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모델(장원영)이 광고하는 제품은 뭐죠?"
지난달 25일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23평 규모의 이니스프리 신의점 매장에서는 점심시간을 맞은 직장인들과 인근 주민들이 직원에게 제품을 추천받거나 메이크업을 해보고 있었다. 매장 정면에는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의 광고영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장원영이 광고하는 제품은 대만 내 이니스프리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그린티세럼'으로 80ml 기준 940대만달러(약 4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월평균 4000개가 팔린다는 이 제품은 누적 판매량을 기준으로 35만병 넘게 팔렸다. 한화로 환산하면 140억원어치다.
매장에서 그린티세럼을 구매한 주부 진의신(40)씨에게 구매 이유를 묻자 "여드름 피부를 가지고 있는데 4년 전 한국 여행 때 구매한 후로 제품이 순해서 계속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에밀리 초(38)씨는 "연말 이벤트로 와인잔을 증정한다고 해서 이것저것 담았는데 모두 매진됐다더라"라며 "그래도 평소 쓰던 기초제품이라 구매하기로 했고, 연말선물로 줄 핸드크림 등을 담았다"고 했다.
대만에는 50여 개의 아모레퍼시픽(090430) 매장이 있는데 이니스프리 신의점은 월평균 매출이 7000만원 가량이다. 월평균 매출 1억원 이상인 매장도 4곳 정도 된다.
◇ "BTS·블랙핑크·아이브 내세워 젊은층에 인기…리브랜딩 중점"
이날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대만법인 본사에서 만난 제니퍼 슈(Jennifer Hsu) 대만 법인장의 사무실에는 아모레퍼시픽의 다양한 제품들과 BTS 멤버들의 피규어(모형)가 전시돼 있었다.
32년 동안 뷰티업계에서 근무한 제니퍼 슈 법인장은 2019년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해 대만법인장으로 근무 중이다.
본인부터 'K팝과 K뷰티 팬'이라고 밝힌 그는 이전에는 엘리자베스아덴, 카렌스, 시세이도 등 다양한 글로벌 뷰티 브랜드에서 근무했다. 그러다 대만 내 K뷰티의 확장성을 알아보고 아모레퍼시픽에 지원했다고 했다.
대만 경제부 국제무역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만의 한국 화장품 수입액은 1억달러(약 1301억원) 규모로, 전체 수입액 7억3000달러(약 9107억원) 대비 13.7%를 차지한다.
지난 8월에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K뷰티 엑스포에 참가해 "대만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의 비중이 높은 만큼, 앞으로도 대만과 한국 간의 뷰티 산업 교역이 활성화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만 내 뷰티 시장을 이끄는 차세대 고객층을 겨냥해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와 올해 2030세대 젊은 고객층을 타깃으로 리브랜딩에 나섰다.
올해 9월 설화수 모델에 블랙핑크 로제를 발탁하고, BTS와의 협업을 통해 라네즈 한정판 제품을 만들어냈다. BTS 협업 제품은 사전 예약 기간이 한 달이었음에도 대만 내에서 이틀 만에 수천 개의 물량이 모두 동났다.
지난해부터 이니스프리의 모델로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 올해 11월에는 에뛰드하우스의 모델로 르세라핌의 멤버 카즈하를 발탁하는 등 '젊은 브랜드'로 바꾸는 데 집중했다.
특히 중장년층에게 인기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인 설화수의 모델을 로제로 바꾸면서 엄마와 딸이 같이 사용하는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게 목표다.
설화수의 윤조 에센스는 대만에서만 누적 35만병 넘게 판매됐으며, 단일 제품 누적 매출은 160억원을 넘어서는 등 인기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코로나 시기 한국 화장품 성장 '주춤'…충성도 전략으로 타개
2004년 아모레퍼시픽이 대만에 진출할 당시만 해도 3개에 불과했던 오프라인 매장은 현재 50여 개로 늘어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시기 대만에서 해외 브랜드 화장품의 공급 차질과 중국의 자국 브랜드 지원 등으로 인해 한국 화장품 브랜드의 성장세는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전자상거래(이커머스)를 통한 매출 신장률이 매년 50%씩 늘며 새로운 유통 채널 확보 및 리브랜딩을 통한 고객층 넓히기에 나섰다.
아모레퍼시픽의 3분기 매출을 보면 아시아 지역에서 매출이 1조640억원으로 전년 동기 (1조3694억원) 대비 감소했다.
하지만 제니퍼 슈 법인장은 "대만 내 오프라인 매출은 팬데믹 이전 수준의 85%를 회복했으며, 나머지는 해외여행 재개에 따라 매출이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대만법인은 매출 회복의 전략으로 '충성도 전략'을 꼽았다. 온라인에서 아모레퍼시픽의 제품을 사면 대만 백화점에서 30~60분 메이크업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차별화 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울러 대만 내 화장품 전문 숍인 Watsons(왓슨스), COSMED(코스메드), POYA(포야) 등 오프라인 매장에도 판매를 확대해 접근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제니퍼 슈 법인장은 "한국의 K푸드, K콘텐츠의 힘을 넘어 K뷰티의 확장성도 클 것"이라며 "에스티로더·로레알·시세이도와 경쟁해 대만 내 점유율을 더 늘려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