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해외 화장품 대기업과 광고 문제로 분쟁 중인 청년 스타트업에 위법 여부와 무관하게 광고 중단을 요구해 논란이 되고 있다.
화장품 관련 규정 담당 주체로서 중재 역할을 맡아야 할 정부 당국이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국내 중소기업에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11일 법조 및 유통업계에 따르면 명문스터디는 지난 5월 식약처의 지방청인 서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서울식약청)이 화장품법 위반 혐의로 수사 의뢰한 건에 대해 서울지방검찰청으로부터 불기소 처분을 통보 받았다. 함께 의뢰한 2건 역시 경찰의 불송치 결정으로 일단락 됐다.
해당 건은 이 회사가 지난해 8월 소셜미디어(SNS)에 게재한 비교 광고를 두고 서울식약청이 '시정지시' 절차도 없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서울식약청이 문제 삼은 광고는 명문스터디가 로레알그룹 소유 브랜드인 '스킨 수티컬즈'의 유명 항산화 세럼과 유사한 제품을 개발해 ▲양사의 제품명 ▲핵심 성분 비율 ▲가격을 비교한 내용이다.
명문스터디는 스킨 수티컬즈 제품의 핵심 성분 중 비타민 C와 페룰산, pH농도를 높이고 가격은 3분의 1로 낮춘 제품을 개발했다고 광고했다. 이 광고는 자사 인스타그램 계정과 클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에 게시됐다.
이 업체는 로레알 완제품을 사용한 스킨 수티컬즈의 자체 논문을 그대로 인용, 자사의 성분 함유 비율이 더 높아 효과적이라고 소개했다. 이 광고에는 "함량, 성분, 기술, 객관적 데이터로 비교해달라" "화장품은 감성이 아닙니다" 등의 문구가 담겼다.
◇ "합법적 정보 비교"vs"비방 광고"...관련 지침은 '모호'
로레알 한국지사인 엘오케이(유)는 같은 달 이 광고가 ▲로레알을 비방하고 ▲로레알이 연구해 내놓은 논문을 자의적·악의적으로 인용했다며 광고 중지를 요청했다. 또 식약처와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비교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에 따르면, 비교 광고는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비교 대상 및 기준(수치 등)을 명확히 기재"하되 "다른 사업자의 상품 이미지를 훼손하는" 비방은 금지하고 있다.
다만 '비방' 여부를 따질 구체적인 조항은 없다. 예시로 ▲극단적인 실험을 근거로 경쟁 상품에 결함이 있는 듯 표시하거나 ▲유사한 발음 등으로 어느 업체인지 알게 한 뒤 객관적 근거 없이 품질을 문제 삼는 경우를 든 정도다.
즉, 현행법상 스킨 수티컬즈 제품명과 성분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비교한 건 위법이 아니다. 명문스터디 측은 "소비자의 알 권리에 근거한 사실 적시"라며 비방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로레알 측은 "제품의 용량, 성분 구성, 함량과 비율 배합 등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수치만 단편 비교해 당사 제품이 가격 대비 효능이 약하다는 부정적 암시를 노출했다"며 비방 광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 식약처 "위법 아니지만 비방처럼 보일 수도...광고 내려라"...위법 혐의 인정 문서에 서명 요구
그런데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식약청 백모 주무관이 점검 과정에서 비교 광고와 무관한 '위법 혐의 인정' 문서를 만들고, 명문스터디에 서명을 요구한 사실이 조선비즈 취재 결과 드러났다.
조선비즈가 단독으로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 문서에 서명할 경우 '광고정지 3개월'로 일단락하고, 그렇지 않으면 수사 의뢰를 진행하겠다는 말도 나왔다.
해당 주무관은 이 과정에서 "비교 자체를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오히려 업체명과 데이터를 정확히 써야 한다"면서도 "경쟁사 비방으로 보일 우려가 있으니 비교 광고는 안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또 "(로레알의) 문제 제기나 소비자 민원 등이 계속되면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비교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건 위법이 아니지만, 비방으로 해석될 수 있으니 광고를 내리라는 논리다.
식약청이 문제 삼은 부분은 화장품법 시행규칙 위반 혐의 관련 3건이다. 광고에 '노화 방지', '자외선 보호 효과' 등의 표현을 써 소비자가 의약품 및 유기농 화장품으로 오인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분쟁의 핵심인 비교 광고와는 무관한 내용이다.
◇ 시정지시도 없이 다음날 수사 의뢰...검·경 "피의사실 인정 안돼"
더 큰 문제는 서울식약청이 수사 의뢰 과정에서 내부 기준을 따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식약처가 발행한 '2022 바이오생약국 소관 제조·유통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의도적이지 않거나 법령의 무지로 인한 1회성 위반의 경우, 시정지시 및 시정여부 확인 후 종결처리해야 한다.
그런데도 서울식약청은 명문스터디 측에 범법 인정 서명을 요구한 이튿날 서울관악경찰서에 곧바로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경찰은 "피의자가 게시한 표현이 식약처 고시에 규정된 금지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 역시 "고발인의 주장만으로 피의사실을 인정하기 어렵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식약청 측은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주무관이 현재 근무하지 않고 있다"며 해당 직원 부재로 당시 상황에 대해 정확한 확인이 어렵다며 답변을 피했다. 백모 주무관은 지난해 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비즈는 후임자와 접촉하기 위해 수 차례에 걸쳐 담당 부서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식약청은 "담당자가 휴가중 또는 부재중"이라며 답변하지 않았다.
로레알 측은 서울식약청이 해당업체를 경찰에 수사의뢰한 후 무혐의를 받은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로레알 한국지사 관계자는 "당사의 오랜 연구 성과 중 유리한 수치만 단순 비교해 우리 제품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점이 명백한 비방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광고 중지를 요청한 것"이라며 "수사 의뢰 결과에 대해서는 (조선비즈 취재 전까지) 알지 못했고, 이후 명문스터디에 대해 추가 조치를 취한 바도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