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그룹(아모레G(002790))이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있는 계열사를 잇달아 정리하고 있다. 이를 두고 올 연말 시행되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개정에 대비한 행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조선일보DB

아모레퍼시픽(090430)은 지난 21일 이사회에서 그룹 비상장 계열사인 에스트라를 흡수 합병하는 안건을 결의했다. 에스트라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지분 100%를 보유한 곳으로, 이번 합병에 따라 아모레퍼시픽의 사업부로 전환된다.

아모레퍼시픽은 에스트라 합병을 통해 더마화장품(약국에서 판매하는 화장품)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건기식 제품의 생산과 판매 기능을 통합해 경영 효율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업계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이처럼 계열사 정리에 나선 실질적인 이유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한다.

에스트라는 아모레퍼시픽그룹 내 계열사 중 일감 몰아주기 비중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1982년 옛 태평양제약으로 설립된 에스트라는 아토베리어 등 더마화장품 브랜드와 병의원 전문 뷰티 브랜드를 중심으로 사업하는 회사다. 또 아모레퍼시픽의 여러 건강기능식품 제품을 주문자 상표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에스트라는 2013년 아모레퍼시픽그룹 100% 완전자회사로 편입됐는데, 이듬해인 2014년 360억 원 규모였던 내부거래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지난 2019년 817억 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총 매출 대비 비중도 45.5%에서 73.5%로 늘었다. 지난해 내부거래 규모는 668억원(67.6%)으로 전년 대비로는 줄었지만, 여전히 70%에 달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총수일가가 지분 30% 이상 보유한 계열사’에서 ’20% 이상 보유한 계열사'로 확대됐다. 그 계열사가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자회사도 포함된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지분 49.9%를 보유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은 대부분 계열사 지분을 50% 이상 보유하고 있다. 올해 5월 말 기준 이에 해당되는 기업은 이니스프리(81.82%), 에뛰드(80.48%), 아모스프로페셔널(100%), 에스쁘아(80.48%), 에스트라(100%), 퍼시픽패키지(100%), 농업회사법인오설록농장(98.38%), 코스비전(100%), 오설록(100%) 등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날 OEM과 제조사 개발생산(ODM) 방식으로 화장품을 생산하는 계열사 코스비전의 지분 전량도 인수하기로 했다. 역시 아모레퍼시픽그룹이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코스비전은 2006년 8월 설립됐으며, 2011년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인수하면서 100% 완전자회사로 편입됐다. 이후 코스비전은 사실상 매출 전체를 계열사와의 내부거래에 의존해 왔다. 2019년 이 회사의 매출은 1758억7847만 원을 기록했는데, 아모레퍼시픽그룹 내부 계열사와 거래를 통해 올린 매출이 1758억4835만 원이다. 그룹 내부거래에 매출 의존도가 100%인 셈이다.

앞서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 3월에도 화장품 용기 제조 계열사 퍼시픽글라스 지분 100% 중 60%를 프랑스 화장품용기 제조사 베르상스에 매각했다. 퍼시픽글라스도 지난해 매출 724억 원 중 547억 원(75.5%)이 내부거래로부터 나왔다.

다만 이런 관측에 대해 아모레퍼시픽그룹 관계자는 “이번 합병이나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은 경영상 판단에 의한 것일 뿐 일감 몰아주기 이슈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