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가 정치권 압박 속 2000억원 규모 긴급 운영자금을 확보하면서 파산 위기에서는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법원의 즉시항고 인용, 수정 회생계획안 마련, 채권단 동의 등 후속 절차가 줄줄이 남아 있는 데다 영업 정상화까지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16일 메리츠금융그룹은 이사회를 열고 홈플러스에 2000억원 규모 긴급 운영자금(DIP)을 지원하는 안건을 심의하고 의결했다. 안건 통과에 따라 홈플러스는 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에 즉시 항고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했다.
그간 메리츠금융과 MBK파트너스는 대출 조건과 보증 범위를 두고 맞서왔다. 메리츠는 회생 가능성, 배임 우려 등을 이유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의 연대보증을 전제로 추가 자금 지원에 선을 그어왔고, MBK는 메리츠가 2000억원을 전액 대출하면 이 중 1000억원에 대해서만 보증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교착 상태는 MBK와 김병주 회장이 2000억원 전액에 대해 연대보증을 서기로 하면서 풀렸다. 메리츠는 대출금 전액에 대해 직접 연대보증을 제공한다. MBK 관계자는 "회사를 비롯해 임직원, 협력업체, 납품업체, 입점업체 등 이해관계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유통업계에선 정치권의 압박이 협상 타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홈플러스 영업 중단으로 대량 실업, 협력업체 연쇄 피해 우려가 커지면서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중재가 본격화됐고, 국회는 오는 27일 '홈플러스 사태' 청문회까지 예고한 상태였다. 노조 또한 메리츠금융 본사 앞 집회, 고용노동부 협의 등에 나서며 자금 지원을 촉구하는 여론전을 이어왔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은 전날 서울에서 열린 '홈플러스 노동자·상인 총궐기대회'에서 "내일 중으로 2000억원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홈플러스의 파산을 막고 본격적으로 회생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다만 메리츠 이사회 통과가 곧 회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홈플러스는 자금 확보 이후 법원에 즉시항고를 제기해야 한다. 즉시항고는 이날보다는 기한 직전인 오는 20일 이뤄진다.
법원이 즉시항고를 받아들이면 회생 절차는 최종 기한인 9월 4일까지 이어진다. 홈플러스는 그 전까지 수정 회생계획안을 마련해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후에도 영업 정상화를 위해서는 상품 공급 회복, 협력사 신뢰 회복 등이 뒤따라야 한다.
회생 절차가 재개되더라도 파산 가능성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수정 회생계획안이 채권단 동의를 얻지 못하거나 이후 계획 이행에 실패하면 다시 파산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반대로 즉시항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도 홈플러스는 청산 수순을 밟게 된다.
일각에선 2000억원의 긴급 운영자금만으로는 경영 정상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홈플러스의 공익채권은 현재 약 1조원 규모다. 공익채권은 회생절차에서 일반 채권보다 우선 변제해야 하는 채무다. 공익채권은 회생 개시 당시인 지난해 3월 3328억원에서 세 배 가까이 불어났다. 이 중 미지급 납품 대금 등 상거래 채권이 7940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제세공과금도 820억원에 달한다.
자금 수혈 후에도 정상 영업 재개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도 여전히 많다. 지난 13일부터 대형마트 67개 전 점포 영업이 중단된 가운데 홈플러스의 6월 기준 임금 체불액은 333억원으로 직원 약 1만1400명이 지급 대상이다. 회사의 한 달 급여는 240억원 안팎인 데다 협력업체의 납품 재개, 상품 구색 회복, 소비자 신뢰 회복도 뒷받침돼야 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0억원 지원으로 당장의 파산은 피하고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법적 회생과 영업 정상화는 다른 문제"라며 "납품업체들이 거래대금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상품 공급이 회복되고 고객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MBK가 추가 투자와 함께 홈플러스를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놔야 협력사들의 신뢰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