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와 인터뷰 중인 윤동한 콜마그룹 회장. /전기병 기자

윤동한(75) 콜마그룹 회장은 이순신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역사와 인문학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윤 회장은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연구하고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2017년 이순신 장군의 자(字)를 딴 서울여해(汝諧)재단을 설립하고, 대구가톨릭대학에 석박사 통합 과정인 이순신 학과 개설을 지원했다. 또 이순신 장군 주변의 인물들까지 탐구해 여러 권의 책을 냈다.

그가 이토록 이순신 연구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이순신의 삶을 통해 경영의 지혜를 배웠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이순신 리더십은 효(孝)와 충(忠)의 교직으로 이뤄진 건강한 리더십”이라며 외세의 침략으로 존망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애민 정신과 통솔의 리더십이 한국콜마를 이끄는 철학적 근거가 됐다고 했다.

윤 회장은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영남대를 졸업한 그는 40대 나이에 대웅제약 최연소 부사장을 역임한 후 1990년 한국콜마(161890)를 창업했다.

국내 최초로 제조자 개발생산(ODM)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화장품 업계에 도입해 세계 시장에서 K뷰티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이후 의약품과 건강식품으로 사업 분야를 확대했고, 지난해에는 미국 콜마 본사가 지닌 글로벌 상표권을 인수해 전 세계 콜마의 주인이 됐다. 한국콜마그룹은 올해 매출 2조원을 바라본다.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탄생 478주년이 되는 날이다. 조선비즈는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여해재단에서 윤 회장을 만나 이순신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소문난 독서광답게 그의 집무실은 온통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전부터 경영 서적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취향을 엿볼 수 있었다.

윤 회장은 독서를 통해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얻었다고 했다. 최근에는 피터 자이한의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과 ‘시진핑 신시대 왜 한국에 도전인가’를 읽으며 현안을 고민했다.

그는 “역사 속 인물들을 통해 경영 전략을 배웠다”며 “특히 이순신 장군의 책과 사료를 탐독하며 그가 뛰어난 경영자이자 위대한 인격자라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한 길을 간 그를 따라가면 기업도 성공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이순신 리더십을 통해 세가지 경영철학을 도출했다. 기술경영, 인재경영, 독서경영이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여해재단 집무실에서 만난 윤동한 콜마그룹 회장. 소문난 독서광 답게 그의 집무실은 책으로 가득했다. /전기병 기자

① 기술경영 : 거북선은 R&D의 결과물… 매출 5%는 연구개발에 투자

윤 회장은 이순신 장군을 역사상 최고의 경영인으로 꼽는다. 기업가의 시각에서 볼 때 이순신 장군은 일찍이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을 간파해 거북선과 천자총통 등의 무기를 개발하고 학익진 전술을 사용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윤 회장은 “이순신 장군은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환경을 개척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며 “대표적인 게 전장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담아낸 거북선이다. 이는 이순신 정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한국콜마는 업계 최초로 ODM을 도입했다. 창업 당시만 해도 국내 화장품 제조업계는 선진국 산업체를 보조하는 주문자 납품방식(OEM)에 의존했으나, 한국콜마는 독자적으로 제품 연구 개발부터 디자인, 생산까지 도맡아 하는 시스템을 갖춰 전문 제조업체로서 입지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1990년대 여성들이 주로 사용했던 건·습식 파운데이션인 투웨이케이크를 비롯해 K뷰티를 알린 마스크팩과 쿠션, BB크림 등을 대중화한 것도 한국콜마였다.

ODM 비즈니스는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사업이다. 한국콜마는 창업 초기부터 직원의 30% 이상을 연구원으로 구성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또 연 매출의 5% 이상을 신소재와 신기술 연구에 투자한다. ‘성장한 만큼 투자하지 않으면 결국 퇴보하고 만다’는 게 윤 회장의 지론이다.

덕분에 자체 공장이 없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이 ‘K뷰티’라는 이름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게 됐다. 업계에선 한국의 화장품 산업을 한국콜마의 ODM 사업 등장 전과 후로 나눠서 보는 시각이 많다.

윤 회장은 한국콜마를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는 기업”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전 세계 선크림의 표준을 우리가 만들었다”며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ODM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국내 화장품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자부했다.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여해재단 집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 중인 윤동한 콜마그룹 회장. /전기병 기자

② 인재경영 : “모든 사람엔 능력이 있다”… ‘우보천리’ 정신으로 인재등용

이순신 장군은 신분에 상관없이 부하들과 진실한 마음을 나눈 소통의 리더였다. ‘난중일기’를 봐도 휘하 장군 1000여 명이 등장한다. 신분의 높낮이를 떠나 장점의 능력을 우선시했고, 칭찬과 포상도 아끼지 않았다. 또 신뢰를 바탕으로 차별 없이 인재를 등용했다.

