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업체들의 고(高)할인율 공세에 밀려 군마트(PX) 입찰전에서 고배를 마시던 아모레퍼시픽(090430)이 신규 계약을 따낸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업체 간 상품 가격 격차가 큰 크림이나 세럼 부문에서 아모레퍼시픽이 신규 납품 계약을 체결한 것은 2018년 이후 4년 만이다. 군 당국이 '꼼수상품' 걸러내기에 나선 덕이다.

아모레퍼시픽으로선 중국 시장 침체와 가두매장 매출 감소로 경영 실적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수익성은 낮지만, 안정적인 매출처를 확보하게 됐다. 특히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장녀인 서민정씨가 2대 주주로 있는 이니스프리는 재고 물량 해소와 실적 개선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노릴 수 있게 됐다.

그래픽=이은현

국군복지단이 최근 납품업체에 공지한 '2022년 군마트 신규 입찰 결과'에 따르면 올해 신규 계약 화장품 23개 중 아모레퍼시픽의 제품이 6개 포함됐다.

품목은 ▲아이오페 히아루로닉 크림과 이니스프리의 ▲진저허니크림 ▲꽃송이버섯 바이탈세럼 ▲꽃송이버섯 바이탈크림 ▲안티에이징세럼 선스크린 ▲한란 핸드크림 등이다. 아모레퍼시픽과 이니스프리는 현재 납품용 제품에 '군마트용'임을 기재하는 작업과 함께 납품을 위한 추가 생산에 돌입한 상태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번 PX 입찰전에 70~80%대 정가 대비 할인율을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는 낮지 않은 할인율이지만 PX 입점을 희망하는 업체들이 90% 이상의 고할인율을 제시해온 것을 고려하면 비교적 합리적인 할인율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몇 년간 군납 신규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던 LG생활건강(051900)도 올해 비욘드 브랜드 보디로션을 1개 납품하게 됐다.

화장품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두 회사는 PX 입찰전이 할인율 경쟁으로 변질되면서 신규 계약 수주에 어려움을 겪었다. 상품 간 가격 격차가 크지 않은 선크림이나 핸드크림류는 유명 브랜드 제품이 선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크림류는 시중 판매가가 수십만원대라고 호도한 상품들이 대거 낙찰됐다.

한 화장품 대기업 관계자는 "2020년 진행된 입찰전에선 화장품류 평균 낙찰 할인율이 90%에 육박할 정도로 할인율 인플레이션이 심해졌다"고 했다.

일부 업체는 시중 가격 뻥튀기를 통해 입찰전에 나설 수 있지만 대기업 제품의 경우 브랜드 가치 유지와 고객 인지도 때문에 가격을 부풀려서 출시하는 게 불가능했고, 입찰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군납 시장의 비정상적인 관행이 본지 보도와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부패예방추진단도 '꼼수 납품' 사례를 적발하고 군 당국에 제도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국군복지단은 지난 10일 '군마트 위탁판매 물품 선정제도 개선 공고'를 통해 "시장가격 부풀리기, 판매처 허위 제출 등의 시장 교란행위가 만연하다"면서 ▲경쟁과열 품목 집중관리제도 ▲시장가격 교란행위 제품 퇴출 기준 강화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입찰 경쟁에서 할인율 반영 비율을 줄이고, 시중 거래 실적과 판매처 수에 따른 배점을 상향 조정해 시중에서 정상적으로 판매되는 상품을 PX에서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PX 판매는 저가 입찰로 수익성은 낮지만 매출 신장 효과가 상당하다. 국군복지단에 따르면 2020년 군마트의 전체 매출은 1조2071억원, 이 중 화장품 매출은 1731억원을 기록했다. 인기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는 군납시장에서만 연간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한 군납업자는 "군 마트는 입찰 경쟁이 치열하고, 판매실적이 저조할 경우 1년 만에 퇴출되는 등 리스크가 있지만 매출만큼은 확실한 시장"이라면서 "판매대금 지급도 빨라 현금 흐름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