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4년째 제자리인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판매 제도를 손질하기로 하면서 편의점 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판매 품목을 현행 11개에서 최대 20개로 늘리는 방안이 대통령 업무보고에 포함된 데다, 정부가 올해 12월까지 관련 고시를 개정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도 제시했기 때문이다.
편의점들은 야간·휴일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고 생활 밀착형 플랫폼으로서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변화를 반기고 있다. 과거에도 품목 확대가 추진됐지만 약사단체 반발로 무산된 만큼, 이번에는 실제 제도 개편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22일 보건복지부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6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현재 11개에 머물러 있는 안전상비약을 하반기 중 최대 20개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약국과 24시간 판매점이 모두 없는 지역에서는 24시간 운영하지 않는 소매점도 상비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판매점 기준도 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복지부는 국민 수요 분석과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오는 12월 안전상비의약품 지정 고시 개정을 추진한다.
안전상비의약품 제도는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 시간이나 공휴일에도 소비자가 해열진통제와 감기약 등을 구입할 수 있도록 2012년 11월 도입됐다. 약사법은 안전상비의약품을 20개 품목 이내에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도 도입 당시 해열진통제와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13개 제품이 지정됐지만 어린이용 타이레놀 2개 제품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현재 실제로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은 11개에 그친다.
편의점 업계는 품목 확대가 야간과 휴일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실제 편의점 상비약 판매는 약국이 문을 닫는 시간대에 집중돼 있다. GS25의 경우 지난해 상비약 매출 가운데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발생한 비중이 57.2%에 달했다. 일요일 매출 비중도 20.1%로 요일 가운데 가장 높았다.
상비약을 찾는 소비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CU의 지난해 상비약 매출은 전년 대비 11.2%, GS25는 13.8% 증가했다. 지난해 편의점에 공급된 안전상비의약품 규모는 511억84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해열·진통·소염제가 약 80%를 차지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상비약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소비자가 급하게 필요할 때 점포를 찾게 만드는 대표적인 생활밀착형 상품"이라며 "상비약을 사러 온 고객이 음료나 생필품 등을 함께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추가 매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판매점 지정 요건이 완화될 경우 편의점 수혜 범위는 더 넓어질 수 있다. 현재는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점포만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
정부는 약국과 24시간 편의점이 없는 농어촌·도서 지역에서는 영업시간이 짧은 편의점이나 일반 소매점도 상비약을 취급할 수 있도록 약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에서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는 편의점 가맹점에도 상비약 판매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다만 품목 확대는 복지부 고시 개정만으로 가능하지만, 24시간 영업 요건 완화는 약사법 개정과 국회 논의가 필요하다. 약사단체들은 복약지도 없이 판매 품목을 늘리면 의약품 오남용과 부작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며 공공심야약국 지원 확대가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2017~2018년 지사제와 제산제를 안전상비약에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약사 단체 반발 등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반면 소비자단체는 정부 방침을 환영하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안전상비약 판매가 단순한 편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과 소비자 선택권에 관한 문제라며 법정 한도인 20개까지 품목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협의회는 최근 성명에서 "1인 가구, 맞벌이 가구, 돌봄 부담 가구, 야간 노동자, 이동이 어려운 고령자 등은 약국 운영 시간 외에도 최소한의 의약품 접근이 절실하다"며 "안전상비의약품은 약국이 닫힌 시간과 장소에서 국민이 최소한의 의약품을 안전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생활 안전망"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