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지난달 60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은 쿠팡에 인천 물류센터 화재라는 겹악재가 닥치며 올해 실적 부담이 한층 커질 전망이다. 화재 피해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상품 재고와 물류 설비 손실에 센터 운영 중단 비용까지 더해지면 피해액이 수천억원대에 이를 가능성도 거론된다.
◇ 수천억대 피해 우려… 과징금까지 겹쳐 실적 부담 확대
20일 소방 당국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전 6시 54분쯤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32물류센터 6층에서 시작된 불은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화재 발생 50시간이 넘도록 불이 완전히 잡히지 않았으며, 화재 여파로 인근 주민에게 대피령이 내려지고 주변 학교에도 휴교가 권고됐다.
이번 화재는 공교롭게도 정종철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대표가 해당 센터를 방문한 지 사흘 만에 발생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인천31·32·41·42·43센터를 찾아 혹서기 대응 현황과 현장 안전보건 관리 상태를 점검하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인천32센터는 연면적 약 29만9000㎡, 지상 8층 규모로 2021년 전소된 경기 이천 덕평물류센터보다 면적이 두 배 이상 크다. 경량 생활용품 등을 취급하는 상온 물류센터로, 내부에는 상품과 자동화 물류 설비가 대량으로 적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덕평센터 화재 당시 쿠팡이 공시한 손실액은 약 3400억원이었다. 인천32센터는 덕평센터보다 규모가 큰 만큼 피해가 건물 전반으로 확산했다면 손해가 더 늘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직접적인 재산 피해뿐 아니라 센터 운영 중단에 따른 간접비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쿠팡은 인천32센터에서 처리할 예정이던 주문 물량을 수도권의 다른 물류센터로 이관해 배송 차질을 최소화하고 있다. 전국적인 로켓 배송 중단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센터 정상화가 늦어지면 인천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품목 부족이나 배송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
쿠팡은 이번 화재로 배송에 차질을 빚은 고객에게 1인당 5000원의 쿠팡캐시를 지급하고 있다. 보상 대상 고객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배송 지연이 장기화하거나 대상 지역이 넓어지면 관련 비용도 늘어날 수 있다.
과거 덕평센터 화재 때도 주변 센터로 물량을 분산했지만, 일부 상품이 일시 품절되고 지역에 따라 배송 정상화까지 한 달 넘게 걸렸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당시 화재 이후 2주 동안 쿠팡의 하루 평균 이용자는 945만명에서 834만명으로 110만명 이상 감소했다.
쿠팡은 이미 개인정보 유출 사태 여파로 대규모 회계 비용 부담을 안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달 쿠팡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과 법적 근거 없는 개인정보 수집 등을 이유로 과징금 6246억8100만원과 과태료 1680만원을 부과했다. 이는 쿠팡의 지난해 영업이익(약 6790억원)에 육박한다.
업계에서는 해당 과징금이 올해 2분기 실적에 반영될 경우 연간 수익성을 악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회계 원칙상 정부나 규제 기관의 과징금은 부과 결정이 내려지거나 공시된 시점이 속한 분기의 비용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 경우 쿠팡은 약 3545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쿠팡은 과거에도 과징금 선반영으로 분기 적자를 낸 전례가 있다. 쿠팡은 2024년 2분기 PB(자체 브랜드) 상품 검색 순위 조작 행위와 관련한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추정치 약 1630억원을 판매관리비에 반영했고, 당시 8개 분기 만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인천 물류센터 화재 관련 비용 역시 추후 보험금 등을 통해 일부 보전할 수 있겠지만, 회계상 손실은 올해 3분기 실적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덕평센터 화재 때도 쿠팡은 사고 발생 직후 관련 손실을 비용으로 처리했고, 약 3600억원의 보험금은 3년여가 지난 2024년 4분기에 수령했다.
◇ 덕평 화재 뒤 기준 강화했지만… 인천32센터는 적용 제외
이번 화재를 계기로 쿠팡이 2021년 덕평센터 화재 이후 내놓은 재발 방지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주목된다. 불이 난 인천32센터에서는 방화 셔터와 스프링클러가 화재 확산을 막는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스프링클러와 방화 셔터 문제는 덕평센터 화재 당시에도 핵심 쟁점이었다. 덕평센터는 화재 발생 약 4개월 전 실시한 소방시설 점검에서 모두 277건의 결함을 지적받았다. 이 가운데 스프링클러 관련 지적이 60건으로 가장 많았다. 화재 감지기 불량과 살수 사각지대 등이 포함됐다. 화재 확산을 막는 방화 셔터에서도 26건의 결함이 발견됐다. 당시 이천소방서는 쿠팡이 제출한 사진 등을 토대로 지적 사항이 시정됐다고 판단했다.
쿠팡은 덕평 화재 직후 소방 안전을 위해 필요한 추가 개선 사항을 모두 이행한 상태였다면서도, 화재 원인 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추가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모든 물류센터와 사업장을 대상으로 특별 점검을 실시해 개선 방안을 찾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KT와도 협약을 맺고 전국 센터의 화재수신기 정보를 본사에서도 실시간으로 확인해 화재를 예방하고, 사고 발생 시 인적·물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소방시설 통합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2021년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를 계기로 물류창고의 높은 층고와 대규모 가연물 적재, 복잡한 랙 구조 등을 반영한 별도의 창고시설 화재안전기준을 마련했다. 2024년부터 시행된 창고시설 화재안전기준(NFPC·NFTC 609)은 일반형보다 방수량이 많은 라지드롭형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했다.
또 랙식 창고에는 랙 높이 3m 이하마다 스프링클러 헤드를 추가하도록 규정했다. 헤드당 방수량도 기존 분당 80리터 수준에서 160리터 이상으로 높였다. 랙식 창고에는 60분 이상 방수할 수 있는 수원도 확보하도록 했다.
그러나 새 기준은 시행 전 건축 허가를 신청하거나 소방시설공사 착공 신고를 한 시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2020년 건축 허가를 받은 인천32센터도 강화된 기준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덕평 화재 이후 물류창고의 구조적 위험을 반영한 제도가 마련됐지만, 기존 대형 물류센터는 여전히 종전 기준에 머무는 사각지대가 남은 셈이다.
소방 당국은 화재 완진 뒤 이번 인천 물류센터의 정확한 발화 원인과 스프링클러 초기 작동 여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입장문을 통해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송구하다"며 "지역 주민 지원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한편, 소방 활동을 지원하고 관계 당국의 화재 원인 조사에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