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에만 1조원 넘는 영업적자를 낸 쿠팡의 창업자가 투자자들 앞에서 꺼낸 카드는 '대만'이었다.
쿠팡 모회사 미국 쿠팡Inc의 김범석 의장은 5일(한국시간) 열린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 모두발언의 절반 이상을 대만 새벽배송, 쿠팡이츠의 비식품 배달 확장, 일본 로켓나우 같은 신사업 설명에 썼다. 정작 이날 공시된 역대 최대 8350억원의 영업손실은 짧게 언급하고 넘어갔다. 업계에서는 수익성 지표 대신 성장 서사로 시장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했다.
쿠팡Inc는 이날 2분기 매출 13조3007억원(88억5600만달러), 영업손실 8350억원(5억5600만달러)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매출은 4%(고정환율 기준 10%)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2021년 뉴욕 증시 상장 이후 분기 기준 최대 적자다. 1분기(3545억원)를 더한 상반기 누적 영업손실은 1조1895억원이다.
◇ 김범석 "새벽배송 한국은 4년, 대만은 1년"
김 의장이 대만을 설명하며 반복해 강조한 건 '속도'였다. 그는 "한국에서 새벽배송을 출시하는 데는 물류 여정을 시작한 지 4년이 걸렸지만 대만은 불과 1년 만에 달성했다"며 "대만은 백지상태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으로, 한국에서 10년 넘게 축적한 기술과 운영 매뉴얼, 배송 '플레이북(지침서)'을 계승한 결과"라고 말했다. 현재 대만 배송 물량 대부분을 주 7일 익일배송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대만에서 쿠팡이 유일하다고도 강조했다.
한국의 성공 공식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15년 전 확보한 가장 오래된 고객군도 가입 첫해보다 거의 10배 많은 금액을 지출하고 있는데, 대만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공급망 비효율성을 해소하고 거래량이 늘면 대만의 손익 구조도 한국이 개척한 길을 따를 것"이라고 했다.
쿠팡이츠는 이미 검증된 사례로 제시했다. 김 의장은 "서비스가 포트폴리오에서 자금을 끌어 쓰는 것을 멈추고 포트폴리오에 자금을 공급하기 시작할 때 사이클이 완성된다"며 "쿠팡이츠는 그 전 과정을 거쳤다"고 평가했다. 신사업이 본업의 돈을 쓰던 단계를 지나 다른 신사업을 먹여 살리는 단계로 올라섰다는 뜻이다. 그는 "쿠팡이츠와 일본 로켓나우를 합쳐 보면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를 확보하고 있다"고도 했다.
◇ 예고된 쇼크, 시장은 한 자릿수대 성장에 주목
이런 메시지 관리가 필요했던 건 수익성보다 성장률 쪽이 더 아픈 대목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적자의 상당 부분은 예고된 일회성 비용이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과징금 4억1000만달러는 지난 6월 부과가 확정돼 시장이 이미 반영해 둔 항목이고, 실제 이를 빼면 조정 기준 영업손실은 1억4600만달러(약 2193억원)로 4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든다.
정작 시장이 주목한 건 다른 숫자였다. 회사 매출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프로덕트 커머스(로켓배송·로켓프레시·로켓그로스·마켓플레이스) 매출은 74억2500만달러로 고정환율 기준 8% 증가에 그쳤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전인 지난해 3분기 증가율(18%)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회사가 제시한 3분기 연결 매출 증가율 전망 역시 8~9%다. 하반기에도 반등은 어렵다는 뜻이다. 쿠팡Inc 주가는 4일(현지 시각) 전 거래일 대비 2.19% 상승한 16.78달러로 마감했지만, 실적 발표 후 시간 외 거래에서는 7%대 하락으로 돌아섰다.
김 의장은 이 숫자를 다른 각도에서 방어했다. 사고 기간에 떠난 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고객을 빼면 나머지 고객의 지출은 전년 대비 16% 늘어 사고 이전 수준에 근접했다는 것이다. 활성 고객은 2470만명으로 사고 직전 수준을 회복했고, 와우 멤버십 회원 수는 "사고 발생 전 수준을 넘어섰다"고도 했다. 다만 뒤집어 보면 돌아오지 않은 일부 고객이 성장률을 깎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예전 성장률을 되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 의장이 대만을 길게 설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만도 아직은 돈이 드는 쪽이다. 대만·쿠팡이츠·파페치 등이 포함된 성장사업 부문 2분기 매출은 14억3100만달러로 고정환율 기준 24% 늘었지만, 조정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손실은 2억1900만달러였다. 거랍 아난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해 이 부문 손실을 9억5000만~10억달러로 전망하며 "가장 큰 원인은 대만 리테일 사업 구축을 위한 장기 투자"라고 밝혔다.
결국 쿠팡은 국내 성장률이 꺾인 국면에서 해외에 계속 돈을 넣어야 하는 구간에 들어섰다. 당장 3분기에는 인천 물류센터 화재 손실 등 추가 일회성 비용 반영도 예고돼 있다. 아난드 CFO가 제시한 프로덕트 커머스 마진 회복 시점은 2027년 중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