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명품 시계브랜드 예거 르쿨트르가 더현대 서울 부티크를 오는 3월 말 까지만 운영한다. 더현대 서울의 주 고객층은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인데, 고물가 시대에 지갑이 얇아진 MZ세대가 초고가 명품에 지갑을 닫은 여파로 해석된다.

그동안 시계를 포함한 명품 브랜드들은 가격 인상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해왔는데, 불경기 탓에 향후 몇 년 동안은 성장세가 하락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예거 르쿨트르의 '마스터 울트라씬 퍼페추얼'./예거 르쿨르트 홈페이지 캡처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예거 르쿨트르는 더현대 서울 부티크를 오는 3월 31일까지만 운영한다. 다만 애프터서비스(AS) 관련 문의는 다른 부티크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예거 르쿨트르는 서울 지역에 더현대 이외에 6개 부티크를 운영 중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양사 협의 하에 폐점 논의중"이라며 "매년 MD 개편을 진행해오고 있는데 이 맥락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더현대 서울은 고객층 50% 이상이 MZ세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점된 브랜드도 2030세대가 좋아하고 소비하는 브랜드 위주로 구성됐다. 개점 2년 만인 2023년에서야 뒤늦게 루이비통이 입점하는 등 에르메스, 샤넬 등 초고가 명품은 보기 드물다. 대신 구찌, 발렌시아가, 토즈 등 명품 중에서도 중저가 브랜드가 입점해있다. 명품 시계 중에서는 롤렉스가 '입문용'으로 꼽히는데, 롤렉스도 더현대 서울에 입점해있지 않다. 더현대 서울 주 고객층과 예거 르쿨트르 수요층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게 업계 시각이다.

게다가 불경기까지 겹치면서 고급 시계 수요가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앞서 작년 8월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도 예거 르쿨르트 등 여러 명품 시계 브랜드를 취급하는 딜러사 드로어써클이 철수한 바 있다.

예거 르쿨트르는 리치몬트그룹이 보유한 브랜드 중 하나다. 리치몬트는 LVMH, 케링 등과 함께 거대 명품 그룹 중 하나로 꼽힌다. LVMH와 케링이 가죽, 패션 브랜드에 집중하고 있다면 리치몬트는 최상위 보석, 시계 브랜드를 여럿 갖고 있다.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등 보석 브랜드와 바쉐론 콘스탄틴, 랑에 운트 죄네, IWC 등 시계 브랜드들이다.

매출만 놓고 보면 리치몬트를 비롯한 명품 브랜드들은 지속해서 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6일 리치몬트는 4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10% 증가한 62억유로(약 9조3500억원)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잇따라 가격을 인상하며 수요 감소를 메꿔왔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글로벌 컨설팅그룹 맥킨지는 파이낸셜타임즈(FT)에 "명품 업체들의 2019~2023년 매출 성장은 80% 이상이 가격 인상으로 인해 발생했다"며 "업계가 스스로 초래한 문제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특히 중국 시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리치몬트 4분기 매출도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7% 감소했다. 중국 본토, 홍콩, 마카오를 합친 지역에서는 18% 감소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최근 명품 시장 보고서에서 "세계 명품 시장의 '큰손'인 중국에서 지난해 명품 매출이 20% 감소했다. 고가 시계와 보석류 매출은 전년 대비 30% 넘게 줄었다"며 "한국 명품 시장도 내수 침체의 영향권에 있다"고 분석했다.

예거르쿨트르를 포함해 롤렉스, 파텍필립, 오데마피게 등 시계 브랜드 60개의 가격을 추적하는 워치차트 마켓 인덱스(WatchCharts Overall Market Index)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전체 시계 시장 매출은 5.1%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