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뉴욕 맨해튼에 연 브리즘 미국 1호점. /콥틱 제공

"안경이 얼굴에 맞아야지, 얼굴을 안경에 맞추는 건 아니다."

지난 5월 하버드 경영대학원(Harvard Business School·HBS) 홈페이지에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한 리포트가 올라왔다. 한국 3D 안경 스타트업 브리즘(Breezm)에 관한 24장짜리 리포트로, 후안 알카세르 HBS 석좌교수가 작년 5월 서울 을지로 브리즘 매장을 찾아 경영자들을 인터뷰한 후 작성한 것이다. HBS가 한국의 스타트업을 사례로 다룬 건 드물다. 올가을 학기 교재로도 사용된다.

당시 알세카르 교수는 양 눈의 시력 차이가 커 오랫동안 안경을 착용하며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브리즘 매장에서 제작한 맞춤형 안경을 쓴 후 만족감을 느꼈고, 브리즘의 혁신 사례를 담은 리포트 한편을 공개했다. 1편은 브리즘의 초기 시장 진입 과정을 다뤘고, 향후 해외 진출 전략과 미국 진출 과정 등을 다룬 연구 두 건이 추가로 발표될 예정이다.

기존 안경은 대량 생산된 안경 중 최대한 얼굴에 맞는 걸 골라 써야 했다. 대체로 잘 맞지 않지만, 안경테의 다리와 코 받침대 등을 조절해 맞춰 쓴다. 이런 공급자 중심의 안경 산업에서 3D 스캐닝으로 얼굴 윤곽을 뜨고, 3D 프린팅 방식으로 얼굴에 맞는 안경을 제작하는 브리즘의 방식을 알카세르 교수는 높이 평가했다.

브리즘을 운영하는 박형진 콥틱 공동대표는 4일 조선비즈에 "안경이라는 낡고 오래된 산업에서 첨단 기술로 고객 경험을 새로 설계했다는 점에서 HBS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실사를 위해 브리즘 본사를 방문한 후안 알카세르 하버드 경영대학원(HBS) 석좌교수(왼쪽 첫 번째)와 박형진 콥틱 공동대표(왼쪽 두 번째), 성우석 공동대표(오른쪽 첫 번째)와 함께한 모습. /콥틱 제공

2018년 박형진·성우석 대표가 출범한 브리즘은 3D 얼굴 스캐닝과 3D 프린팅 기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추천을 기반으로 한 안경 브랜드다. 산들바람(breeze)과 같은 가벼움과 광학적 전문성(prism)을 합친 이름처럼 편하고 선명한 삶을 위한 안경을 만든다. 작년에만 2만5000개 이상을 판매해 108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이는 전년 대비 52.5% 증가한 수치다. 최근에는 8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 누적 투자액 195억원을 달성했다.

기존에도 맞춤 안경을 만드는 곳은 있었다. 그러나 전통 제작 방식으로 개인 맞춤 안경을 만들려면 20가지 공정을 거쳐야 하고, 가격도 100만원이 넘는다. 반면 3D 프린팅 공정은 3D 디지털 모델링, 프린팅, 평활화, 채색 4단계면 끝나고, 가격도 20만원대면 맞출 수 있다.

박 대표에 따르면 브리즘과 같이 사용자의 얼굴을 스캔해 3D 프린팅으로 안경을 제작하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 3곳 정도다. 이중 직접 매장을 내고 브랜딩까지 하는 곳은 브리즘이 유일하다고 한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 매장을 연 브리즘은 다음 달 서울 성수동에 660㎡(200평) 규모의 스마트 팩토리를 열고, 오는 11월에는 미국에서 아이폰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해 집에서도 안경을 주문하는 시스템을 갖출 예정이다. 2027년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해외 진출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HBS) 홈페이지에 올라온 브리즘 케이스 스터디 리포트. 해당 리포트는 유료로 다운 받아볼 수 있다. /HBS

박 대표는 "회사 설립부터 미국 진출이 목표였다"면서 "미국 고객의 경우 코 높이가 10~30mm씩 차이가 나는데, 한국은 단일 민족이라 얼굴형의 표준편차가 적어 맞춤 안경 사업을 하는 게 한계가 있다"라고 했다.

HBS 리포트에 따르면 2022년 1390억달러(192조5845억원)인 세계 안경 시장 규모는 2027년 1780억달러(약 246조619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기대수명 증가와 근시 등 눈 관련 질환 발생률 증가 등이 안경 시장을 키울 거란 관측이다.

현재 브리즘 뉴욕 매장은 월평균 6000만~7000만원의 매출을 벌어들이고 있다. 매출 규모는 적지만, 순고객추천지수(NPS) 점수는 평균 70점으로 한국(50점)보다 높다. 한국 안경의 정밀한 디테일 덕분에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다음 달 17일 문을 여는 성수 스마트 팩토리는 기존에 안양에 있던 공장을 옮기는 것으로, 3D 프린팅 안경이 제작되는 과정을 고객들이 직접 보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꾸려진다. 박 대표는 "브리즘의 기본 철학이 '안경의 착용감과 상관없는 오브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며 "브리즘의 새로운 혁신이 시작되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파운더리 오렌지(Foundry orange)'를 콘셉트로 잡았다. 혁신적인 브랜드와의 협업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