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례 무산됐던 롯데렌탈(089860) 매각이 3개월 만에 다시 본궤도에 오르면서 롯데그룹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롯데는 1조원대 매각 대금을 차입금 상환과 미래 성장 동력 투자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그룹 내 주요 자금줄 역할을 해온 호텔롯데의 재무 부담을 덜고, 바이오 등 신사업 투자 여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는 전날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보유한 롯데렌탈 지분 61.18%를 글로벌 사모펀드(PEF)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에 1조3105억원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주당 매각가는 5만9000원으로 지난 10일 종가(4만2800원)보다 37.9% 높다. 롯데렌탈은 전신인 KT렌탈이 2015년 롯데에 약 1조200억원에 인수된 지 11년 만에 그룹을 떠나게 됐다.
롯데렌탈 매각은 롯데가 추진해 온 주요 자산 효율화 작업 중 하나다. 앞서 롯데는 지난해 사모펀드 운용사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롯데렌탈 매각 계약을 맺었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 결합을 불허하면서 거래가 무산됐다. 어피니티가 국내 렌터카 시장 2위 업체 SK렌터카를 보유한 상황에서 1위 롯데렌탈까지 인수하면 경쟁이 제한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당시 매각 무산은 그룹 자금 운용 계획에도 변수가 됐다. 롯데는 롯데렌탈 매각으로 1조원 안팎의 자금이 확보될 것을 전제로 자금 계획을 세워왔지만 거래가 무산되면서 롯데지주, 호텔롯데 등 주요 계열사의 자금 상황을 다시 점검해야 했다. 이후 롯데는 다른 잠재 투자자들과 협의를 이어갔고, TPG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자금 운용 불확실성을 일부 해소하게 됐다.
롯데그룹의 재무 부담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 주요 계열사의 합산 차입금은 29조9330억원이다. 지주를 포함한 상장 계열사 11곳의 올해와 내년 회사채 만기 도래 규모도 3조3430억원이다. 시장에선 TPG와 매각 절차가 마무리되면 그룹의 자금 운용 여력을 확보하고, 호텔롯데의 차입 부담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호텔롯데는 그간 롯데건설과 롯데바이오로직스 등 주요 계열사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롯데바이오로직스 유상증자에 2144억원을 출자했고, 올해와 내년에 4644억원을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올해 1분기 기준 호텔롯데 총차입금은 8조6000억원을 웃돈다.
호텔롯데가 자체적으로 써야 할 돈도 적지 않다. 서울 호텔 리모델링, 미국 롯데뉴욕팰리스 부지 매입에 이어 해외 위탁 운영 사업도 확장하는 추세다. 롯데그룹 측은 "유입된 자금으로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의 재무 건전성을 개선하는 동시에 본원적 호텔 사업 확대를 위한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핵심 사업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재편
롯데는 재무 부담을 덜면서 핵심 사업 중심의 그룹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수익성이 낮거나 비주력 사업은 정리하고,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와 신사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자회사인 롯데에코월을 매각했고, 롯데케미칼도 파키스탄 법인(LCPL)을 매각하는 등 사업 재편을 이어가고 있다.
미래 성장 동력으로는 바이오 사업을 낙점하고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은 올해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 대표에 선임되며 바이오 사업 경영 전면에 나섰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송도에 바이오캠퍼스를 조성하고 있다. 호텔롯데의 재무 부담이 줄어들수록 바이오 등 신사업 투자 여력도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인공지능 전환(AX)도 그룹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핵심 과제로 꼽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달 열린 하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 회의)에서 AX를 주요 화두로 제시하고 계열사별 AI 경쟁력 강화를 주문했다. 현장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상품, 서비스, 고객 경험 등에 AI를 적용한다는 구상이다.
롯데렌탈을 인수하는 TPG는 전 세계에서 약 46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초대형 PEF다. 우버, 에어비앤비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투자했고, 현재 카카오모빌리티 2대 주주다. 거래 종결까지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승인이 남아 있지만, TPG가 현재 국내 렌터카 사업체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심사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TPG는 인수 후 잔여 지분에 대한 공개매수도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