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4년 만에 대형마트 새벽배송의 빗장을 풀기로 방향을 잡았지만, 정작 마트 업계의 표정은 밝지 않다. 규제가 사라져도 곧바로 쿠팡과 겨룰 채비가 돼 있지 않은 데다, 규제 완화의 대가로 1000억원대 상생기금 출연까지 거론되고 있어서다. 업계에선 "당장 경쟁력이 있는 오프라인 매장의 의무휴업부터 풀어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 규제는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전통시장·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도입됐다.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문을 열지 못하게 하는 '영업시간 제한'과 매월 이틀(통상 둘째·넷째 주 일요일)을 쉬게 하는 '의무휴업'이 두 축이다. 최근 완화 논의는 이 가운데 영업시간 제한을 겨냥한다. 영업시간 규제를 풀어 심야·새벽 시간대에도 포장과 반출, 배송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14년간 잠긴 새벽배송 문을 열겠다는 의미다.

◇ "오프라인 의무휴업부터 풀어야"

쓱닷컴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내부의 자동화 물류 시설 전경. /쓱닷컴 제공

그럼에도 대형마트가 미온적인 이유는 새벽배송 시장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어서다. 이커머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새벽배송 이용자는 약 2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쿠팡 이용자가 1500만명으로 75%를 차지한다. 2014년 로켓배송, 2018년 새벽배송을 잇따라 띄운 쿠팡이 물류 인프라에만 9조원 안팎을 투입해 전국 30개 지역에 100여개 물류센터를 깔아둔 결과다.

대형마트도 겉으로는 물류 거점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전 점포에 차량 상하차 공간과 후방 창고, 냉장·냉동 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수도권만 놓고 봐도 이마트가 72개, 롯데마트가 59개 점포를 두고 있다.

여기에 이마트는 점포 후방을 전문 물류 공간으로 개조한 PP(집품·포장)센터 100여곳을 운영한다. 하루 8만건의 주문을 처리하지만 점포 기반이라 영업시간 제한에 묶여 낮 시간대 '쓱배송'에만 쓰인다. 점포 밖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인 네오센터가 새벽배송을 맡고 있으나 경기 김포와 광주 두 곳뿐이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이마트 쓱닷컴 거래액(약 6조원) 가운데 새벽배송 비중은 8% 남짓이다. 롯데마트는 아예 새벽배송이 없다.

후발주자로서 승부처는 신선식품이 꼽힌다. 산지 소싱과 상품 구색, 콜드체인 운영 경험에서 앞선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추가 인프라 투자와 배송 차량·기사 확보, 야간 인력 투입이 모두 따라와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야간 근로에는 통상임금의 50%가 가산된다. 전담 인력을 새로 뽑으면 인건비가 주간의 1.5배, 기존 점포 인력의 연장 근로로 메우면 2배까지 뛴다. 이 시간대 배송 단가도 주간보다 30%가량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업황 자체가 어려운 상태에서 채산성이 확인되지 않은 새벽배송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긴 어렵지 않겠느냐"며 "오히려 월 2회 의무휴업 완화가 실익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의 1000억 상생기금 청구서

사진은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소상공인들이 "소상공인 다 죽는다"면서 대형마트의 온라인 새벽배송 추진을 반대하는 모습. /뉴스1

규제 완화의 조건으로 거론되는 상생기금도 부담이다. 산업통상부는 6차 유통산업발전기본계획에 영업시간 제한 완화를 담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출연하는 1000억원 규모 유통발전기금 조성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규제 완화에 반발하는 골목 상권 등 소상공인을 달래기 위한 '당근책'이다.

문제는 청구서가 먼저 온다는 점이다. 새벽배송으로 당장 매출이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는데 출연금부터 내야 하는 구조인 탓이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1000억원을 대형마트와 이커머스(쿠팡 제외) 등 유통업계가 부담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해관계가 갈리는 이커머스는 출연 자체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자인 대형마트의 규제를 풀어주기 위해 돈을 내야 하는 구조인 탓이다. 산업부 측은 "상생기금은 새벽배송 허용을 반대하는 측을 지원할 여러 방안 중 하나"라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형마트 규제 완화는 14년간 수차례 안건으로 올랐다가 내려온 사안이다. 앞선 정부에서도 규제개혁 1호 안건이었다가 소상공인 반발로 무산됐다"며 "이번엔 '쿠팡 견제'라는 명분이 붙었지만 실효가 있을지, 어떤 보완이 필요한지부터 마트·소상공인과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