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중구 푸마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이나영 대표이사, 푸마의 시그니처 제품인 집업 트레이닝복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박상훈 기자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두 가지입니다. 꿈꾸는 걸 멈추지 마세요.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그걸 딛고 일어날 힘을 기르세요."

푸마코리아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된 이나영(50) 대표이사는 리더를 꿈꾸는 젊은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로레알과 리복, 아디다스의 국내 및 글로벌 지사를 거친 이 대표는 2020년 푸마코리아에 합류해 영업과 마케팅을 총괄하다 지난 4월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남성 중심의 스포츠 의류·용품 업계에서 여성이 글로벌 매니저가 된 것은 전세계에서도 이례적이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 푸마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이 대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여성들의 새로운 리더십이 빛을 발하고 있다"라며 "공정성과 투명성, 유연함"을 여성 리더의 장점으로 꼽았다.

최근 유통업계에선 푸마코리아 외에도 한국P&G, 한국맥도날드 등이 40대 여성 CEO를 선임해 화제를 모았다.

이 대표의 미션은 푸마코리아를 정상 궤도에 올리는 것이다. 독일에 본사를 둔 스포츠 의류·용품 브랜드 푸마는 미국에서 나이키, 아디다스에 이어 3위를 점한 브랜드다.

그러나 한국에선 입지가 부족해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에서 푸마는 이랜드가 1994년부터 라이선스 브랜드로 운영하다가 2008년 직진출로 전환했다.

그는 "시대정신이라는 푸마의 정체성과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한국의 문화를 조합해 2024년까지 매출 성장률을 30%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대표이사 취임을 축하한다. 첫 여성 CEO로서 소회가 궁금하다.

"푸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시대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글로벌 중심에서 로컬 중심으로 기업 체질을 바꾸고 있다. 그 임무를 수행할 기회를 준 푸마글로벌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가 현지 인력에게, 그것도 여성에게 리더 자리를 내주는 경우는 드물다. 푸마 전사적으로도 이는 첫 사례이자 하나의 도전이다."

국내 유통업계에 여성 리더의 활약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여성 리더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코로나19를 겪으며 여성 리더들이 지닌 공정성과 투명성, 유연한 태도 등이 장점으로 부각된 것 같다. 재택근무와 비대면 회의 등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하면서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율성과 창의성을 활성화하는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워킹맘들의 한계가 사라졌고, 여성 리더들이 활약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24일 오후 푸마코리아 본사에서 이나영 대표이사가 자사의 대표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박상훈 기자

여성 리더들 가운데 유독 마케터 출신 CEO가 많은데.

"유통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엔 내 땅(매장)에 제품을 놓고 팔면 됐지만, 지금은 소비자들에게 '왜 우리 브랜드를 경험하고 사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을 제시해야 한다. 마케팅 환경도 달라졌다. 각종 소셜미디어(SNS)가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의 니즈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이전에는 브랜드가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면 됐지만, 지금은 각각의 소비자가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소통과 유연함으로 브랜드 경험을 전하는 게 중요해진 만큼 이에 강점을 가진 마케터를 선호하는 것 같다."

푸마는 어떤 브랜드인가. 업계에서의 위치는.

"가장 큰 스포츠 시장인 미국에서 나이키, 아디다스에 이어 3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푸마는 코로나19 위기감이 컸던 지난해 기록적인 성과를 냈다. 푸마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68억1000만 유로(약 9조2636억원)의 매출을 거뒀는데, 이는 전년 대비 30%가량 성장한 수치다.

푸마는 2017년부터 래퍼 제이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락네이션과 협업해 왔고, 2020년엔 제이지를 농구 부문 크리이에티브 디렉터로 영입하며 농구 사업에 재진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NBA 유망주 라멜로 볼과 손잡고 이름을 딴 '라멜로 슈즈(MB.01)'를 선보였는데, 발매 후 3주간 나이키 조던보다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조던을 이긴 브랜드는 처음이었다.

중단했던 러닝 사업에 재투자한 것도 매출 증가 요인이다. 러닝 사업은 미국 보스턴에 사업부를 두고 최근 5년간 기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축구 부문은 해외 명문 축구단을 비롯해 네이마르 등 유명 선수들을 후원하며 자리를 잡았다. 골프 부문은 코브라 골프를 적극적으로 육성 중이다."

푸마코리아의 방향성은.

"미국 푸마의 성공은 단기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시대정신'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10년 간의 프로젝트가 결실을 본 것이다. 신임 대표로서 조급한 마음도 있지만, 푸마코리아 역시 장기적인 안목으로 성장을 이끌어갈 방침이다.

브랜드가 반등하기 위해서는 브랜드에 대한 투자와 소비자에 대한 이해, 시간 등 3가지가 필요하다. 글로벌에서 거두고 있는 높은 성과에 'K-컬처'라는 로컬 자산을 접목하는 방향으로 성장 전략을 짜는 중이다. 내후년쯤부터 성과가 날 것이라고 본다."

푸마가 NBA 루키 라멜로 볼과 함께 선보인 신발 'MB.01', 발매 후 나이키의 조던의 매출을 넘어설 만큼 관심을 끌었다. /푸마

현지화 전략은 어떻게 짜고 있나.

"한국 소비자들은 다양한 SNS를 통해 정보를 빠르게 습득한다. 단순 가격 비교를 떠나 제품 자체가 지닌 기능성과 스타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에 한국 시장을 위한 맞춤형 전략을 짜고 있다. 의류의 경우 50%가량을 국내에서 기획·생산하고 있고, 마케팅은 수원 삼성 축구팀 후원 등을 필두로 프로·아마추어 스포츠팀들과 활발하게 협력할 방침이다.

푸마코리아가 주축이 돼 국내 콘텐츠를 활용한 글로벌 캠페인도 선보일 예정이다. BTS, 오징어게임, 기생충 등 한류의 세계적인 성공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본사에서도 한국의 자산을 활용해 아시아 시장을 리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BTS의 신인 시절 가능성을 보고 모델로 발탁한 브랜드도 푸마였다."

다양한 글로벌 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현재의 자리에 오기까지 어려웠던 점은?

"리복코리아 마케팅 담당 이사로 일하던 2014년 남성용 운동화 '이지톤'을 출시해 성공한 공을 인정받아 글로벌 지사에서 2년간 근무했다. 막상 가보니 동양인 여성 디렉터는 내가 유일했다. 남성 중심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걸, 결국 진심은 통한다는 걸 배웠다. 그때의 경험이 리더십의 변화를 가져왔다."

CEO를 꿈꾸는 젊은 여성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딱 두 가지다. 절대 꿈꾸는 걸 멈추지 마라. 그리고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그걸 딛고 일어날 힘을 길러라. 취미 활동이나 요가 등 좋아하는 일을 하며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한다. 나의 경우 여행을 가거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전 페이스북 CEO 셰릴 샌드버그를 좋아해 그가 쓴 '린인(Lean in)'을 여러 번 읽었다. 그는 책에서 C클래스 여성이 적은 원인으로 '남성들은 자신만만(Overconfident)한데, 여성들은 자심감이 결여(Lack of confidence)된 경향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비즈니스 세계에선 겸손함이 좋아 보이지 않으니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향후 목표는.

"푸마의 슬로건이 '포에버 패스터(Forever Faster)'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앞서가는 스포츠 브랜드가 되겠다는 의미다. 시대정신을 가진 브랜드로서 시장과 유통을 빠르게 이해해 혁신해 갈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2024년까지 30% 이상 매출 성장을 목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