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브랜드 ‘미샤’를 창업했던 서영필 전 에이블씨엔씨(078520) 회장이 화장품 사업에 복귀해 화제다.

업계에선 서 대표가 매각 당시 체결했던 ‘경업(競業·영업상 경쟁) 금지’ 조항의 유효기간인 5년이 지나자 다시 화장품 업계로 복귀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서 대표는 지난 6월 화장품 브랜드 ‘바이옴 액티베이트(BIOME ACTIVATE)’를 출범하고 자사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품을 판매 중이다. 브랜드명은 ‘피부 생태계를 활성화한다’는 뜻 담았다. 에센스, 앰플, 멀티밤 스틱, 마스크팩, 선블록 등이 출시됐다.

서영필 전 에이블씨엔씨 회장. /조선DB

서 대표는 국내에 ‘로드숍 화장품’ 시장을 개척한 인물이다. 피죤 연구원 출신인 그는 2002년 3300원짜리 화장품 미샤를 선보인 후 2년 만에 매출 1000억원대 브랜드로 키웠다.

2012년에는 단일 브랜드로 매출 4500억원대를 거두며 아모레퍼시픽(090430), LG생활건강(051900)에 이어 업계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서 회장은 로드숍 화장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경쟁이 심화하자 2017년 자신의 보유한 지분 전량(25.5%)을 사모펀드 IMM 프라이빗에쿼티(PE)에 1880억원에 매각하고 화장품 업계를 떠났다.

유통업계를 떠났던 서 대표의 소식이 다시 들린 건 지난해 가죽 가방 브랜드 ‘시니피에’를 출시하면서다. 미샤 창업 전 잠시 몸담았던 가방 업계에서의 이력을 살려 창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를 연상시키는 디자인과 국내 생산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배우 서지혜를 모델로 기용해 활발한 스타 마케팅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인지도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바이옴 액티베이트의 비타민 C 앰플. /바이옴 액티베이트

이어 올해 신규 화장품을 내놓으며 화장품 업계에 컴백했다. 업계에선 서 대표가 매각 당시 체결했던 ‘경업 금지’ 기간인 5년이 지나자 다시 화장품 업계로 복귀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신규 화장품은 제품력과 착한 가격을 내세웠다. 소비자 가격대는 2만~3만원대지만, 출범 기념으로 ‘20년 전 가격’인 3200~78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마치 미샤 출범 초기를 연상케 한다. 실제 회사 구성원 중 미샤 출범 초기 함께 했던 멤버 십 여명이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관련 서 대표는 지난 7월 소셜미디어(SNS)의 브랜드 계정에 “화장품 업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고 회사까지 매각한 사람이 다시 화장품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라며 “국내에서 운영되는 화장품 브랜드가 2만여 개인데 선택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화장품 시장에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출범 취지를 밝혔다.

그는 “제품력과 가격의 기준을 생각하다 보니 미샤를 처음 시작했던 그때와 마음이 닮았더라”며 “국내 화장품 시장에 새로운 가치 기준을 제시하고 유효한 의미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으로 새 브랜드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먼저 트렌드 변화로 국내 화장품 업계, 특히 가성비를 앞세운 브랜드들이 위축된 상황이라 확실한 콘셉트가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그래픽=이은현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의 경우 작년 매출이 2657억원으로, 출범 초에 비해 크게 축소됐다. 2019년 550개던 매장도 현재 300여 개로 쪼그라들었다. 한때 매출 1조원을 넘었던 이니스프리 역시 작년 매출이 3000억원대, 6000억원대까지 갔던 더페이스샵의 매출도 반토막이 났다.

일각에선 에이블씨엔씨의 대주주인 IMM PE의 엑시트 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에이블씨엔씨 주가는 전날 1.78% 하락한 553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IMM PE가 2017년 서 대표 보유 지분 25.5%를 주당 4만3636원에 인수한 것을 고려하면 크게 하락했다.

당시 주가는 2만8000원 수준이었으나, IMM PE는 50%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 총 1882억원을 투입했다. 이후 지분 매입과 유상증자 등을 통해 현재의 지분(59.2%)을 취득하기 위해 투입한 비용만 총 4000억원이다.

그러나 인수 후 에이블씨엔씨의 주가와 실적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인수 당시(2017년) 3733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2629억원으로 30%가 줄었고, 112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24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국내 저가 화장품 시장이 몰락하고 코로나19까지 겹치자 회사의 상황이 악화한 것이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IMM PE 측은 올해 하반기 인수금융 만료 시기를 맞아 매각을 전제로 채무 재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시장에선 IMM PE가 에이블씨엔씨를 되팔기 전 서 대표가 비슷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매각을 더 어렵게 만든 형국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로드숍 화장품’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인물인 만큼 또 다른 개척 정신을 발휘할 거란 기대에서다.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서 대표가 달라진 시장 상황에 맞춰 로드숍이 아닌 온라인 중심으로 판매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서 대표가 운영하는 동안은 미샤가 잘 됐었기 때문에 사업수완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