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K)뷰티 산업이 북미와 중국 중심 수출에서 벗어나 인도와 중동 등 신흥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한국 화장품 수출의 양대 축이었던 중국은 경기 둔화로 수요 부진이 이어지고 있고, 미국은 관세 리스크가 부상했다. 이에 따라 국내 화장품 업계는 공급망과 유통 채널을 다변화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이날 한국과의 협상에서 상호 관세율을 15%로 합의했다. 관세는 내달 1일부터 발효된다. 관세 압박에 가격 경쟁력이 약화하면 수출 타격은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K뷰티 기업들은 북미 외 시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는 K뷰티의 핵심 성장 시장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인도 뷰티·퍼스널케어(BPC) 시장은 2027년까지 300억달러(약 40조5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 리서치 기관 발표에 따르면 인도 내 K뷰티 연평균 성장률은 9% 이상으로 예상된다. 올해 상반기 기준 한국의 대인도 화장품 수출은 5000만달러(약 675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44.7% 증가했다.

앞서 아모레퍼시픽(090430)은 이니스프리, 라네즈, 설화수 등 주요 브랜드를 현지에 가장 먼저 안착시켰다. 특히 이니스프리 인도 법인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58% 증가한 117억원을 기록하며 고성장했다. 조선미녀, 스킨1004, 아누아 등 인디 브랜드들도 니카(Nykaa), 티라(Tira) 등 이커머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동은 할랄 등 맞춤형 색조 화장품 수요 증가에 힘입어 ODM(주문자 개발 생산) 제조 업체들의 신흥 시장으로 부상했다. CNC인터내셔널은 현지 피부톤과 종교적 특성에 최적화된 리퀴드 블러쉬 제품으로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575% 급증했다. 2025년 4월 누계 기준 한국의 중동향 화장품 수출은 1억2000만달러로, 전년 연간 수출액의 40% 이상을 상반기 내 달성했다.

수출 비중도 2021년 1%에서 2025년 4%로 확대됐으며, 아마존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플랫폼에서 K뷰티 브랜드가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코스맥스는 아예 '로코(LOCO) 프로젝트'를 통해 인도·중남미·아프리카 등 신흥시장 맞춤형 제품 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물류·유통 기반이 확립된 인도는 중동·아프리카 지역 진출의 생산·수출 전초기지다.

영국 드러그 스토어 부츠는 온라인몰에서 한국 제품 전용관을 운영하고 있다. /부츠닷컴 캡처

유럽은 K뷰티 수출 지형이 재편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이다. 관세청 한국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1~5월) 화장품 수출 유럽 지역 비중은 지난해 13.8%에서 17.1%로 확대됐다. 4월 누계 기준까지만 보면 유럽이 17.2%로 미국(16.8%)을 역전하기도 했다. 유럽 시장이 미국을 넘어설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실제 최대 K뷰티 유통사인 실리콘투(257720) 1분기 유럽 매출은 813억원으로 전체의 33%를 차지했으며, 이는 북미 매출(452억원) 대비 80% 이상 많은 수치다. 부츠·세포라 등 유럽 유통망 확대와 오프라인 진입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올해 1~5월 화장품 수출에서 중동 지역 비중도 3.3%에서 4.1%로 늘었다. 미국은 18.1%에서 17.5%로 줄어들고, 중화권은 31.1%에서 27.1%로 감소했다. 올해 1~5월 한국 화장품의 수출 비중은 중화권(27.1%), 미국(17.5%), 유럽(17.1%), 아세안(13%), 일본(9.9%), 중동(4.1%) 순이다.

시장 주도권도 대기업에서 인디·중소 브랜드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중소기업의 화장품 수출은 18억4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9.6% 증가했다. 전체 수출 중 비중은 71%에 달했다. 같은 기간 대기업 수출 증가율(3%)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미국발 관세 이슈에 대응해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고 있다"라며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화장품 대기업들의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경계심"이라고 분석했다.

권우정 교보증권 연구원은 "유럽과 중동에서 K뷰티는 초과 수요를 나타내고 있다. 부츠·세포라·DM·로스만 등 글로벌 화장품 유통업체 고위 경영진이 직접 K뷰티를 들여오기 위해 한국에 적극적으로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현재 부츠의 스킨케어 매출 중 10%는 K뷰티가 차지하고 있고, 영국 세포라에서는 '한국 스킨케어'를 별도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만큼 적극적이다. 중동 역시 지사가 없는데도 올해 1분기 K뷰티 비중이 13%를 차지할 만큼 반응이 뜨겁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