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는 혁신적인 미래 패션 소재입니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버려지는 원단이 없어 친환경적이죠. RVN은 첨단 기술을 사용해 미래지향적인 패션을 선보이는 '패션계의 테슬라'로 성장시킬 계획입니다."
단단한 어깨와 뾰족한 칼라, 빳빳한 테일러드 재킷일 거라 생각하고 만져보니 부드러운 니트의 질감이 느껴진다. 안감도 심지도 없이 니트만으로 재킷의 정교한 입체감을 완성한 이는 패션 디자이너 테드 킴(Ted Kim·46)이다.
테드 킴은 한국 출신으로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수석 졸업하고 막스마라, 도나카란, 마이클 코어스를 거쳐 31세의 나이에 앤클라인 뉴욕 디자인 부문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2012년부터는 RVN이라는 이름으로 니트를 기반으로 한 자체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전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를 비롯해 오프라 윈프리, 비욘세, 기네스 펠트로, 테일러 스위프트 등 유명인들이 즐겨 입어 '뉴욕을 사로잡은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최근엔 한국 가수 제시가 입어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테드 킴을 만났다. 그는 최근 생산기지를 한국으로 옮기고 사업 확장 준비에 한창이다. 기존엔 자체 브랜드 RVN만 운영했으나, 내년부터는 니트 제조자 개발 생산(ODM)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인터뷰엔 그의 여동생이자 사업 동반자인 김수미 직기그룹 대표가 함께 했다.
유수의 패션 브랜드를 거쳐 RVN을 출범했다.
-(테드)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게 오랜 꿈이었다. 도나카렌, 마이클 코어스 등에서 그들이 다양한 영역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며 브랜딩에 욕심을 갖게 됐다. RVN은 혁명을 뜻하는 영어 레볼루션(Revolution)의 약자로, 미래지향적이고 혁신적인 패션을 선보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뉴욕의 하이 패션 브랜드에서 습득한 시스템을 도입해 회사 내에 소규모 공장을 두고 장인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옷을 만든다.
미국에서 브랜드를 운영하다 한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겨 사업을 확대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해 달라.
-(수미) 10여 년 간 미국에서 사업을 해왔지만, 미국의 니트 생산 인프라가 1960~70년대 해외로 이전해 디자인을 발전시키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탈리아, 중국 등 우리의 디자인을 구현할 생산처를 찾다가 한국으로 와 지난해 3월 직기그룹을 설립했다. 한국은 작지만 다양한 기술력을 갖춘 니트 공장이 많다. 한국의 니트 생산 인프라를 활용해 글로벌 럭셔리 패션 브랜드를 대상으로 한 니트 ODM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뉴욕의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와 내년 가을·겨울 제품 생산을 논의 중이다.
니트를 주제로 옷을 선보인다. 니트에 심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테드) 처음 RVN을 출범했을 땐 다양한 소재로 종합 컬렉션을 선보였다. 하지만 팝 가수 비욘세가 슈퍼볼 무대 리허설에서 RVN의 레깅스를 착용하면서 니트 제품이 먼저 주목받았고, 니만 마커스, 노드스트롬 등 유명 백화점에서도 니트를 주문하면서 다음 시즌부터 니트로 사업을 전환했다.
-(수미) 니트는 장점이 많은 소재다. 옷감부터 디자인할 수 있어 옷을 100% 컨트롤할 수 있고, 우븐(Woven·씨실과 날실을 교차해 짠 직물)으로 만든 옷보다 제작공정이 단순해 시간과 인건비도 적게 든다. 우븐으로 바지 한 벌을 만들면 70개의 공정이 필요한데, 니트로 만들면 앞·뒷면을 짜 옆선과 다리 부분만 봉제하면 된다. 장식이 많은 옷을 만들 때도 장식을 따로 만들어 달 필요 없이, 편직 과정에서 장식까지 한 번에 짜면 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전 세계에 물류 대란이 일어났는데, 니트는 옷을 만들어 보낼 필요 없이 편직 기계가 있는 곳에 프로그램만 보내면 세계 어디서든 똑같은 옷을 만들 수 있다. 편직만 잘하면 버려지는 원단도 발생하지 않으니,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가디건은 재활용 원사가 86% 사용됐다.
RVN의 니트가 기존 니트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테드) 대개 니트 하면 양모로 만든 부드러운 풀오버(스웨터)를 떠올리지만, 우리는 3D 니팅 기술(Knitting Technology)을 이용해 입체적이고 정교한 의류를 만든다. 각 잡힌 재킷과 코트, 소매가 봉긋한 원피스 등 니트로 만들기 어렵다고 여기는 옷들을 선보인다. 미국 보그 에디터 버지니아 스미스는 우리 옷을 보고 "신세대 미쏘니*"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니트 가문)
비욘세, 테일러 스위프트 등 유명인이 RVN의 옷을 입었다. 셀러브리티들에게 호응을 얻게 된 비결이 궁금하다.
-(수미) 우리가 마케팅을 잘한다고 하는데, 돈을 주고 유명인에게 옷을 입힌 적은 없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감을 갖고 일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옷을 만들었고, 옷을 잘 아는 셀러브리티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 준 것 같다. 미국에서 주 고객층이 변호사와 의사였다. 잘 갖춰 입은 옷 같지만, 니트로 만들어 편하기 때문에 어디서든 고민 없이 입을 수 있다는 반응을 얻었다.
앞으로의 목표는?
-(테드) 한국의 니트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꼽히는 이탈리아보다 훨씬 월등하다. 한국에서 내가 원하는 세계 최고의 니트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니트 의류를 시작으로 액세서리, 신발 등으로 브랜드를 확장할 계획이다.
-(수미) 최근 K팝과 영화 등 한국의 콘텐츠가 해외에서 각광 받으면서 한국 패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에서 만든 시스템을 우리가 잘 아는 미국 시장에 적용해 세계 최대 니트 ODM 및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로 성장할 계획이다. 내년 매출 목표는 100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