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너, 에멀전, 크림은 100개 소량생산도 가능합니다. 개발 의뢰서에 용량과 피부타입, 향, 사용감, 기능성, 제품특성, 미첨가 원재료를 상세히 기입해주시면 45일 내에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국내 한 화장품 전문 중소 ODM 업체 관계자)
개인이 공장 없이도 원하는 화장품을 위탁 생산해 파는 ‘화장품책임판매업자’ 수가 올 들어서만 5000개 넘게 증가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소비자의 취향이 세분화 되고 이커머스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개인이 물건을 팔기 쉬워진 덕분이다. 소량생산을 해주는 중소 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도 많아졌다.
1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책임판매업자’ 수는 작년 말 기준 2만2628개로 전년 대비 14.5% 늘었다.
올 들어 허가를 받은 건수는 5333건에 달했는데 작년 같은 기간(2632건)의 두배로 역대 최대 규모다.
화장품책임판매업은 제조·수입한 화장품을 유통·판매하는 사업자를 뜻한다. 화장품을 직접 만드는 ‘화장품제조업’과 달리 위탁 생산하거나 수입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화장품제조업체는 제조시설을 갖춰야 하지만 화장품책임판매업은 일정기준을 충족하면 등록 허가를 받을 수 있어 진입장벽이 낮다.
일례로 품질관리 및 책임판매 후 안전관리에 관한 기준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두어야 하는데 화장품 제조나 품질관련 관련 업무에 2년 이상 종사한 사람이면 된다.
◇ K뷰티 신화 ‘3CE’ 대박나며 부상...MZ 소비성향과도 맞아
화장품책임판매업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1세대 온라인쇼핑몰 스타일난다의 화장품 브랜드 3CE가 이른바 대박을 치면서다.
김소희 전 스타일난다 대표는 2009년 화장품 ODM 전문업체 코스맥스(192820)와 계약을 맺고 3CE를 선보였다.
주요 브랜드에 없는 다채로운 색조 제품이 국내와 중국에서 인기를 끌며 회사 매출이 2014년 1000억원을 돌파하는 데 기여했다.
2018년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로레알이 스타일난다를 4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것도 본업인 의류가 아닌 3CE의 인기 덕분이었다.
3CE의 성공 이후 유튜버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 유명인들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많아졌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가 핵심 소비층으로 떠오른 것도 화장품 ODM 업계에는 호재가 됐다.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익숙하게 사용해온 이들은 ‘화장품은 백화점, 가두점에서 직접 보고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전 세대와 달리 온라인에서 제품을 보고 구입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X세대(1965~1979년생)를 부모로 둔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의 경우 유명 브랜드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특징도 있다.
이들은 한국에 수입되는 해외 브랜드를 활발하게 소비하던 부모와 생활하면서 각종 브랜드 제품을 흔하게 보고 입으면서 자랐다. ‘유명해야 특별하다’는 인식이 없다.
이 때문에 대기업이 만들지 않아도 자기 취향에 맞으면 사는 경향이 강하다. 유명하지 않을수록 ‘나만 알고 있는 제품’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더욱 특별하게 느끼기도 한다. 1인 사업자나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가 만든 인디 브랜드도 충분히 유명해질 수 있는 환경이다.
한 화장품 ODM 업계의 관계자는 “요즘 인플루언서들은 수분부족형 지성 등 특정 피부유형을 가진 소비자를 위한 맞춤 제품이나 무기자차, 녹두 등 몸에 좋은 성분을 내세운 화장품을 트렌드에 맞춰 소량으로 빨리 생산하기 때문에 소비자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했다.
그는 “매스 마케팅(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을 하는 화장품 대기업들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라고 전했다.
◇ 코스맥스·한국콜마 ‘쉽게 화장품 생산’ 자체 플랫폼 출시
기업 고객이 많은 코스맥스와 한국콜마(161890)도 1~2년새 누구나 쉽게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 자체 플랫폼을 출시하며 인플루언서나 개인 사업자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한국콜마는 2020년 서울 내곡동 종합기술원에 ‘플래닛147′을 선보인 뒤 작년 온라인 서비스로 확대했다. 화장품 개발 과정에 대한 교육부터 내용물 제작, 패키지 개발, 브랜드 기획까지 전 분야에 걸쳐 맞춤 솔루션을 제공한다.
코스맥스도 올해 초 화장품 제조 원스톱 플랫폼 ‘코스맥스 플러스’를 내놨다. 코스맥스 플러스에 접속해 단계별 설문으로 구성된 의뢰서를 접수하면 전세계 700여명의 코스맥스 연구원들과 함께 제품 기획부터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