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내 '애플 잠실'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애플 잠실'은 가로수길, 여의도, 명동에 이은 국내 4호 애플스토어다. /뉴스1

애플스토어가 국내 영토 확장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신규 매장 중 2곳이 애플 공식 리셀러(판매 대행) 매장인 프리스비를 철수하고 내는 것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2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애플 직영 판매점 애플스토어는 2018년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국내 1호점을 연 이래 현재까지 여의도 IFC몰과 명동, 잠실 등 4곳에 매장을 열었습니다.

지난 3월에는 강남구 역삼동 교보타워 사거리에 위치한 비제바노 빌딩 2개 층을 임차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다섯 번째 매장의 출점을 확정했죠.

이 중 3호점인 IFC몰점과 5호점인 강남점은 금강제화 계열사 갈라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프리스비가 있던 곳입니다. 2011년 문을 연 프리스비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애플 제품을 취급하던 총판으로, 애플 리셀러 중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특히 강남점은 애플의 신제품을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플래그십스토어(대표 매장)로 애플 마니아들의 각광을 받았죠.

그런 매장이 내년이면 간판을 갈아 끼울 예정입니다. 애플의 리셀러가 아닌 직영점으로요.

프리스비가 주요 점포인 강남점을 애플에 내준 이유는 매장 운영으로 얻는 수익보다 임대 수익이 더 높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건물은 김성환 금강제화 회장의 장남인 김정훈 부사장이 지분 100%를 가진 비제바노 소유 건물인데요, 김 부사장은 갈라인터내셔널의 지분 50%를 지닌 최대 주주기도 하죠.

애플코리아유한회사는 올해 3월말 비제바노 빌딩 지상 1층(805.48㎡)과 2층(783.04㎡)을 보증금 42억원, 월세 4억2000만원에 임차했습니다. 임차 기간은 매장 개점일로부터 10년간입니다.

실제 사용 면적에 대한 임차비용(NOC·Net Occupancy Cost)은 3.3㎡당 40만~50만원 선으로 알려집니다.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전용률이 다른 빌딩 간의 임대료를 비교하는 기준으로 NOC를 주로 쓰는데요, 이는 주변 건물의 NOC와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은 수준입니다.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기업 알스퀘어의 진원창 이사는 "강남 테헤란로의 가장 꼭대기 층에 위치한 프라임급 오피스의 NOC가 40만원이 안 되는 걸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애플스토어는 집객력 높은 앵커스토어(상권의 핵심 역할을 하는 점포)로, 부동산 시장에선 이만한 임차인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라고 했습니다.

애플스토어의 사세 확장으로 애플 리셀러들의 위상이 위축되고 있다는 점도 프리스비가 주요 상권의 매장을 철수한 원인으로 풀이됩니다.

애플스토어와 리셀러 모두 정가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 소비자 입장에선 경험 콘텐츠가 많은 직영 매장을 더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금강제화가 2009년 프리스비를 출범한 이유는 본업인 제화 시장의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는데요, 가죽 구두를 주로 생산 판매했던 금강제화는 운동화와 같은 편한 신발이 유행하자 계열사를 통해 슈즈 멀티숍 레스모아를 내고 옆에 프리스비를 세워 20~30대 고객을 유인하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그러나 나이키 등 주요 브랜드가 직접 판매(D2C)를 늘리면서 슈즈 멀티숍 수요가 줄자 레스모아는 2020년 6월을 기점으로 온라인 편집숍으로 전환했습니다. 프리스비 역시 애플스토어의 확장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프리스비와 레스모아를 운영하는 갈라인터내셔널의 지난해 매출은 약 1845억원으로 전년보다 37%가량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5억여원으로 전년보다 70%가량 줄었습니다. 당기순이익도 42억원에서 9억원으로 쪼그라들었죠. 판매관리비가 355억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증가한 영향이 컸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애플 리셀러들은 새 학기에 할인 행사를 진행하거나 상품권을 증정하는 등의 판촉 활동을 통해 매출을 올립니다. 최근엔 하이마트, 이마트(139480) 등 유통사들이 애플 제품 판매에 뛰어든 데다 애플이 온오프라인 판매를 강화하고 있어 판관비가 더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2011년 컨시어지라는 이름으로 애플 공식 판매에 뛰어들었던 SK네트웍스(001740)가 3년 만에 사업을 철수한 이유도 수익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앞서 비제바노 빌딩은 이 공간의 절반을 프리스비 매장으로 운영하고, 나머지는 스포츠 의류 브랜드 언더아머에 임대했는데요. 수익성이 저조한 사업을 힘들게 하느니 확실한 앵커스토어에 장기 임대를 내주는 편이 회사 측에서도 이익이라는 판단이 들었을 겁니다.

갈라인터내셔널은 최근 프리스비의 출점 전략을 대형 상권 가두점에서 지방 중소형 점포를 중심으로 수정하고 있습니다. 3년 전 12개였던 매장 수도 22개로 늘렸습니다.

갈라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애플스토어와 직접 경쟁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프리스비는 애플스토어의 사세 확장 조짐이 있던 3년 전부터 중소형 도시 점포와 쇼핑몰을 중심으로 출점해왔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