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을 기반으로 몸집을 키운 패션 브랜드들이 다시 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 패션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한 상황에서도 무신사와 세터(SATUR)를 비롯한 패션 업체들은 오히려 오프라인 매장을 빠르게 늘리고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명동·성수 등 핵심 상권의 매출이 커진 데다, 온라인에서는 제공하기 어려운 브랜드 경험을 오프라인에서 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울 중구 명동의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 모습. /뉴스1

28일 삼정KPMG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패션·의류 소매판매액은 86조1591억원으로 전년보다 0.8%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온라인을 기반으로 성장한 브랜드들의 오프라인 사업은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무신사 자체 브랜드(PB) 무신사 스탠다드의 지난 1분기 오프라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6%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전국 무신사 매장 방문객은 923만명으로 98% 늘었습니다. 무신사는 올해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을 전국 50개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온라인에서 인지도를 쌓은 대명화학 계열 세터는 오프라인이 핵심 성장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세터의 지난해 매출은 1100억원으로 전년보다 83% 증가했습니다. 전체 매출에서 오프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71%로 1년 새 18%포인트 높아졌고, 직영점 매출은 131% 늘었습니다.

지난해 새로 문을 연 20개 매장의 매출 기여액만 약 130억원입니다. 명동점은 월평균 약 10억원, 성수점은 약 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고객을 확보한 뒤 오프라인으로 접점을 넓히는 전략이 실제 매출 성장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비슷한 움직임은 다른 온라인 기반 브랜드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인지도를 높인 이미스(EMIS)는 지난 7월 홍대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 데 이어 이달 21일 제주에 첫 매장을 냈습니다. 온라인 팬덤을 기반으로 성장한 더바넷(The Barnnet)도 지난달 제주 애월에 성수·명동에 이은 세 번째 독립 플래그십을 열었습니다. 온라인 유통에서 출발한 코오롱FnC의 24/7시리즈 역시 지난 6월 성수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였습니다.

지난 3월 오픈한 세터하우스 북촌 매장 내부./세터 제공

◇외국인 늘자 명동·성수가 '글로벌 쇼룸'으로

패션업계가 오프라인에 다시 투자하는 배경에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도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7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약 1280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3% 증가했습니다.

패션업체들은 외국인이 몰리는 명동과 성수 등을 해외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무신사는 오는 9월 명동에 두 번째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을 열 예정입니다. 세터 역시 명동뿐 아니라 성수·광장시장·북촌 등 외국인이 많이 찾는 지역을 중심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해외에 직접 매장을 내지 않고도 서울 핵심 상권에서 외국인 고객의 반응을 확인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이 국내 판매점인 동시에 해외 진출을 위한 일종의 '글로벌 쇼룸'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상품과 가격을 손쉽게 비교할 수 있는 만큼 같은 상품을 진열해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를 매장까지 불러들이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세터는 지난 3월 문을 연 '세터하우스 북촌'에 달항아리와 향낭, 도자기 업체 이도와 협업한 상품 등을 배치해 북촌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매장에 녹였습니다. LF의 던스트는 제주 애월에 바다와 음악, 빈티지 가구를 결합한 첫 플래그십 '더 오션'을 열었습니다. 말본골프도 북촌에서는 한옥의 분위기를 살린 '말본 가옥'을, 성수에서는 골프에 아트·음악·패션을 결합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비용 부담은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서울 상가 임대가격지수는 전 분기보다 0.46% 상승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과 젊은 소비자가 몰리는 명동은 3.19%, 뚝섬은 2.55% 뛰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패션업체들이 핵심 상권에 매장을 내는 것은 한 공간이 여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상품을 팔아 매출을 내는 동시에 브랜드를 알리는 광고판이 되고, 온라인 고객에게 브랜드를 체험하게 하는 공간이자 해외 소비자를 만나는 쇼룸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패션업계의 오프라인 경쟁은 이제 단순히 매장을 얼마나 많이 내느냐에서 어디에, 어떤 매장을 내느냐로 바뀌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고객을 모은 브랜드들이 높은 임대료를 감수하면서 다시 거리로 나오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