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여파로 글로벌 명품시장이 12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명품시장은 올 들어서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모든 브랜드가 성장을 만끽하는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조선은 성장하는 명품 브랜드를 관통하는 4대 트렌드로 아시아, 디지털,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리세일(재판매)을 꼽았다. ‘뉴럭셔리 소비 시대’ 트렌드에 올라탈 수 없다면, 지속가능한 명품 브랜드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편집자주]

“(명품) 리세일(재판매) 시장은 지금보다 10배, 20배, 아니 30배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성장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명품 리세일 과정을 단순하고 투명하게 만들 때마다 신규 고객이 늘고 있습니다. 회사가 사입한 중고명품 제품이 100% 팔리는 게 이를 증명합니다.”

찰스 고라 리백 창업자 겸 CEO. 파리경영대(HEC Paris) 재무학 석사, 하버드대 경영대 MBA, 전 중국 슈나이더 일렉트릭 재무 애널리스트, 전 골드만삭스 M&A 애널리스트. 리백

인공지능(AI) 기반의 미국 명품 리세일 플랫폼 운영 업체 리백(Rebag)의 찰스 고라(Charles Gorra)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8월 24일 ‘이코노미조선’과 서면 인터뷰에서 중고명품 시장의 미래를 이처럼 낙관했다. 리백은 지난해 매출이 2019년보다 50%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2014년 창업한 고라 CEO는 “자동차는 중고 제품 가격을 비교해보고 구매하는데, 차량 가격보다 더 비싼 명품백의 경우 명확한 (중고) 시장가격이 없는 게 이상해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리백은 명품 리세일 시장의 후발주자다. 미국의 중고나라 스레드업(ThredUp), 중고명품 거래 사이트 더리얼리얼(The Real Real), 포시마크(Poshmark)보다 출발이 늦었지만, 차별화에 승부를 걸었다. 다른 중고명품 리세일 업체와 달리 판매자(고객)가 내놓은 제품을 직접 사입(仕入)해 플랫폼에 올린다. 중고명품 판매자 입장에서는 물건이 팔릴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여기에 리백은 중고명품의 정확한 시장가격을 알려주겠다며 창업 후 5년간 명품 버전의 ‘켈리블루북(KBB·자동차 가격 인증 사이트)’인 ‘클레어’ 개발에 힘썼다. 중고명품 가격 투명성을 높인 AI 기반의 클레어가 나온 2019년 리백의 중고명품 판매자가 세 배 늘었다.

리백 애플리케이션(앱)에서 판매 버튼을 누르고, 핸드백 사진을 찍으니 3초도 안 되어 ‘클레어 AI(인공지능)’가 가방 모델을 인지한 모습. 안상희 기자

리백은 지난해 4월 패스트컴퍼니가 뽑은 ‘혁신적인 스타일 기업 10개 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누적 투자금은 6800만달러(약 813억2800만원)에 달한다. 다음은 고라 CEO와 일문일답.

명품 리세일 시장이 왜 성장하나

”밀레니얼 세대(1981~96년생)와 Z 세대 (1997~2010년생)가 중심이 되어 명품 리세일 시장을 크게 키우고 있다. 공유경제를 경험하며 자란 이들 세대는 중고품에 대한 생각이 기존 세대와 다르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는 명품 리세일이 ‘지속 가능한 유통’에 동참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발, 옷과 달리 가방, 시계, 보석과 같은 액세서리는 중고품이라도 사이즈가 정확하고 제품 설명이 명확해 리세일 시장에서 취급하기 쉽다. 물론 그만큼 신제품과 중고품을 비교하기도 쉽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영향은 없었나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패션 산업 전반을 뒤흔들었음에도 지난해 명품 리세일 산업은 경이로운 성장을 보였다. 팬데믹 기간 리백은 소비자들이 투자자본수익률(ROI)이 높은 명품을 구매하는 것을 목격했다. 특히 ROI가 높은 ‘샤넬 클래식 플랩백’과 ‘반 클리프 앤 아펠 알함브라’ 제품 구매가 이어졌다. 소비자들이 팬데믹으로 돈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오랜 시간 지닐 수 있는 상품에 관심을 돌렸다. 올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봉쇄 조치가 완화되면서 명품 리세일 시장에 보복소비까지 일어났다. 리백은 지난해 5월 2019년 블랙프라이데이(매년 11월 열리는 연례 대규모 쇼핑 이벤트)와 사이버먼데이(추수감사절 연휴 뒤 첫 월요일 온라인쇼핑 행사) 성수기보다 더 좋은 실적을 냈으며, 이후에도 성장 중이다.”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은

