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산업계에 전방위적인 변화가 닥친 가운데, 국내 패션기업 2세들의 경영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20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창업주 2세가 경영 전면으로 뛰어든 국내 주요 패션기업들의 실적이 엇갈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자상거래(이커머스)가 급성장하는 시류에 얼마나 잘 적응했는지와 브랜드 관리 능력이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 패션 기업인 휠라코리아는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창업주인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의 장남 윤근창 휠라코리아 대표 겸 휠라홀딩스(081660) 대표는 지난 2018년 부사장에서 승진했다. 윤 대표는 골프용품기업 아쿠쉬네트와 국내 패션브랜드 휠라코리아를 두 축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휠라의 '러닝 퍼포먼스' 제품 연출 이미지. /휠라코리아 제공

휠라 브랜드는 사이클화·러닝화 등 가격대가 높은 퍼포먼스화(정통 스포츠화) 상품군을 강화하는 한편, 브랜드를 다각화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초엔 미국 스니커즈 ‘케즈(Keds)’의 라이선스 브랜드로 의류 사업을 시작했다.

실적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휠라홀딩스의 올해 1분기 매출은 988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늘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각각 200~300% 증가했다.

휠라코리아 관계자는 “포스트 코로나(코로나 이후) 시대를 대비해 브랜드를 다각화하는 한편, 휠라는 퍼포먼스 제품군을 강화해 브랜드를 재정비하는 중”이라면서 “휠라와 다른 스타일의 신규 브랜드를 통해 다양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를 공략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세예스24그룹은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의 차남인 김익환 대표가 한세실업(105630)을, 막내 딸인 김지원 대표가 한세엠케이와 한세드림을 이끌고 있다.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업체인 한세실업은 매출 등 실적이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한세엠케이와 한세드림은 내수시장 분위기와 패션업계의 변화 등 외부 요인에 따라 실적이 변동되는 편이다.

아동용 의류 브랜드가 주력인 한세드림은 최근 직원들에게 분기 성과급을 지급할 정도로 분위기가 개선됐다. ‘모이몰른’, ‘컬리수’, ‘플레이키즈프로’, ‘리바이스키즈’ 등 브랜드의 1분기 매출이 호조를 보인 결과다. 반면, 앤듀·버커루 등 성인용 캐주얼 의류 브랜드와 골프복 브랜드 LPGA 등을 운영하는 한세엠케이(069640)는 전년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영업손실과 순손실을 봤다. 다만 적자 폭은 지난해 1분기보다 줄었다.

한세드림 관계자는 “올해 1분기에는 1학기 등교가 부분적으로 확대되면서 ‘신학기 특수’로 지갑을 여는 부모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브랜드 다각화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도 있다.

패션그룹 세정은 지난 2019년 취임한 박이라 세정과미래 사장이 이끌고 있다. 창업주인 박순호 회장의 셋째 딸인 그는 세정씨씨알(CCR) 대표직도 겸직한다.

세정그룹의 주축인 세정은 4년째 적자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남성복 인디안, 여성복 올리비아로렌, 보석 디디에 두보 등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20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영업손실 408억원, 순손실 843억원을 냈다.

세정그룹의 패션 편집숍 웰메이드에 입점한 여성복 브랜드 '데일리스트'의 2021년 여름 제품 화보. /세정그룹 제공

세정그룹은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세정과미래가 보유한 2개 브랜드 중 캐주얼 브랜드인 니(NII)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매각주관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를 통해 인수의향서(LOI)를 받는 단계다. 그룹 전체적으로는 올리비아로렌과 편집숍(여러 브랜드를 한데 모아 판매하는 매장) 웰메이드, 주얼리 브랜드인 디디에 두보와 일리앤, 일상 생활 브랜드인 동춘상회를 집중 육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형지그룹은 코로나19로 2세 경영에 제동이 걸렸다. 이 회사는 창업주의 장녀인 최혜원 씨가 지난 2016년부터 형지I&C(011080)의 대표를 맡아 경영 일선에 뛰어든 상태였고, 올해 6월에는 장남인 준호씨가 계열사 까스텔바작의 대표로 선임됐다.

그러나 매출이 악화하면서 창업주인 최병오 회장이 다시 경영 최전선으로 복귀했다. 패션그룹형지와 형지엘리트(093240)의 대표직을 겸임하던 최병오 회장은 지난달 형지에스콰이아의 대표 자리에 올랐다. 코로나19 상황에 책임 경영에 나서겠다는 이유다.

현재 형지그룹은 주요 계열사들이 고전하는 중이다. 패션그룹형지는 지난해 영업적자로 전환했고, 순손실 규모도 430여억원으로 확대됐다. 남성복 브랜드 예작과 본, 여성복 브랜드 캐리스노트 등을 보유한 형지I&C는 작년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순손실을 냈다.

세정그룹과 형지의 부진에는 오프라인 가맹점 중심으로 제품을 유통해온 기업 특성상 온라인 대응이 늦어진 점이 악재로 작용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유통시장의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Z세대)가 선호할 만한 브랜드를 새로 발굴하지 못한 탓도 있다. 세정그룹이 매각을 결정한 니는 1999년 출시된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