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건 세상 만들기–모두를 위한 비거니즘 안내서’를 쓴 벨기에 비건 운동가 토바이어스 리나르트는 “고통받는 동물의 수를 줄이고,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 비건 운동의 목적”이라고 정의했다. ‘비건’은 육류나 계란, 우유 등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의미하는 단어였지만, 최근에는 식습관을 넘어 패션, 뷰티, 여행 등 삶의 전반에서 ‘동물 보호의 가치’를 실현하는 의미로 발전했다. 이를 반영한 철학이자 신념인 ‘비거니즘(veganism)’확산과 함께 수요와 소비가 증가하고, 다양한 산업군에서도 이를 주목하면서 비건이 이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다. 비건 라이프스타일은 시대정신이 되는 ‘공존’의 가치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 수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비건 라이프스타일의 다양한 양상과 이유, 미래 전망과 기업이 나아갈 길을 조망해봤다. [편집자주]
“‘동물을 위해 비건이 되자’라는 메시지는 ‘어떤 이유로든 일단 줄여라’는 메시지와 함께 활용해야 한다.”
벨기에 출신 비건 운동가 토바이어스 리나르트(Tobias Leenaert)는 책 ‘비건 세상 만들기-모두를 위한 비거니즘 안내서’에서 이렇게 썼다. ‘100% 비건’만을 인정하는 것이 비건 운동의 옳은 방향일까. 그는 이 질문에 “98% 비건도 비건”이라고 답한다. 더 많은 사람이 실제 비거니즘(veganism·채식주의를 넘어 삶의 전반에서 동물에 대한 착취를 거부하는 철학이자 삶의 방식)을 실천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실용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리나르트는 “변화를 요구할 때, 변화의 이유를 제시할 때는 실용적이어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비건으로) 변화가 쉬운 환경을 만들고, 더 유연한 비거니즘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리나르트는 벨기에 비영리단체 ‘윤리적 채식 대안(EVA)’ 공동 창립자이자 전 소장이다. EVA는 벨기에 중앙 정부의 구조 기금을 받은 첫 비건 단체로 알려져 있다. 독일에서 출발한 글로벌 비건 식품 비영리단체 ‘프로베지 인터내셔널(Proveg International)’ 공동 창립자이기도 한 그는 ‘비건 세상 만들기’를 위한 다양한 연설과 교육 활동에 나서고 있다. 프로베지 인터내셔널은 2040년까지 동물 소비 50% 감소를 목표로 한다. ‘이코노미조선’은 최근 리나르트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비거니즘과 비건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비건이 삶 전반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과거 비건은 주로 식품에 적용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동물의 가죽, 털 등을 소재로 만든 의류를 입지 않고, 동물실험을 한 제품들을 피하고, 동물이 사용되는 스포츠나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
‘비건 세상’을 지향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비거니즘을 정의하면.
”’비건 세상’이란 동물이 인간에게 고통받거나 무차별적으로 도살당하지 않으며, 인간과 동물 서로에게 이로운 몇몇 관계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형태의 동물 이용이 사라진 세상이다. 고통받는 동물의 수를 줄이고,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 비건 운동의 목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동물성 제품을 피하고 채식을 실천하는 행동 자체가 비거니즘이라고 생각한다. 비거니즘은 동물이 인간이 사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동물이 음식으로 가공될 때 많은 고통을 받는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이나 환경을 위해 비건 생활을 실천하기도 하지만, 비건이 되는 것은 주로 이런 윤리적 이유 때문이다.”
비거니즘이 주목받는 이유가 뭘까.
”비거니즘은 동물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동물보호에 대한 관심은 계속 커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도 10년 전보다 동물보호와 지속 가능성에 대해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국민의 식습관과 동물성 제품이 환경과 공중보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단순 유행으로 그치지는 않을까.
”확실한 것은 비거니즘은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비거니즘은 채식에 대한 철학이나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비거니즘은 앞으로 더 확산할 것이다. 동물 복지, 환경 문제, 건강 등 비거니즘과 관련한 이슈들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비건 운동에는 실용주의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비건의 수는 많지 않지만 계속 늘어나고 있다. 또한 비건을 시도하는 이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플렉시테리언(flexible+vegeterian·간헐적 채식주의자)은 비건 제품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변화를 가져온다. 이를테면 다수의 채식 지향인은 소수의 비건보다 더 많은 비건 제품을 소비한다. 식품 기업들은 이런 수요에 대응해 동물성 제품 판매량 감소분을 대체하기 위해, 또는 미래를 위한 투자로 관련 신제품을 개발하게 된다. 실제로 캐나다 대체육 생산 기업 ‘가딘(Gardin)’의 이브르 포트빈 대표는 ‘플렉시테리언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열쇠이고, 우리의 가장 큰 고객이다. 비건은 아직 소수이지만, 플렉시테리언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건 제품의 안전성이나 가격 적절성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다양한 비건 제품이 있고, 이 중 어떤 제품들은 일반 제품보다 지속 가능하고 건강에 이롭다. 사실 비건 관련 산업은 이미 존재하지만, 최근에서야 많은 자본이 유입되고 있는 비교적 새로운 기술 산업으로 볼 수 있다. 신기술을 (연구개발을) 반복할수록 더 발전한다. 이런 기술을 기반으로 생산한 대체품들은 동물성 제품을 사용했을 때보다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사람이 사는 동안 자연에 미친 영향을 토지 면적으로 환산한 수치)을 감소시킬 것이다. 아직 모든 비건 제품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관련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기업들이 비거니즘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득과 인구가 증가하면서 동물성 제품의 수요는 앞으로도 여전히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대안을 찾아야 하고 기업도 그에 동참해야 한다. 동물 복지, 환경 문제 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비건 제품이 많아질수록 비거니즘은 확산할 것이다. 또 동물성 제품 생산이나 육식에 얽힌 문제(탄소 배출, 가격 인상 등)와 관련한 규제나 비용 문제가 악화하면 결국 동물성 제품을 생산하던 기업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제품군을 다양화하기 위해서라도 식물 기반 소재를 연구개발해야 한다. 이미 콩이나 다른 곡류 등 식물성 소재를 활용한 대체육에 투자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언리미트’ ‘올가니카’ ‘다나그린’ ‘셀미트’ 등 한국의 관련 스타트업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고, 국제적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또 풀무원, 농심, 오뚜기, 신세계, 현대백화점, SK, 한화 등 대기업들도 비건 관련 사업에 나서고 있다.”
비건 사업에 도전하는 기업들에 조언하면.
”비건 제품을 생산하고 있거나 이를 고민하는 기업들은 반드시 ‘극단적 채식주의자’ 개념의 비건을 위해서만 제품을 개발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극단적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식물 기반 제품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플렉시테리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편의성, 건강, 취향의 다양성, 맛 등이 있다. 또 기업들은 반드시 새로운 제품을 만들 필요는 없다. 이미 소비되고 있는 제품에서 한 가지, 또는 몇 가지 재료를 빼거나 대체해 비건 제품으로 만들 수 있다. 이를테면 크래커에 사용하는 소고기 성분을 제거하면 비건은 물론, 비건이 아닌 소비자의 관심도 끌 수 있다. 일부 기업들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유기농 재료를 사용해 건강에 좋고 공정무역 인증을 받아 윤리적 측면에서도 뛰어나며 가격도 저렴한 비건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품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모든 기준에서 완벽함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기업이 이윤을 남기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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