”디지털 영업팀은 고객들에게 어울리는 제품을 추천하는 스타일링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고객이 꿈꾸는 다음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순환경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올해 7월에는 제품 판매와 구매가 한 번의 거래로 가능한 ‘클레어 트레이드’를 선보였다. 처음에는 명품 핸드백 리세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보석, 액세서리, 시계로 확장했다. 매출의 70~80%는 온라인에서 나오지만, 오프라인 매장도 현재 9개에서 중기적으로 30개로 늘릴 계획이다.”

리백의 고객은 어떤 사람들인가

”크게 두 가지 유형의 고객이 있다. 우선 1차 시장인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한 ‘판매자’가 있다. 이제 막 나온 최상의 제품을 선호하는 이들은 신뢰할 수 있는 리세일 플랫폼으로 리백을 이용한다. 이들은 언제든 새 제품에 대한 지출을 늘릴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명품 업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또 다른 고객 유형으로는 명품 세계를 이제 막 접한 ‘구매자’가 있다. 그들에게 리백은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을 처음 접하는 곳이다. 이제 막 명품을 알아가는 단계에 있는 이들은 다양한 스타일과 브랜드를 시도하는 걸 좋아한다. 구매자 중에는 단종된 제품이나 한정판 상품을 찾는 명품 쇼핑 베테랑도 있다. 젊은 세대 중심으로 중고 쇼핑과 순환경제를 중시하는 움직임과 함께 최근에는 판매자이자 구매자인 고객이 늘고 있다. 리백이 7월 한 번의 거래로 제품을 사고팔 수 있는 ‘클레어 트레이드’를 선보인 이유다.”

리백에서 인기 있는 명품 브랜드, 제품은

”소비자는 항상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제품에 관심이 많다. ‘에르메스 버킨백’ ‘샤넬 클래식 플랩백’처럼 우리가 이미 많이 알고 있는 고전적인 제품이 대표적이다.”

명품 리세일 시장은 현재 어떤 단계에 있나

”명품 리세일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지만, 아직 성장 초기 단계다. 명품 브랜드의 극히 일부 제품만 리세일 시장에 나와 있다. 리백이 종합 명품 리세일 평가 지수 클레어를 만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리백이 개발한 소프트웨어 클레어는 50개 이상 브랜드의 제품 1만5000여 개를 검토한다. 클레어는 리백이 해당 품목을 사들이기 위해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을 자동으로 산정해 소비자에게 제시한다.”

리백

명품 리세일 시장의 미래는”향후 백화점과 명품 업체 스스로 리세일 사업을 도입할 것이라고 본다. 백화점과 명품 업체는 이미 일부 리세일 업체와 협업하거나 리세일 제품을 사입하면서 중고명품 시장에 발 담그고 있다. 명품 업체들이 리세일 시장에 직진출하면서 리백의 기술을 적용하면,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상품을 12개월까지 사용 후 반납하면 구입 가격의 70~80% 이상을 적립금으로 돌려주는 교환 서비스 ‘리백 인피니티’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브랜드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도움 될 것이다. 언젠가는 모든 명품 업체가 리세일 혁명에 동참해, 기반 기술을 개발해놓은 리백과 협업하기를 희망한다. 보다 지속 가능한 명품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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