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총수들이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을 잇달아 찾았다. 국내외 고액 자산가와 컬렉터가 한자리에 모이는 프리즈는 미술품을 사고파는 행사를 넘어 유통·럭셔리 업계의 주요 사교·마케팅 무대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들은 공식 후원에 나서는 한편 자체 전시, VIP 행사를 진행하며 큰손 고객 잡기에 나섰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프리즈 서울에 정용진 신세계(004170)그룹 회장, 정유경 ㈜신세계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090430)그룹 회장 등이 찾았다. 정유경 회장의 딸 아이돌 애니(문서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 미래기획그룹장 등 오너가 3세들도 행사장을 찾았다.
프리즈는 2003년 영국에서 시작한 세계적 아트페어로, 2022년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서울을 개최지로 선택했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국내 최대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도 프리즈 서울과 함께 전날 개막했다. 프리즈 서울은 5일까지, 키아프 서울은 6일까지 열린다.
유통업계에서 프리즈를 주목하는 건 관람객의 높은 구매력 때문이다. 수천만~수억 원대 작품을 사는 미술 애호가 상당수는 백화점 최상위 VIP이자 명품, 고급 화장품의 핵심 고객층과 맞물린다. 국내외 큰손들이 한곳에 모이는 만큼 기업들 입장에선 기존 VIP와 관계를 다지고 잠재 고객을 확보할 기회인 셈이다.
특히 올해는 신세계그룹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신세계는 올해부터 국내 유통기업 최초로 프리즈 서울의 헤드라인 파트너로 참여해 2030년까지 5년간 협력한다. 헤드라인 파트너는 행사 운영과 주요 프로그램에 폭넓게 참여하는 핵심 후원사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파트너십 체결 과정 전반을 직접 챙기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그룹은 행사장에 '신세계 전용 라운지'를 마련하고, 파리와 부르고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프랑스 작가 폴 콕스의 특별전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가 수년간 매일 저녁 명상을 기록한 'Diary' 연작 336점을 한자리에 모아 세계 최초로 공개한다.
행사장 밖에서도 프리즈와 연계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날부터 6일까지 스타필드 코엑스몰 별마당도서관에서 사진작가 구본창의 '달항아리' 연작 등을 전시하고,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와 피아니스트 박재홍의 클래식 공연도 연다. 프리즈 티켓이 없는 일반 방문객도 관람할 수 있다.
신세계는 1963년 신세계 갤러리를 시작으로 전시와 작가 협업 등 아트 마케팅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 열린 아트 공모전, 조선호텔앤리조트의 히든 아트 투어 등 계열사 전반으로 관련 활동을 넓히고 있다.
CJ그룹은 프리즈를 케이(K)라이프스타일을 알리는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전날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국내외 문화·예술계 인사 약 400명을 초청해 'CJ 나이트 인 셀러브레이션 오브 프리즈 서울'을 열었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주도한 행사에는 이선호 미래기획그룹장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대표와 경영진이 참석했다.
행사장에는 K팝, K푸드, K뷰티 전용 공간을 마련했다. CJ ENM, CJ제일제당, CJ올리브영 등 그룹이 보유한 콘텐츠와 상품을 한데 모아 참석자들에게 소개했다. CJ가 프리즈 서울을 계기로 이런 행사를 여는 것은 2022년, 2024년에 이어 세 번째다.
현대백화점은 2022년부터 5년 연속 키아프 서울 공식 후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역시 행사장에서 VIP 전용 라운지를 운영한다. 최근 명품 브랜드 유치와 상품 판매만으로 경쟁사와 차별화하기 어려워지면서 백화점들은 점포 내 갤러리 운영과 작품 전시·판매를 넘어 대형 아트페어 후원으로 마케팅 범위를 확장하는 추세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역시 프리즈 기간 자체 전시와 아트 프로젝트를 잇달아 선보인다. 행사 전후 서울 주요 지역에 마련한 브랜드 공간으로 주요 고객을 초청하는 브랜드가 많다. 로에베는 이날부터 서울 강남구 까사 로에베에서 박종진 작가의 작품 20여 점을 선보이는 특별전을 연다. 프리즈 공식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전시로 VIP 대상 행사도 진행한다.
MCM은 프리즈 위크 서울 공식 파트너로 참여해 플래그십 매장인 청담동 MCM HAUS에서 김창옥 작가의 전시를 열었다. 소통 강사로 활동하는 김창옥이 미술 작가로 여는 첫 개인전이다. 생로랑도 매년 프리즈 시즌 전후로 아트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패션업계에서도 프리즈 마케팅이 활발하다. 휠라는 올해 프리즈 서울 공식 파트너로 참여해 브랜드의 컬러 헤리티지를 예술로 재해석한 '휠라 꼴로레(FILA COLORE)' 전시를 선보였다. 대표 스니커즈 '에샤페 실버문'에서 착안한 '실버'를 국내외 작가 3인이 작품으로 풀어냈다.
올해로 5회째인 프리즈 서울에는 30개국·지역에서 133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25회째인 키아프에는 18개국 175개 갤러리가 부스를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