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가 적법 근거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한 글로벌 빅테크 틱톡과 애플 계열사에 각각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한 사실을 23일 공개했다. 과징금은 틱톡 103억600만원, 애플 2억5200만원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DC에서 한미 조선협력센터 개소식에 참석하고,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비롯한 미 행정부·의회 주요 인사를 잇따라 만나는 날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하루 뒤인 24일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순방에 나선다.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로 부과된 역대급 과징금이 한미 갈등의 뇌관이 된 시점에 "한국은 글로벌 기업이라고 함부로 때리지도, 봐주지도 않는다"는 그림을 만들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제재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틱톡이다. 지난달 쿠팡에 부과된 과징금 6246억8100만원 가운데 2011억600만원에 해당됐던 사안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틱톡은 광고·콘텐츠 성과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며 행태정보 수집 도구를 국내 7만1000여개 기업에 배포했고, 이 도구가 설치된 타사 웹·앱에서 이용자의 클릭·구매·검색 기록 등을 수집했다. 이를 기기 식별자와 함께 회원 계정에 연계해 관심사를 추론한 뒤 맞춤형 광고에 활용했다. 국내 활성 이용자 기준 945만명분이다. 쿠팡이 '쿠팡 파트너스'를 통해 1117만명의 타사 온라인 활동 기록을 기기 식별자·회원번호에 결합해 광고 DB에 저장한 것과 판박이 수법이다. 적용 조항도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1항으로 같다.
다만 결과만 놓고 보면 격차가 커 보인다. 쿠팡의 침해 부분 과징금은 2011억600만원, 틱톡은 103억600만원으로 20배 가까이 벌어져서다. 수법도, 규모도 비슷한데 처분만 다르니 '쿠팡만 표적이 됐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대목이지만, 관련 국내 매출 차이가 크기 때문에 벌어진 일종의 착시라는 것이 개보위 입장이다. 실제 개보위는 쿠팡의 경우 파트너스 운영 목적이 이용자 유입과 이커머스 매출 증대에 있다고 보고 온라인 쇼핑 매출 전체를 기준으로 삼았다.
미국 기업인 애플에 매겨진 2억5200만원도 언뜻 '솜방망이'처럼 보인다. 애플 건은 이용자가 음성비서 '시리'를 쓸 때 수집된 음성 녹음과 이를 텍스트로 변환한 전사문을 동의 없이 서비스 개선에 이용한 사안으로, 위반 시점이 201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개인정보 보호 규정이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이관되기 전이어서 방송통신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소관이던 구 정보통신망법이 적용됐다. 게다가 시리는 무료 서비스라 관련 매출액을 산정할 수 없어 정액과징금 기준이 적용됐다. 애플에 적용된 구 정보통신망법의 정액과징금 상한은 4억원으로,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상한인 20억원보다 낮다. 위반 행위가 이미 종료됐고 애플이 조사 과정에서 전사문 활용에 선택권을 부여하는 등 스스로 시정한 점까지 감안된 것으로 알려진다.
◇ 개보위 "국내외 기업 간 차별 없다"
앞서 이달 1일 미 하원 법제사법위원회는 '한국의 차별적 공격'이라는 취지의 중간 보고서에서 쿠팡 과징금이 "더 심각한 유출을 낸 한국 기업에 부과된 벌금을 크게 상회한다"고 문제 삼았다. 백악관도 "쿠팡이 이재명 정부의 표적이 됐다"며 가세했다.
액수만 떼어 놓고 보면 쿠팡에 비해 다른 글로벌 기업들이 가벼운 처분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쿠팡만 차별한다'는 주장이 언뜻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읽히는 대목이다. 다만 뜯어보면 같은 유형의 위반에는 같은 조항과 같은 산정 방식이 적용됐고, 액수의 차이는 매출 규모와 사안의 경중에서 갈렸다는 것이 개보위 설명이다. 개보위는 보도자료에 "국내외 기업 간 차별 없이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문구를 명시했다.
이를 두고 국적을 가리지 않되 봐주지도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신호로 읽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미국 기업이라고 다 때리는 것이 아니고 사안에 따라, 경중에 맞춰서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는 신호를 보여주는 제재로 해석된다"며 "이 대통령과 김 장관의 방미 일정에 글로벌 빅테크에 대한 개보위 발표 시점이 맞물린 것도 우연으로만 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