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NAVER(035420))의 리셀(resell·고가 한정판 스니커즈 등을 높은 가격에 되파는 것)전문 플랫폼 크림(KREAM)이 무신사에서 판매한 수입 디자이너 브랜드 티셔츠가 정품과 다르다고 주장하며 촉발된 가품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요 명품 브랜드와 직거래를 못하는 국내 플랫폼이 2차, 3차 수입업체를 통해 제품을 구입하면서 유통구조가 복잡해져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작 감정 권한을 가진 브랜드가 뒷짐을 지고 물러나 있고, 국내 감정업체들이 주로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주요 브랜드를 주로 다뤄와 판단에 참고할 데이터가 부족한 측면도 있다.
2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명품을 판매하는 무신사, 머스트잇, 발란, 트렌비 등 온라인 플랫폼은 주요 브랜드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는다. 브랜드와 총판 계약을 맺은 유럽 부띠끄(1차 도매업체)에서 제품을 사입하거나, 이 부띠끄와 거래하는 에이전시, 혹은 국내외 병행수입 업체를 통해 물건을 들여오고 있다.
수퍼 갑(甲)인 명품 브랜드가 자사 제품을 일정 수량 이상 판매할 여력이 되는 도매상에만 물량을 주기 때문이다. 국내 온라인 플랫폼이 일반 의류 브랜드를 취급하듯 미리 일정수량을 선주문하거나, 주문이 들어온 만큼 구매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게 불가능하다.
유럽 부띠끄는 현지에 소규모 판매처를 두고 알음알음 영업을 해 이들을 거래처로 뚫기도 쉽지 않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40개 이상의 유럽 부띠끄와 직계약을 맺고 있는 명품 플랫폼 구하다의 윤재섭 대표는 "직접 현지에 가서 설득하고 그들의 페인포인트(pain point·고충)를 해결해주지 않는 이상 직계약이 힘들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플랫폼이 유럽 부띠끄와 계약을 맺은 3차, 4차 국내외 도매상을 통해 물건을 확보한다. 이처럼 유통과정이 복잡해지는 과정에서 가품이 끼어들 여지가 많아진다. 국내 병행수입 업체의 한 관계자는 "작정하고 가품을 판매하는 사람보다 자신도 모르게 가품 판매업체가 된 경우를 많이 봤다"고 전했다.
◇ 명품 플랫폼 3사, 외부 셀러 통해 판매...100% 정품 보장 불가능
국내 빅3 명품 플랫폼으로 꼽히는 머스트잇, 발란, 트렌비의 작년 합산 거래액은 1조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명품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보고 사야 한다는 생각에 구애 받지 않는 10~30대 이용자들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3사가 작년 하반기 김희애(트렌비), 주지훈(머스트잇), 김혜수(발란) 등 유명 배우를 TV 광고 모델로 내세운 것도 도움이 됐다.
머스트잇은 상품 대부분을 병행수입 업체를 입점시키는 오픈마켓 방식으로 판다. 발란은 병행수입과 해외 부띠끄 사입을 병행한다. 트렌비는 60% 이상을 해외 지사에서 직접 구매해 국내로 배송하고 나머지는 브랜드와 계약한 공식 유통사나 기업형 병행수입 업체를 통해 물량을 확보해 판다.
유통 과정에 병행수입 업체가 끼어있는 만큼 100% 정품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병행수입 업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물건을 확보했는지까지는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진·가품 여부를 확실하게 알려면 이 병행수입 업체가 어디서 제품을 구입했는지, 그 제품 공급처는 어디서 물건을 확보했는지, 1차 도매상은 브랜드와 정식 계약을 맺고 있는지 추적해야 하는데 유통 단계가 늘어질수록 파악이 어렵다.
3사는 자체 명품 검수팀이 제품의 진·가품 여부를 꼼꼼히 살피하고, 명품이 위조품으로 판정날 경우 최대 200% 보장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 정품 인증 권한 가진 브랜드는 뒷짐...전문업체는 에루샤 쏠림
가품 논란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해당 브랜드가 정품 인증을 해주는 것이지만 어느 브랜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정식 판매처가 아닌 곳에서 제품을 구입하는 행위를 권장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신사도 가품 논란이 제기된 티셔츠와 관련해 미국 브랜드 피어오브갓 에센셜 측에 직접 정품 여부를 문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도 소비자들이 샤넬 등을 구입한 뒤 가품 논란을 제기할 때마다 본사에 확인을 요청하지만 비협조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명품 플랫폼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외부 감정업체는 사설업체인 한국명품감정원(감정원)이다. 이 회사는 2019년 설립된 신생업체로 10여명 안팎의 직원들이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정원이 정품이라는 소견을 밝힌다고 해서 실제 정품임이 100% 보장되는 건 아니다.
국내 명품 시장의 주축인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위주로 감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한계도 있다. 주요 브랜드보다 가격대가 낮고 덜 유명한 브랜드는 감정을 맡겨도 판단이 불가능하다. 무신사가 맡긴 피스오브갓 에센셜에 대해서도 감정원은 "데이터 부족으로 가품이라 확정적으로 감정할 수 있는 상품은 발견되지 않는다"며 판정 불가 의견을 밝혔다.
가방에 비해 의류 제품은 진·가품 판단이 더욱 어려운 측면도 있다. 가방은 가죽이나 질감 차이가 크지만 의류는 제품 태그 위치나 글씨체, 봉제 방식 등을 보고 감정을 하는데 일부 브랜드는 같은 제품이라도 생산지나 생산시기에 따라 다르게 제작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칫 QC(Quality control·품질 관리) 문제를 가지고 제품을 가품으로 몰아갈 우려가 있다.
크림과 무신사의 신경전을 두고 업계에선 양대 리셀 플랫폼 간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 된 것이라고 본다. 지난 2020년 리셀 시장에 진출한 크림이 작년 기준 연간 4000억원의 거래액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2위인 무신사의 솔드아웃이 추격하고 있다.
고가 한정판 제품의 개인 간 거래를 중개하는 리셀 플랫폼의 핵심 경쟁력은 진·가품 검수 능력이다. 판매자가 플랫폼에 판매하고자 하는 제품을 맡기면, 플랫폼이 검수한 뒤 구매자와 연결해 준다. 무신사가 가품을 취급한 사실이 드러나면 플랫폼 신뢰도가 급락해 점유율이 하락할 수 있다. 무신사가 강경 대응을 불사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