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홈플러스가 전국 67개 점포의 문을 다시 열었다. 지난달 13일 전면 임시 휴업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이다. 영업이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서울회생법원이 정한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은 다음 달 4일. 그때까지 인수자를 찾지 못하면 계획안은 부결되고 파산 수순을 밟는다. 업계에선 인수자 없는 독자 생존 가능성을 낮게 본다. 사실상 3주짜리 '시한부 영업'인 셈이다.
1997년 대구에서 출발한 홈플러스는 29년간 주인이 세 번 바뀌었다. 첫 발을 뗀 삼성은 재미를 못 봤고, 영국 유통 업체 테스코는 크게 남기고 떠났다. 현 주인인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는 '승자의 저주'에 빠져 10년 넘게 엑시트(자금 회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생사 갈림길에 놓인 홈플러스라는 데 이견이 없다.
◇ IMF에 넘기고, 분식회계에 되팔리고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모태는 1997년 출범한 삼성물산 유통 부문의 할인점 사업이다. 그해 9월 대구에 1호점을 열었지만 두 달 만에 외환위기(IMF)가 닥치면서 그룹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1999년 삼성물산이 영국 테스코에 경영권과 지분 49%를 넘기며 합작 법인으로 바뀌었고, 2011년 잔여 지분마저 매각하면서 테스코의 100% 자회사가 됐다.
테스코 체제에서 홈플러스는 몸집을 키웠다. 2004년 기업형 슈퍼마켓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선보였고, 2005년 영남권 슈퍼마켓 아람마트를, 2008년에는 이랜드가 까르푸를 사들여 만든 홈에버를 2조3000억원에 각각 인수했다. 매각 직전인 2015년에는 대형마트 140여 개에 슈퍼마켓 375개, 편의점 327개를 거느렸다. 2014 회계연도 매출은 8조6000억원. 이마트에 이은 확고한 2위였다.
하지만 이 체제도 오래가지 못했다. 2014년 테스코 본사가 분식회계 스캔들에 휘말려 신용등급 강등 경고를 받자, 해외 사업 중 가장 알짜였던 한국을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당시 홈플러스는 테스코 전체 매출의 8%가량을 책임지고 있었다. 두 번의 매각 모두 홈플러스가 부실해서가 아니라 주인의 사정 때문이었다.
2015년 MBK파트너스는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규모인 7조2000억원에 홈플러스를 사들였다. 경쟁 사모펀드보다 5000억원 이상 높은 값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을 투입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인수 직전인 2014년 홈플러스의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이 연 7000억원을 넘었고, 전국 주요 도심 요충지에 자리 잡은 점포와 부지 등 부동산 자산 가치만 6조원 이상으로 추산됐기 때문이다.
◇ 자기 몸값을 스스로 갚은 회사
MBK는 홈플러스를 곧바로 사지 않았다. 특수목적법인(SPC) 한국리테일투자를 세워 홈플러스에 빵을 납품하던 자회사를 먼저 사들인 뒤, 유상증자로 키워 지주회사로 만들고 모회사인 홈플러스를 역인수했다. 절세를 위해 자회사가 모회사를 삼키는 구조를 설계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본다.
7조2000억원의 출처를 뜯어보면 구조가 더 분명해진다. MBK가 실제로 넣은 자기자본은 2조2000억원가량으로 전체의 30% 남짓이었고, 여기에도 국민연금·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싱가포르 테마섹 등 출자자의 돈이 상당 부분 포함됐다. 나머지 4조3000억원은 인수금융, 즉 빚이었다. 담보로 잡힌 것은 홈플러스 자신의 지분과 부동산이었다. 그리고 2019년 말과 2020년 2월 중간 지주사 두 곳이 홈플러스에 역합병되면서, 그 빚은 고스란히 홈플러스 장부로 내려왔다.
4조원대 빚은 갚아 나갔다. 알짜 점포를 팔고 다시 빌려 쓰는 세일앤리스백으로 20여개 점포를 처분했다. 대신 세입자가 됐다. 과거에 없던 임차료가 매년 고정비로 붙었다.
그사이 업황도 꺾였다.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전자상거래)가 급성장하며 오프라인 유통은 직격탄을 맞았다. 인수 당시 7000억원을 넘던 EBITDA는 2024년 2644억원으로 줄었고 지난해 마이너스(-756억원)로 돌아섰다. 영업이익도 2016년 3091억원에서 지난해 5464억원 손실로 뒤집혔다.
◇ "기업 매수 시 담보인정비율 등 가이드라인 정립해야"
경영난으로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는 37개 점포 문을 닫았고, 이로 인해 3500여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협력업체 미지급 물품대금만 수천억원대다. MBK 역시 엑시트에 난항을 이어가며 지분 투자 원금 2조2000억원(자기자본)을 전액 손실 처리했다는 입장이지만, 오렌지라이프, 두산공작기계, 대성산업가스 등 홈플러스를 제외한 3호 펀드 주요 투자업체는 성공적으로 매각해 펀드 자체는 6조가량을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배구조와 경영권에 대한 전문가들의 연구모임인 'C&G(Control & Governance)포럼'의 김민기 카이스트 교수는 "MBK는 인수 이후 점포 부동산 유동화 등 재무적 가치 실현에 상대적으로 무게가 실린 반면, 이커머스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는 충분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은 "기업 매수 시 현금 창출력 대비 과도한 부채를 일으키는 차입 구조에 대해, 미국의 경우처럼 금융당국이 EBITDA 대비 부채 규모나 LTV(담보인정비율) 개념의 명확한 사전 가이드라인을 정립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