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우리은행과 손잡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술 검증에 나서면서 유통업계에서도 활용 방안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쿠팡 같은 대형 유통 플랫폼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가상자산이 아니라 결제·정산 구조를 혁신할 수단으로 보고 있다. 로켓배송을 앞세워 몸집을 키운 쿠팡이 결제 인프라 경쟁력 강화에도 나섰다는 평가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최근 우리은행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기술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양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결제, 송금, 가맹점 정산, 원화와 스테이블코인 간 전환 등 필요한 기술을 실제 서비스와 동일한 환경에서 검증했다.
스테이블코인은 원화, 달러 등 법정화폐와 가치가 1대 1로 연동되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이다. 가격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과 달리 가치 변동을 최소화해 결제, 송금, 정산 등에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안착하려면 누가 발행하느냐보다 어디에서 실제 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쇼핑, 음식 배달 등 거래가 많은 쿠팡 같은 대형 유통 플랫폼이 핵심 활용처로 꼽힌다.
유통 플랫폼이 스테이블코인을 주목하는 이유는 결제·정산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어서다. 현재 전자상거래에서는 소비자가 결제한 대금이 카드사, 전자결제대행(PG), 은행 등을 거쳐 판매자에 지급된다. 이 과정에서 결제 수수료, 정산 비용이 발생할 뿐 아니라 판매자가 실제 대금을 받기까지 통상 수일이 걸린다.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이런 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결제, 정산이 이뤄지면 중간 단계를 줄여 정산 속도를 높이고 수수료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덕이다. 정산 기간이 짧아지면 판매자는 대금을 더 빨리 받을 수 있고, 플랫폼 입장에선 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쿠팡과 우리은행의 협력도 정산 구조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양사는 쿠팡이 운영하는 배달 플랫폼 쿠팡이츠 주문 결제대금이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가맹점주에게 실시간으로 정산되는 과정을 구현해 판매자의 정산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지 검증했다.
◇ 이미 배달 업계에선 정산 속도가 경쟁력
이미 배달·이커머스 업계에선 정산 속도를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사례가 많다. 신한은행이 운영하는 배달 플랫폼 '땡겨요'는 입점 점주를 대상으로 당일 정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판매대금 회전이 중요한 소상공인의 자금 운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다. 네이버도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를 대상으로 빠른 정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쿠팡은 쿠팡이츠뿐 아니라 쇼핑, 와우 멤버십, 쿠팡페이 등을 통해 대규모 결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앱·결제 데이터 분석업체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해 쿠팡과 쿠팡이츠의 결제 추정액은 77조원을 웃돈다. 거래 규모가 클수록 결제·정산 비용 절감 효과도 커지는 만큼 스테이블코인 활용 가치가 크다는 분석이다.
국내외 유통업계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편의점 체인 로손은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결제 실증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최대 배달 플랫폼 도어대시는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스템 도입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도 패션그룹 형지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시스템 구축을 위해 관련 기업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기준 마련해야
하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유통 플랫폼의 결제·정산 인프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원화와 가치 연동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시스템 오류, 해킹, 오지급 등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기준도 명확해야 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쿠팡처럼 큰 플랫폼과 은행이 금융 인프라로 긴밀하게 연결되면 플랫폼에서 개인정보 유출이나 보안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은행에 대한 신뢰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빗썸 비트코인 오지급 사태도 있었고, 은행들이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금융사고 위험에 굉장히 민감한 상황"이라며 "기술을 구현하는 것만큼 보안과 소비자 보호 체계를 갖추는 것이 상용화의 핵심 과제"라고 덧붙였다.
☞스테이블코인은
스테이블코인은 원화, 달러, 유로 등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가상자산이다. 비트코인 등 다른 가상자산보다 가치가 안정적이어서 결제, 송금, 정산 등에 활용하기 적합한 것으로 평가된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거래 비용을 줄이고 정산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미국은 달러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추진하며 시장 확대에 나선 가운데 한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위한 법제화와 발행 주체를 둘러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