워너브라더스의 다큐멘터리 채널 디스커버리를 패션 브랜드로 출범해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 11개국 판권을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도 한국 기업 더네이쳐홀딩스(298540)를 통해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한 사례입니다. 이 회사는 대만과 홍콩의 판권을 획득해 현지 매장을 운영 중이며, 중국에서는 현지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라이선스 의류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코닥도 이런 성장 계보를 이을 태세입니다. 지난해 코닥 본사로부터 중국, 홍콩, 마카오, 대만 등 중화권 사업권을 획득한 하이라이트브랜즈는 현지에서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를 운영하며 시장성을 시험 중입니다. 3주간 열린 대만 팝업스토어에선 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이 기간 6000명의 고객이 방문했습니다.

업계에선 이를 K패션의 저력이라 평가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누군가는 기념품(굿즈) 브랜드라고 하지만, 한국처럼 이종 산업의 유명 IP를 성공시킨 사례가 많은 곳은 없다"라며 "이 또한 K패션의 한 축으로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코닥어패럴 측은 "코닥이 지닌 아카이브를 글로벌 감성과 레트로 무드로 재해석해 소비자 기억 속에 자리한 향수를 일상으로 끌어냈다"라며 "코닥의 브랜드 아카이브를 제품과 공간, 콘텐츠로 확장해 글로벌 라이선스 패션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