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대형마트 온라인 새벽배송 추진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대형마트 새벽배송 추진 철회를 촉구하는 모습. '골목상권 사수' 팻말도 눈에 띈다./뉴스1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의 열쇠가 1000억원 규모 유통발전기금 타결로 좁혀지는 분위기다. 정부가 소상공인과의 상생을 규제 완화의 전제로 못 박은 만큼, 유통업체들이 기금 출연에 응하느냐가 법 개정 속도를 좌우하는 구조가 됐다. 업계는 지난 14년간 유통법 규제의 최대 수혜자였던 쿠팡이 참여할지 주목하고 있다.

13일 정부와 유통업계를 종합해 보면, 산업통상부는 6차 유통산업발전기본계획에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완화를 담기로 하면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출연하는 1000억원 규모 유통발전기금 조성 방안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규제 완화에 반발하는 골목상권을 달래기 위한 재원이다. 정부는 유통사와 소상공인 사이에 상생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법 개정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고, 물밑에서 양측을 각각 접촉하며 접점을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마트 규제는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문을 열지 못하게 하는 '영업시간 제한'과, 매월 이틀(통상 둘째·넷째 주 일요일)을 쉬게 하는 '의무휴업'이 두 축이다. 현재 국회 논의는 이 가운데 영업시간 제한을 겨냥한다. 14년간 잠겨 있던 새벽배송 문을 열어주되 오프라인 영업 규제는 그대로 두는 방식이다. 국회에는 관련 개정안 2건이 올라 있다.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오프라인 영업 규제는 유지하되 온라인 주문·배송에 한해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을,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안은 영업시간 제한 규정을 삭제하고 공휴일 의무휴업까지 폐지하는 내용을 각각 담았다.

공은 유통업계로 넘어왔지만 반응은 냉담하다. 대형마트 업계에선 기금 출연이 이중 부담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미 신규 점포를 열 때마다 지역 상생 명목의 기금을 내고 있는데, 새벽배송 규제를 푸는 대가로 또 한 번 비용을 떠안는 구조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새벽배송에 나서려면 물류 인프라 투자와 야간 인력 확충이 함께 따라와야 한다. 여기에 기금 부담까지 얹히면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전경. /연합뉴스

쿠팡의 참여 여부도 관심사다. 2012년 도입된 유통법 규제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만 적용됐고, 그사이 쿠팡은 시간 제한 없이 새벽배송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점했다. 국내 새벽배송 이용자 약 2000만명 가운데 쿠팡 이용자가 1500만명으로 75%를 차지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요 유통업체 26개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3% 늘었지만 업태별 명암은 뚜렷했다. 백화점이 20.1%, 편의점이 3.7% 성장하고 온라인이 8.1% 늘어난 반면, 대형마트 매출은 되레 7.3% 줄었다. SSM도 6.6% 감소했다. 온라인 사업자도 새벽배송을 하는 이상 같은 기준으로 기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 규제 풀리면 홈플러스 매각도 숨통 트일까

소상공인과의 상생 방안이 기금 협상으로 매듭지어질 경우,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 매각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홈플러스는 수도권과 광역시 도심에 대형 점포망을 보유하고 있다. 도심 내 냉장·냉동 물류 거점 확보가 신선식품 새벽배송의 최대 병목으로 꼽히는 만큼, 영업시간 규제가 풀리면 이 점포들의 가치가 새롭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잠재 인수자 입장에선 매물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는 셈이다. 홈플러스는 이날부터 전국 67개 점포의 영업을 정식으로 재개했다. 영업 정상화와 현금 창출력을 입증해 새 주인을 찾아야 하는 처지다.

다만 대형마트 규제 완화는 앞선 정부에서도 추진되다 소상공인 반발에 번번이 좌초된 바 있다. 소상공인 단체들은 이번에도 개정안 강행 시 헌법소원 청구 방침까지 밝힌 상태다. 여기에 소상공인연합회·전국상인연합회 등 주요 관련 단체장들의 임기 만료가 내년 상반기 전후로 다가온 만큼 반대 목소리는 거세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기금 규모와 배분 구조에서 접점이 나와야 법안 심사도 급물살을 탈 수 있는데, 유통업계의 협조가 키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