윤 회장은 기업경영의 핵심을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을 움직이는 건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업(企業)의 기는 사람 인(人)과 머물 지(止) 자가 합쳐져 있다. 많은 사람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업을 경영해 가는 것이 경영자의 책임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서 오래 있으면 기업이 커진다”며 “사람들이 오래 기업에 머무르게 하려면 밑바탕에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이면지로 만든 노트에 명심보감 첫머리에 나오는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 지부장무명지초(地不長無名之草)’를 직접 써 보이며 “모든 인간에게는 고유의 능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순신 장군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웅이 됐다.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과거 응시 자격이 박탈됐으나, 어머니가 진정서를 내 무과 급제를 이뤘다. 14년간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일했고,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어려워진 마흔일곱에야 제독(提督)이 됐다.

또 군자금을 만들기 위해 논밭을 갈고 소금을 구워 팔았다. 이순신이 성웅의 칭호를 얻기까지 그의 가족은 세 번이나 거처를 옮겨야 했다.

윤 회장은 이순신 장군의 삶이 ‘우보천리(牛步千里)’ 정신을 실천한 것이라고 봤다. ‘소의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뜻으로, 일정한 속도로 걸어가는 소처럼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정진하면 궁극적으로 목표에 가장 먼저 이를 수 있다는 의미다.

윤 회장은 혼자 빨리 가는 것 보다 여럿이 함께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와 하나를 합치면 둘이 아니라 셋 이상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의 철학은 2018년 한국콜마가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를 인수할 때 반영됐다. 당시 시장에선 중견기업이 대기업 계열사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으나, 윤 회장은 두 조직의 물리적·화학적 융합을 고민한 끝에 이듬해 경영 방침으로 일로동행(一路同行)을 내세워 단합을 도모했다.

그 결과 당시 8000억원대 수준이던 한국콜마의 연 매출은 지난해 1조8657억원으로 급증했다. 화장품에 한정됐던 사업 영역이 제약과 건강기능식품으로 확장하면서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우보천리 정신은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윤 회장이 건네는 조언이기도 하다.

윤동한 콜마그룹 회장 집무실 책상 풍경. 독서광인 그는 다양한 장르의 책을 동시에 교체해 읽는 걸 즐긴다. /전기병 기자

③ 독서경영 : “책은 아버지가 주신 가장 큰 유산”… ‘123 원칙’ 지키며 해답 얻어

“아버지가 물려주신 가장 큰 유산은 책입니다.”

윤 회장은 책을 통해 경영의 지혜를 배웠다. 시작은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주신 쥘 베른의 소설 ‘15소년 표류기’였다. 배에 탔다가 무인도에 표류한 15명의 소년이 2년간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남는 이야기다.

윤 회장은 “이 책을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를 배웠다”며 “아버지의 유산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경영철학의 근간이 된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도 책으로 만났다. 윤 회장은 독서를 통해 삶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인재들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윤 회장은 늘 책을 곁에 두고 ‘123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루에 한 번(1) 책을 읽고, 일주일에 두 권(2) 이상 읽으며, 한 번에 세 종류(3)의 책을 읽는 것이다. 고전과 경제 서적 외에도 교양서, 소설, 시까지 여러 분야의 책을 동시에 교차해서 읽는 게 오랜 독서 습관이다.

2006년부터는 한국콜마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연간 6권 이상의 책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작성하는 독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승급의 중요한 요소로도 작용한다. 올해 4월 기준 임직원들의 누적 독서감상문은 13만2688건으로, 책 두께로 환산하면 백두산 높이를 훌쩍 넘는 3981m에 달한다.

특히 윤 회장은 역사 속 인물의 행적을 기업인의 시각으로 평가하는 걸 즐긴다. 문익점의 행적을 경영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두 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고려시대 문익점은 중국 원나라에 갔다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들여와 산업의 토대를 일군 것으로 유명하다. 윤 회장은 앞서 많은 지식인들이 외국 문물을 배우기 위해 수천 년 전부터 중국과 일본을 왕래했음에도 백성들의 의복이나 삶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점을 들어 문익점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윤동한 회장이 집필한 저서들. 그는 역사 속 인물의 행적을 기업인의 시각으로 평가하고 이를 통해 경영의 지혜를 얻는다고 했다.

윤 회장은 ‘역사를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거울’이라고 보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석오문화재단 산하 역사연구원을 운영하면서 국사를 수능 과목으로 채택하는 데 기여했고, 해외 유출 문화재인 수월관음도를 25억원에 매입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 독립운동가 ‘최재형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나라꽃으로서 무궁화의 위상을 높이고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경기도 여주에 ‘콜마 무궁화 역사문화관’을 개관했다.

한국콜마는 올해 글로벌 경영을 강화할 방침이다. 상반기 중 미국 뉴저지에 ‘북미기술영업센터(북미센터)’를 준공하고, 펜실베니아주 공장에 기초 화장품을 기반으로 한 제2공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 영업망을 대폭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역사 속 인물을 연구하고 알리는 일도 지속한다. 윤 회장은 “지식인은 정보를 독점해 내 주머니만 챙겨선 안 된다”며 “역사 속 위인의 삶을 보면 내가 지금 뭘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1년 후엔 이순신학 석박사들이 나오는데 이들과 함께 이순신 학회를 만들어 이순신에 대한 이론을 더 정립해 알리는 게 나의 꿈이자 희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